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방화범 상대로 구상권 소송 가능성…피해 주민 법정 증언 부담 우려
2019년 ‘강원 산불’ 때도 법정 불려나와

경북 지역 산불 피해 주민들이 화재보험을 통해 보상을 받더라도 법적 분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을 전망이다. 보험사들이 피해 주민들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뒤, 방화범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에 나서면서 주민들이 다시 법정에 불려나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3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3월 초 경북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피해 보상 절차가 진행 중이다.
산불 피해를 입은 경우도 일반 화재보험과 동일한 절차로 보상이 진행된다. 다만 대규모 피해인 데다 원인 규명 문제로 인해 법적 분쟁 가능성이 높고, 행정기관의 피해 확인 절차가 추가될 수 있다. 그래서 최종 보상을 받기까지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특히 발화 원인이 자연재해인지 인위적 과실인지에 따라 보험사의 구상권 소송이 진행될 수 있다. 구상권 청구 소송이란 보험사(또는 제3자)가 피해자에게 돈을 물어준 뒤, 진짜 책임자한테 "내가 대신 낸 돈 돌려내라"며 제기하는 소송이다.
이 과정에서 산불 피해 주민들이 법정에 증인으로 서기도 한다. 실제 2019년 강원 고성·속초 산불 당시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당시 피해 주민들은 보험금으로 일차적인 보상을 받았지만, 보험사들이 한국전력(가해자)을 상대로 수백억원대 구상권 소송을 제기하면서 법정 다툼에 다시 휘말렸다. 주민들은 증인 출석 요구, 피해 사실 재확인, 가해자 측의 과실상계 주장 등으로 추가적인 심리적 부담을 떠안아야 했다. 당시 주민들은 법정 출석으로 인한 시간·비용 부담 때문에 2차 피해를 느꼈다고 증언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경북 산불 피해자들 역시 비슷한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화재 원인 조사 결과 인위적 과실이 드러날 경우, 보험사들이 방화범을 상대로 구상금 소송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 주민들이 다시 법정에 불려나와 증언해야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했더라도 구상권 소송 과정에서 피해 주민들의 피해 사실, 당시 상황 등에 대한 진술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며 소송이 길어질 경우 피해자들의 심리적·경제적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경북 산불 사건은 과거 강원 산불과 달리 구상권 청구 대상이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아닌 개인 방화범이라는 점에서, 장기간 대형 법정 분쟁으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도 있다. 보험사들이 구상권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방화범 개인의 배상 능력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실질적 채권 회수보다는 형식적인 절차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구상권 소송은 법적으로 절차상 진행할 수밖에 없지만, 개인 가해자를 상대로 수백억원대 소송이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며 “피해 주민들이 장기간 법정 다툼에 휘말리는 일은 최소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피해 주민들이 구상권 소송 과정에서 불필요한 법적·행정적 부담을 지지 않도록 정부와 지자체의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과거 강원 산불 당시 일부 지자체는 피해 주민들을 위한 무료 법률 상담 창구를 마련하고, 법정 출석 시 교통비·실비 지원 등을 검토한 바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피해 주민들이 법정 출석이나 증인 요청으로 추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관련 절차에 대한 충분한 안내와 행정적 지원이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