원안위 '원전해체' 승인… 2037년까지 단계적 해체·부지 복원
한국, 건설~해체 전 과정 기술 능력 갖춘다
핵폐기물 처리 및 저장 안전 확보 시급

한국 최초의 상업용 원자력발전소인 고리1호기가 40년 운영을 마치고 본격적인 해체 절차에 들어간다./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한국 최초의 상업용 원자력발전소인 고리1호기가 40년 운영을 마치고 본격적인 해체 절차에 들어간다./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한국 최초의 상업용 원자력발전소인 고리1호기가 40년 운영을 마치고 본격적인 해체 절차에 들어간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26일 고리1호기 해체 계획을 최종 승인했다. 오는 2037년 해체가 마무리되면 한국은 원전 '건설-운영-정지-해체' 전 과정을 산업 체계로 갖춘 국가가 된다. 한국이 이번 해체 경험을 바탕으로 약 500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글로벌 해체 시장 선점에 본격 나설 수 있게 된다.

부산시 기장군에 위치한 고리 1호기는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한국 최초의 상업용 원자력발전소다. 출력 587MW급 가압경수로 방식으로, 2007년에는 계속운전 승인을 받은 후 2017년 6월 영구 정지된 뒤 8년 만에 해체 수순에 돌입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원전 건설 분야에서는 경쟁력을 갖췄지만 해체에는 경험이 없었다. 고리 1호기는 국내에서 해체되는 첫 원전이 될 전망이다. 해체 사업은 크게 △해체 준비 △주요 설비 제거 △방사성폐기물 처리 및 부지 복원 등 순서로 진행된다.

한수원은 지난 5월부터 방사성 물질을 화학약품으로 제거하는 제염 작업에 들어갔다. 이어 다음달 터빈 건물 내 설비, 복수탈염 설비, 옥외탱크 등부터 순차적으로 해체 작업에 들어간다. 공사 기간은 약 30개월로 예상된다.

고리본부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이 구축되면 원자로 냉각제 계통 등 고오염 설비 철거와 방사성 폐기물 처리를 마무리하게 된다. 오는 2031년까지 사용후핵연료 반출을 완료한 뒤, 2035년 부지 복원에 착수하고 2037년에 최종적인 해체 종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수원은 방사선 오염이 가장 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원자로 냉각제계통과 화학·체적 제어계통, 잔열 제거계통에 과망간산·옥실산 등의 화약품을 주입해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는 등 실제 해체 작업에 문제가 없도록 준비를 거쳤다.

◇ "단순 철거 아니다"... 글로벌 시장 겨냥한 '한국형 해체 모델' 시동

업계는 고리1호기 해체가 국내 원전 산업의 새로운 전환점이자, 향후 글로벌 해체 시장 진출의 교두보가 될 것으로 본다. 지난해 기준 전 세계에 영구 정지 원전은 209기지만 지금까지 해체 완료된 사례는 21기에 불과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2050년까지 영구 정지되는 전 세계 원전은 총 588기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은 이번 해체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 기술력과 실적을 확보함으로써 약 500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세계 해체 시장 진출에 본격 나설 수 있을 전망이다. 특히 고리1호기 해체는 대형 상업용 원전 해체라는 점에서 국내 기업과 연구기관이 설계부터 방사성 폐기물 관리, 설비 해체 등 고난도 작업을 수행하면 기술 내재화의 결정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내 원전 해체 산업에는 한수원, 한전기술, 한전KPS 등 공기업이 주도하고 있으며, 일부 민간 기업도 기술 장비 및 설계 분야에서 참여 중이다. 정부는 96개 해체 기술을 확보한 상태이며, 월성1호기 해체 사업을 위한 중수로 해체 기술 개발도 확보할 방침이다.

민간 기업도 원전 해체 산업에 발 빠르게 뛰어들고 있다. 현대건설은 2022년 미국 인디언포인트 원전 해체 프로젝트에 국내 기업 최초로 참여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용기 수출과 건식저장시스템 설계를 통해 해체·처리 분야에 진입했다.

한수원은 향후 고리 해체 경험을 토대로 '한국형 해체 모델'을 개발, 해외 수출을 본격화한다는 전략이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고리1호기 해체는 단순한 설비 철거가 아니라, 국내 해체 기술 내재화와 전문 인력 양성, 산업 생태계 조성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사업 과정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지역사회와의 신뢰를 기반으로 해체를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해체 과정 불안 요소 여전…핵폐기물 처리 및 저장 문제 남아

환경단체들은 고리 2호기 운전 여부가 불확실한 상태에서 1호기 해체를 먼저 추진하는 것은 안전성과 절차적 정당성 모두에 의문을 남긴 반쪽짜리 결정이라고 지적한다. 고리 1호기와 2호기는 주증기배관, 해수처리시설, 배관 등 주요 설비를 공유하는 '쌍둥이 원전'이다. 1호기 해체 작업이 2호기의 운영 및 안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다.

고리 1호기에는 약 1390다발의 고준위 핵연료봉이 저장돼 있다. 이를 모두 건물 밖으로 빼내야 하지만, 영구처분장 설계 및 후보지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분간 원전 부지 내 건식저장시설에 임시로 보관할 수밖에 없다. 원전 해체 과정에서 핵폐기물 관리 계획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다.

원전 해체 과정에서 주민 의견을 수렴할 제도가 없다는 것도 불안 요소다. 고리 1호기 원전 해체 과정에서 주민 공청회는 해체계획서 초안 작성 단계에 한 번 진행되며, 이후 과정에는 주민 참여 절차가 없었다.

에너지정의행동은 "원전 해체 승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 안전하고 투명하게 진행되는 것"이라며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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