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중의 을, 소외된 라이더들…배달앱 규제가 놓친 사각지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유통·배달 산업에 규제 신호가 강해지고 있다. 자영업자 보호를 위한 선의의 정책이 오히려 더 약한 다른 계층에게 부담을 전가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배민 '1만원 이하 수수료 면제' 발표…업주들 "부족하다"
배달의민족이 19일 1만원 이하 소액주문에 대해 중개수수료를 전액 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가 중재한 '배달앱 사회적 대화기구'를 통해 도출된 결과다.
이번 합의에 따라 배민은 주문금액 1만원 이하는 중개수수료(7.8%) 전액 면제, 1만원 초과~1만5000원 이하는 중개수수료 및 배달비를 차등 지원한다. 이를 위해 연간 최대 1000억원, 3년간 최대 3000억원을 지원하겠다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김범석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1인 가구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소액주문에 대한 지원으로 업주에게는 부담 완화를, 소비자에게는 편리함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랜차이즈 본사 발급 할인쿠폰 중 업주 부담분에 대한 중개이용료 미부과 방안도 함께 발표됐다.
하지만 업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김진우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의장은 "보통 2만원 이상 주문이 많기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모든 자영업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어서 부족하다"고 언급했다.
뉴욕 사례가 보여준 현실…'을 중에 더 약한 을'에게
뉴욕시는 2020년 배달 플랫폼 수수료를 15%로 제한하는 상한제를 도입했다. 자영업자 보호를 위한 선의의 정책이었지만, 우버이츠와 도어대시 등 주요 플랫폼들은 '규제 준수 수수료'라는 새로운 명목으로 음식점에 추가 비용을 부과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배달 기사들의 처우 악화였다. 플랫폼들은 줄어든 수수료 수익을 보전하기 위해 배달 기사들의 수수료를 삭감하거나 인센티브를 축소했다. 자영업자를 보호하려던 정책이 오히려 '을 중에서도 더 약한 을'인 배달 기사들에게 피해를 전가하는 결과를 낳았다
국내 상황은 더욱 취약하다. 대다수 배달 기사들이 플랫폼 소속 직원이 아닌 개인사업자 형태의 특수고용인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서도 플랫폼의 정책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취약한 위치에 있다.
업계 관계자는 "플랫폼 입장에서는 수수료 상한제로 인한 손실을 가장 쉽게 전가할 수 있는 대상이 바로 배달 기사"라며 "이들에게는 협상력도, 법적 보호장치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종합적 해법 없이는 '제2의 뉴욕' 우려
실제 이번 사회적 대화기구에서도 라이더들의 목소리는 배제된 채 자영업자와 플랫폼만의 논의가 이뤄졌다. 배달 생태계의 핵심 축인 라이더들이 논의에서 소외되어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수수료 상한제만으로는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플랫폼의 투명성 강화, 라이더 보호제도, 수수료·배달료 구조 공개 의무화 등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자영업자 보호 과정에서 또 다른 약자층이 피해를 보는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병덕 을지로위원장은 "7월 말까지 더 실효성 있는 상생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지만, 라이더들이 대화 테이블에 포함될지는 미지수다. 이강일 민주당 의원도 "열린 자세로 서로를 이해하자"고 했지만, 정작 배달 생태계의 핵심 축인 라이더들은 논의에서 소외된 모양새다.
결국 뉴욕의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모든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포괄적인 논의 구조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그렇지 않으면 선의의 정책이 오히려 '을들 간의 갈등'만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