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영화 ‘곡성’(감독 나홍진·제작 사이드미러 폭스인터내셔널프러덕션·배급 이십세기폭스코리아)이 칸에 당도했다. 개봉 일주일 만에 300만 한국 관객의 선택을 받은 열기가 프랑스 칸에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제69회 칸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된 ‘곡성’은 가는 곳마다 뜨거운 관심, 영화가 상영되는 곳마다 환호의 휘파람과 박수갈채가 쏟아지고 있다. 해외언론의 반응도 호평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최근 본 한국영화 중 최고”(스크린데일리) “악마에 홀린 듯한 대단한 걸작…왜 경쟁부문에 오르지 않았는지 설명이 필요하다”(메트로뉴스) “올해의 영화”(카이 뒤 시네마)라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극찬도 많다.

‘추격자’(2008년 제61회 미드나잇 스크리닝), ‘황해’(2011년 제64회 주목할 만한 시선)에 이어 ‘곡성’까지 나홍진 감독이 빚어낸 모든 장편영화에 러브콜을 보낸 칸. 13일 ‘부산행’(미드나잇 스크리닝), 14일 ‘아가씨’(경쟁부문)의 뒤를 이어 18일 오후 10시(프랑스 현지 시각)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공식상영에는 3000석 규모가 꽉 찰 정도로 ‘칸의 총아’ 나홍진의 신작을 보려는 이들로 북적였다. 극의 흐름에 따라…겁나게 웃길 때는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환장하게 무서울 때는 박수와 환호성이 번지기도 하고, 악의 근원과 신의 현신을 묻는 심각한 주제가 변주되는 동안에는 오래도록 숙연함이 지속되기도 했다.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영화가 끝나고 배우와 감독, 스태프의 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간간이 들리던 박수는 본격적 엔드스크롤에 이어 나홍진 감독, 주연배우 곽도원 천우희 쿠니무라 준의 얼굴이 스크린에 투사되는 동안 7분의 기립박수로 점점 더 커져갔다. 곽도원은 감격에 겨운 듯 눈가가 촉촉해지는가 하면 큰 목소리로 극장 내 관객들에게 “땡큐”(thank you)를 외치기도 했다. 19일 국내 언론과 만난 곽도원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극단 생활을 시작해 청소하고 포스터 붙이던 제가, 먹고살기 위해 텔레토비에 홍길동 아동극을 하던 제가 10년 넘게 연극을 하다 영화를 하게 되고 칸 영화제에 와서 모르는 나라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울컥했다”고 눈물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토록 주연배우를 감격에 젖게 하고, 해외언론을 흥분케 하고, 보는 이를 만족시키는 ‘곡성’은 어떤 영화일까. 현재 국내에서는 영화의 각종 요소와 장면을 분석하고 각자 느낀 의미와 해석, 가설에 대해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관객들이 ‘곡성’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고, ‘타자 화’ 된 평가를 넘어 자기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사건 사고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망자가 되어 떠난 자와 살아남은 자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 지점에 곡성이 있다.

[사진=홍종선 기자]

 


19일 오전 10시30분 칸 JW메리어트호텔에서 진행된 국내 언론 인터뷰에서 나홍진 감독은 이러한 격론들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에 심어 놓은 여러 가지 지엽적 장치와 떡밥이 있어요. 그런 ‘부분’들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설득력 있는 분석이 제기되더라고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저의 은유를 짚어내 말씀하는 분도 있었는데 비판받고 계시더라고요, ‘아, 아무 말도 말아야 하겠구나’ 생각했어요(웃음). 일견 의도된 격론이지요. 무엇을 확정하지 않으면 그것에서 다양한 해석이 나옵니다.”

“감독이 영화를 만들면서 왜 확정하지 않았느냐, 400석 관객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경험과 생각으로 영화를 봅니다. 저는 그 모든 분을 만족시키는 지점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고요. 일테면 (어이없을 만큼 무서운 사건 사고들 속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가는 지금, 신은 어디에 계신지를 묻고 있는 영화이기에)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종교가 있는데 특정 종교에 치우치지 말아야 했고, 무신론자까지 설득해야 했기 때문에 이러한 이야기 구조가 될 수밖에 없었어요. 말하자면 그 어느 때보다 제가 사력을 다해 모든 관객에게 손을 내민 영화예요. 특히 한국 관객이지요, 지금 여기에 와 있는데도 한국 생각을 해요. 내가 정말 한국 관객에게 인정받고 싶었구나,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곡성’은 웃음으로 시작해 광기로 피 칠갑을 하다 담담한 위안을 전하는 영화다. 보고 나면 악몽을 꾼다는 사람도, 헛것을 본다고 말하는 이도 있을 만큼 음산하고 무서운 영화임에 틀림없고 보고 나면 진이 빠질 정도로 간단치 않은 영화지만 틀림없이 여러 차례 박장대소할 만큼 완급이 조절되고 숨 쉴 틈을 주는 영화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곡성’은 영화가 끝날 즈음, 혹은 두고두고 각자의 마음 속 깊은 상처에 위로를 주는 작품이다. 단순히 스릴러로 기획되고 조립된 스토리가 아니다, 나홍진 감독의 진정성 있는 감정이 영화 면면에 담겨 관객에게 그 진심이 전해진다.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다시 말해 볼 때는 나홍진 특유의 어둡고 아름다운 세계 안에서 스릴을 즐기지만, 보고나면 너무 아파서 꺼내 보기조차 힘들었던 내 상처를 위로하고 있는 ‘곡성’의 마음을 느낀다. 나홍진 감독에게서 시작돼 곽도원, 천우희, 쿠니무라 준, 황정민, 허진, 장소연 그리고 김환희 등의 배우와 스태프의 진심어린 노력이 보태져 강한 위안의 힘이 가능했다.

“이 영화가 존재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것이에요, 그 마음이 있었습니다. 피해당하신 분들, 저는 이렇게 언급할 수밖에 없지만, 그 피해가 어떤 것인지는 여러분 각자 마다 다르겠지만 진심으로 위로를 하고 싶었습니다. 남은 분들에게, 가신 분들이 아니라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얼굴, 떠나는 그가 하는 말을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보여드리면서 거기에 위로의 의미를 담았습니다. 만일 그러한 엔딩으로 인해 (영화적으로) 어떤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감독으로서 감내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나홍진 감독은 주변 동료들에게서 “이번에는 해피엔딩으로 해라” “모든 관객과 소통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으면 해피엔딩이 중요하다”는 조언을 들었단다. ‘곡성’의 결론을 해피엔딩이 아니라도 단정할 수 있을까.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전하는 담담하지만 힘 있는 위안, 이보다 더 좋은 맺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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