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정부 2049년까지 감축 목표 제시 안 해…과소보호금지 원칙 위반"
"2031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량 설정하지 않은 것 국민 기본법 대응하지 못해"
2026년 3월 이후 효력 상실…국회 및 정부 헌재 취지 반영한 기후정책 마련해야

헌법재판소가 29일 열린  대심판정에서 2031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지 않은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사진=헌법재판소)/그린포스트코리아
헌법재판소가 29일 열린  대심판정에서 2031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지 않은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사진=헌법재판소)/그린포스트코리아

헌법재판소가 2031년 이후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를 아예 설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만장일치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이 부족하면 국민의 기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인정한 것이자 아시아 최초로 나온 결정이다. 이에 따라 정부와 국회는 2031년 이후 중장기 온실가스감축량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정책을 다시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 과소보호금지 원칙 위반…2031년 이후 온실가스 배출량 기준 마련 주문

헌재는 29일 청소년·시민단체·영유아 등이 제기한 헌법소원 4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그동안 한국 정부가 탄소중립 기본법과 시행령, 국가 기본계획 등에서 정한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치가 적정한지에 대해 심리했다.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에 따르면 정부는 국가 온실가스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 국가 온실가스배출량 대비 35% 이상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만큼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정했지만 2031년부터는 아무런 기준도 마련하지 않고 있어 중장기 목표가 부재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청구인들은 2030년까지 2018년 배출한 온실가스 40%를 줄이기로 법률로 정한 녹색성장 기본법, 탄소중립 기본법 등이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제시한 40% 감축 목표가 낮아 미래 세대에게 '안정된 기후에서 살 권리'를 비롯한 환경권, 생명권, 건강권, 행복추구권 등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다.

반면, 피청구인인 정부 측은 현실적인 목표치이며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실행했기 때문에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헌재는 전원일치로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을 헌법불합치로 결정하고 법 개정을 주문했다. 헌재는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 목표에 관해 그 정량적 수준을 어떤 형태로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과소보호금지 원칙에 반해 기본권 보호 의무를 위반했으므로 청구인들의 환경권을 침해한다"며 "기후위기라는 위험 상황에 상응하는 보호조치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성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할 것"이라고 밝혔다.

과소보호금지 원칙이란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번 소송처럼 권리의 침해가 아닌 보호를 다투는 사건에서 주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다만, 정부가 2030년까지 설정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는 않는다고 보고 이 부분의 청구는 기각했다. 헌재는 이에 대해 “구체적 수치를 정할 권한과 책임은 원칙적으로 입법자에게 있고, 특정 연도의 구체적 수치를 놓고 ‘감축 노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 공은 국회와 정부에…탄소중립 명확한 시그널 필요

업계는 이번 헌재의 결정이 독일·프랑스·네덜란드 등 유럽이 아닌 아시아 최초의 기후소송으로서 유의미한 판결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송두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정부의 부실한 기후위기 대응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에 대해 환영한다고 성명을 냈다.

송 위원장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국가의 불충분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설정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아시아 최초의 기후소송에 대한 유의미한 결정"이라며 "온실가스 감축 등 정부가 기후위기를 대응함에 있어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와 형평성을 고려하도록 강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은 2026년 2월 28일까지만 효력이 인정된다. 정부와 국회는 개정 시한 내로 헌재의 취지를 반영해 보다 강화된 기후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동안 적정수치를 제시하지 않았던 2031년 이후의 온실가스배출 감소 목표를 세우기 위해선 입법부인 국회의 역할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2049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과정의 배경에 대해 정부 및 국회가 아무런 목표 없이 감축량을 정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며 "그동안 이런 문제로 인해 로드맵을 반드시 법률에 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으며 헌재의 결정은 적극적으로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하라는 의미에서 국회에서도 큰 책임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국회 입법 이후에는 시행령으로 구체적인 목표를 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현행 법에도 2030년까지 탄소감축 목표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한 것처럼 2031년 이후에도 세부적인 수치는 시행령을 통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며 후속 조치를 충실히 이행할 계획”이라며 “2049년까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어떤 기준, 어떤 내용으로 법률에 담을지 관계부처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