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홍수시대] ④사라진 '합성수지 연차별 줄이기'
2015년 용역보고서 "매립 포장재 줄어 자원으로 가치"

플라스틱은 20세기 기적의 소재라 불렸다. 지난 150년간 인류에게 선물처럼 쓰였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은 이제 골칫덩어리가 됐다. 폐플라스틱을 대량으로 흡수했던 중국이 올 1월 수입을 전면 중단하면서다. 그간 각국에서 무분별하게 버려진 플라스틱은 북태평양에 쓰레기섬을 만들었고 그 크기가 무려 한반도 면적의 7배인 155만㎢다. 완전 분해에 500년 걸린다는 플라스틱은 인류 영속을 방해하는 실패한 발명품이 됐다. 정부는 2030년까지 플라스틱 사용량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o표를 세웠다.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침투한 플라스틱의 폐해를 과연 막을 수 있을까. '플라스틱 홍수시대' 시리즈를 통해 국내 플라스틱 관련 문제점을 짚어보고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2016년 기준 일일 발생하는 일일 폐기물량은 53771.9톤이다. (서창완 기자) 2018.10.23/그린포스트코리아
2016년 기준 일일 발생하는 일일 폐기물량은 53771.9톤이다. (서창완 기자) 2018.10.23/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서창완] 환경부가 지난 5월 발표한 ‘재활용 폐기물 관리 종합대책’은 생산·소비·배출·수거·재활용 측면으로 나뉜다. 2020년까지 △페트병 무색 전환, 재활용 의무대상 확대 △대형마트·슈퍼 비닐봉투 사용금지 △컵보증금 도입 △택배포장 기준 신설 등 내용이 담겼다. 대부분 내용이 기존 정책의 재활용이거나 ‘자발적 협약’ 내용 반복으로 꾸려져 실효성 논란이 나왔다. (관련기사 : 플라스틱은 범람하는데 실효성 대책이 '정책 재활용'?)

<그린포스트코리아>가 단독입수한 ‘포장제도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2015.5)를 보면 이런 의심은 더 커진다. 해당 보고서는 자원재활용법 제9조 ‘포장폐기물의 발생 억제’ 항목의 하위 규정 실효성 검토를 위해 만들어졌다. 환경부 의뢰로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이 2014년 11월 19일부터 2015년 5월 15일까지 6개월 남짓 연구해 발표했다.

◇재활용 잘 되고 있으니 마음껏 써도 된다?

보고서에는 ‘합성수지 재질로 된 포장재 연차별 줄이기’ 제도 등의 개선 필요성이 나와 있다. 해당 내용은 '제품의 포장재질·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 제8조와 관련된 부분이다. 내용을 분석하면 합성수지 재질로 된 포장재 사용 장려다. 지난 정부에서 비닐·플라스틱 폐기물량이 급격히 늘었던 이유에 대한 단서다.

‘합성수지 포장재 연차별 줄이기’는 2003년부터 시행된 제도로 합성수지 이외의 재질로 된 포장재를 사용하거나 합성수지 재질로 된 포장재 사용량을 매년 줄여 나가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재활용 대란 원인 중 하나인 비닐을 생각하면 쉽다. 합성수지 포장재 대신 감축목표량만큼 친환경포장재를 사용토록 규정하고 있다. 사과나 배 등 과일 받침의 경우 2003년 대비 2007년 이후에는 25%를 감축해야 한다.

'포장제도 개선방안 연구보고서' 내용의 일부. (환경부 제공) 2018.10.23/그린포스트코리아
'포장제도 개선방안 연구보고서' 내용의 일부. (환경부 제공) 2018.10.23/그린포스트코리아

용역보고서는 2003년 생산자책임재활용(EPR)제도가 도입되면서 합성수지 재질 포장재 재활용률이 높아지고 매립되는 포장재가 급격히 줄어 자원으로서의 가치가 향상됐다고 설명했다. 합성수지 재질 포장재는 재활용률이 높아 연차별 줄이기 규제가 폐지돼야 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생분해성 수지 제품은 매립을 전제로 한 포장재라 재활용이 용이하지 않은 데다 합성수지 포장재 재활용을 저해해 재생제품 품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라고 파악하기도 했다.

자원순환정보시스템 전국 폐기물 발생 및 처리현황을 보면 2007년부터 통계 대상에 포함된 재활용 합성수지(필름류) 일일 폐기물량은 706.4톤에서 2013년까지 1335.2톤으로 두배 가까이 늘었다. 용역보고서 근거가 된 재활용률 향상 통계치로 볼 수 있다. 재활용이 늘었으니 양적 팽창은 문제없다는 식이다. 총량이 늘어난 폐기물이 얼마나 잘 처리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다.

지난 7월 1일 서울 한 대형마트 앞에서 펼쳐진 '플라스틱 어택' 당시 모습. (2018.7.1/그린포스트코리아
지난 7월 1일 서울 한 대형마트 앞에서 펼쳐진 '플라스틱 어택' 당시 모습. (2018.7.1/그린포스트코리아

합성수지 재활용 폐기물량 증가는 MB 정부 정책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2008년 정부는 폐비닐을 고형연료(SRF)로 만들어 에너지로 쓰기로 했다. ‘폐자원 및 바이오매스 에너지 대책’을 내놓고 가정에서 나온 폐비닐을 성형해 고형연료로 만들었다.

고열로 녹여 정제유를 추출하는 재활용을 앞세우는 정책이다. 결국 소각이다. 재활용률이 높아져도 포장재 생산은 줄지 않는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고형연료 시장 축소, 미세먼지 악화로 고형연료를 필요로 하는 열병합발전소, 시멘트공장 등의 시설에 대한 규제마저 심해지는 추세이기도 하다.

용역보고서는 또 ‘자원순환사회전환촉진법’ 국회 제출로 '재활용 가능 자원 매립 제로' 목표가 세워졌다며 합성수지 재질 포장재를 아무리 많이 사용해도 재활용을 확실히 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분리수거 뒤 소각하는 단계를 자원순환인 것처럼 포장한 셈이다.

◇지자체 단속 기록 ‘0’… 근거 빈약한 규제 완화

2015년 포장용 완충재가 '연차별 줄이기' 대상에서 빠졌다. (서창완 기자) 2018.10.23/그린포스트코리아
2015년 포장용 완충재가 '연차별 줄이기' 대상에서 빠졌다. (서창완 기자) 2018.10.23/그린포스트코리아

‘연차별 줄이기’ 자체 조사는 얼마나 잘 이루어져 왔을까. 관련 규칙 제9조 연차별 줄이기 기준 이행여부 확인을 보면 환경부 장관은 지자체에 해당 제도를 지도하고 확인하게 할 수 있다. 2003년부터 시행돼 온 정책이지만 서울시에서는 이와 관련한 단속 기록이 없다고 밝혔다. 단속 이행률이 0인 셈이다.

서울시 일선 구청 청소행정과 관계자들은 “매년 초 대형마트 등에 연차별 줄이기 실적을 받고 있다”면서 “제출 자료 이행률이 미치지 못할 경우 과태료 부과 규정이 있기는 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환경부에서 서울시에 요청하면 서울시가 자치구로 이행률을 요구하는데, 전문성이 부족해 현장에서도 이행을 잘 해달라는 독려를 하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대형마트 등 사업장에서 지자체로 이행률 보고서를 올리면 환경부가 이를 그대로 인정하는 방식으로 처리되는 셈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용역보고서 발표 두 달 뒤인 7월 31일 ‘연차별 줄이기’ 규정은 일부 개정된다. 당시 법령에서 개정된 부분은 제4조 5항과 제5조 5항, 제10조다. 해당 부분 삭제로 전기기기류, 오디오·비디오응용기기, 정보·사무기기의 포장용 완충재가 연차별 줄이기 대상에서 빠졌다.

해당 보고서에서 폐기를 주장했던 계란난좌 및 팩, 면류 포장 용기는 지난해 10월 개정 때 삭제됐다. 지난 4월 ‘재활용 폐기물 대란’ 이전인 최근까지도 환경 관련 규제들이 완화되고 있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점을 생각하면 지난 정부의 규제 완화 기조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 추이. (서창완 기자) 2018.10.23/그린포스트코리아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 추이. (서창완 기자) 2018.10.23/그린포스트코리아

실제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 추이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부터 가파르게 증가했다. 용역보고서 발표 이듬해인 2016년에는 플라스틱 일일 폐기물량이 이례적으로 증가했다. 플라스틱류와 합성수지류를 합한 폐기물 총계가 6391.5톤에서 7155.1톤으로 763.6톤 늘어났다. 2007년 5237.6톤에서 2015년 6391.5톤으로 9년 동안 1153.9톤 늘었던 걸 고려하면 엄청난 수치다.

지난 정부 폐기물량 증가 추세도 눈여겨 볼만하다. 합성수지를 제외한 플라스틱류로만 비교하면 박근혜 정부 이전 10년 동안 431.1톤 늘었다. 이 수치는 2013년 4365.4톤에서 2016년 5445.6톤으로 4년 만에 1080.2톤 증가했다. 합성수지를 포함했을 때는 박근혜 정부 이전 6년 동안 416.5톤,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1454.5톤이 늘어났다.

환경부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자원재활용법)’을 근거로 플라스틱 줄이기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을 50% 감축하고 재활용률을 기존 34%에서 70%까지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환경부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이전 정부에서 완화된 규정을 검토해 보는 게 필요해 보인다.

 

/기획취재: 박소희 기자, 서창완 기자, 주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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