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범죄 간 상관관계 찾을 수 없어…원인 복합적

‘게임 문화 Game on Culture’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해외 석학들(사진=게임문화재단)/그린포스트코리아
‘게임 문화 Game on Culture’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해외 석학들(사진=게임문화재단)/그린포스트코리아

“살인, 자살 등 강력사고의 원인을 게임에서 찾는 것은 쉬운 답변을 얻기 위한 일반화다. 다른 나라에서 비슷한 사건이 불거졌을 때 연구한 적이 있는데, 원인은 다양하고 복합적이었다.”

게임문화재단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개최한 국제심포지엄 ‘게임 문화 Game on Culture’에 참가한 전 세계 게임 전문가들이 게임과 범죄와의 연관 관계는 찾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17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게임 문화 Game on Culture’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해외 석학들은 최근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의 원인으로 검찰이 게임 과몰입을 지목한 것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블라단 스타서빅(Vladan Starcevic) 시드니대학교 정신의학 교수는 “분명히 다른 원인이 있을 것”이라며 “사고의 원인을 게임 탓으로 돌리는 것은 사건의 인과 관계를 단순화시켜 쉬운 답변을 얻어내려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에스펜 올세트(Espen Aarseth) 코펜하겐IT대학 게임학과 교수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게임을 즐긴다. 게임을 하지 않는 아이에게 오히려 문제가 있다고 생각될 정도”라며 “최근 미국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과 관련해 범인의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 조사를 진행했는데, 일부는 게임을 했지만 대부분은 게임을 즐기지 않았다. (게임과 범죄의) 연관 관계를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총기난사 범인들은 대부분 글을 쓰고 시를 읽거나 연극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며 “그렇다고 해서 문학이 범죄와 연관이 있다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게임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에스펜 올세트 교수는 유럽에서는 게임 이용장애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적다고 전했다. 그는 “나라마다 정책이 다르기 때문에 단언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내가 속한 동유럽의 상황만 말하자면,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게임과 연관짓는 경우는 드물다. 몇년 전 정신과 의사들을 만났는데, 그들의 환자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즐겼다. 이들에게 게임을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게임이 문화로서 주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쥬노 킴(Jeuno Kim) 왕립덴마크예술학교 시각예술학과 교수는 “스웨덴에서는 중고등학교 교육에서 게임을 교육 교재로 많이 사용한다”며 “만약 스웨덴 정부가 게임을 유해하다고 판단했다면 이렇게 게임을 교육의 매개체로 활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범죄를 저지른 청년들은 사회적으로 관계를 맺기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는데,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만족감을 느낄 수 있어 게임을 한다”며 “게임이 아니라 사회적 배경에서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덕현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의 본질은 범인이 게임을 많이 했고, 게임을 흉내냈다는 점이 아니다”라며 “우리나라의 정신보건법이 허술해서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나 진단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해당 범인이 과거에 게임을 많이 했다는 점을 침소봉대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전 세계 게임 전문가들이 모여 게임문화의 강점과 미래적 가능성을 탐색하고 논의하는 이번 심포지엄은 17일과 18일 이틀에 걸쳐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열린다. 

이 행사는 2017년 ‘게임과몰입,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2019년 ‘인터넷게임장애(IGD) 국제 공동연구 심포지엄’의 연장선상이다. 게임 과몰입, 게임 이용 장애(Gaming Disorder) 등 게임을 둘러싼 논란을 과학적으로 증명해온 이전 심포지엄을 확장하여 ‘의료’, ‘교육’, ‘인문 사회’, ‘예술’, ‘스포츠’, ‘방송’ 등 여러 분야의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할 수 있는 자리로 마련됐다.

김경일 게임문화재단 이사장은 “게임의 다양한 강점과 미래 가능성에 대한 다채로운 관점들을 제시하며, 게임이 문화와 예술, 교육, 기술 분야에 중요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음을 재확인하는 시간이 됐다”며 “앞으로도 게임문화재단은 게임연구와 저변확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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