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vs 입점업체 vs 전통시장 vs 소비자…각기 다른 목소리

정부의 대형 마트 의무 휴업이 마트 입점 자영업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인공지능생성 이미지
정부의 대형 마트 의무 휴업이 마트 입점 자영업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인공지능생성 이미지

정부가 자영업자 보호를 명분으로 대형마트 공휴일 의무휴업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각 이해관계자들 간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단순히 찬반으로 나뉘는 것을 넘어 노동권과 영업권, 전통상권 보호와 소비자 편익 사이에서 복잡한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어 정책 재검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자영업자 간 갈등…"휴식권 vs 영업권" 딜레마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대형마트는 월 2회 의무휴업을 시행하고 있다. 정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공휴일 휴업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지만,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찬반 양론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대형마트 노동자들은 의무휴업 확대를 적극 환영하고 있다. 유통업 특성상 주말과 공휴일에도 근무해야 하는 이들에게 법적으로 보장된 휴식은 절실한 권리다. 한 대형마트 노동자는 "주말이나 공휴일에 가족 행사도 많아 쉬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법이 빨리 바뀌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상공인연합회도 지난 11일 논평을 통해 "대형마트 공휴일 의무휴업 제도는 소상공인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판"이라며 "공휴일 의무휴업 원칙을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통시장 상인들은 대형마트와의 과도한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의무휴업을 인식하고 있다.

반면 대형마트에 입점한 자영업자들의 반발은 거세다. 마트 내 식당가, 카페, 서비스업체를 운영하는 이들 역시 엄연한 소상공인이지만 의무휴업 정책에서는 철저히 배제돼 있다. 휴업일마다 강제로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서 임대료와 인건비는 동일하게 발생하지만 매출은 제로가 된다. 대형마트 주변 자영업자들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대형마트가 쉬면 인근 상점으로 손님이 올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휴업일에는 유동인구 자체가 급감하면서 주변 상권까지 매출 타격을 받고 있다.

소비자 76.4% "규제완화 원해"…전통시장 효과는 11.5%뿐

한국경제인협회가 2024년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유통규제 관련 소비자 인식 조사'에 따르면 76.4%의 소비자가 대형마트 규제를 폐지하거나 완화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현행 의무휴업 제도 유지 의견(23.6%)의 3배가 넘는 수치다. 구체적으로는 의무휴업 제도 폐지(32.2%), 평일 의무휴업 실시(33.0%), 의무휴업일 온라인 거래 허용(11.2%)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정작 정부가 의도했던 전통시장 활성화 효과는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같은 조사에서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에 생필품 구매를 위해 전통시장을 방문한다는 응답은 11.5%에 불과했다. 대신 소비자들은 슈퍼마켓·식자재마트(46.1%), 대형마트 영업일 재방문(17.1%), 온라인거래(15.1%) 등을 선택하고 있었다. 전통시장 상인들조차 실질적인 매출 증가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소비자들의 행동 변화다. 대형마트를 이용하던 소비자들이 휴업일에 전통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대신 온라인 쇼핑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젊은 층은 불편함을 감수하며 전통시장을 찾기보다는 온라인에서 주문하는 것을 선호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형마트 의무휴업의 최대 수혜자는 온라인 쇼핑몰인 셈이다.

상생 모델 모색…"실증 데이터 기반 정책 재검토 필요"

현재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둘러싼 이해관계는 복잡한 다층 구조를 보이고 있다. 대형마트 노동자와 전통시장 상인들은 의무휴업을 지지하는 반면, 대형마트 입점 자영업자와 인근 상권 자영업자들은 반대하고 있다. 소비자 대다수(76.4%)는 규제완화를 원하고 있어 노동권과 영업권, 전통상권 보호와 소비자 편익이라는 복합적 과제가 얽혀 있다.

자영업자들은 일괄적인 규제보다는 상생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해달라고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마트 내 전통시장 특산품 코너 운영, 공동 마케팅, 배송 서비스 연계 등 상생 협력 모델을 시범 운영 중이다. 대형마트 노동자들의 순환 휴무제나 탄력적 운영시간 조정을 통해 노동권을 보장하면서도 영업 연속성을 유지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획일적인 규제로는 복잡한 이해관계를 해결할 수 없다"며 "각 지역 상황에 맞는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전통시장 상인회 관계자는 "대형마트가 모든 날 영업하면 우리 같은 소상공인은 살아남기 어렵다"며 "최소한의 보호막이라도 유지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대형마트 입점 자영업자 A씨는 "같은 소상공인인데 우리만 피해를 보는 것은 불공평하다"며 "정부가 진정 자영업자를 생각한다면 모든 소상공인이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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