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CJ엔터테인먼트]

 


프랑스 칸에서는 지난 11일 개막한 제69회 칸국제영화제가 한창이다. 한국영화로는 4년 만에 경쟁부문에 초청된 ‘아가씨’는 세 번째 러브콜(‘올드 보이’ 제57회 심사위원대상, ‘박쥐’ 제62회 심사위원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라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으며 다양한 일정들 속에서 칸을 찾은 전 세계 언론과 영화인들을 만나고 있다.

18일 오전 11시(이하 현지 시각) 뤼미에르대극장 앞 레드카펫에서 포토콜을 진행한 후 11시 30분 공식 기자회견을 가졌으며, 오후 10시 레드카펫 행사에 이어 곧바로 공식 상영회를 열었다. 19일에는 오전 10시30분 국내 언론을 대상으로 개별 인터뷰가 진행됐고 오후 7시에는 미디어데이, 오후 10시30분에는 다시 전 세계 영화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영화의 현주소를 알리는 영화진흥위원회 주최 ‘한국영화의 밤’ 무대에 섰다. 박찬욱 감독, 배우 조진웅 하정우 김민희 김태리가 함께한 이 자리들에는 매번 뜨거운 환영의 박수가 이어졌고 다소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깊은 대화가 오가기도 했다.

모든 일정을 취재하면서 확인한 사실 한 가지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 언론인들이 박찬욱은 현장에서 어떤 디렉팅을 하는 감독인가, 그의 연출 스타일은 어떠한가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는 것이다. 12년 동안 3번 칸을 찾은 감독, 이미 2번의 수상 경력을 가진 감독이라는 점도 관심을 돋우겠지만 완벽에 가까운 미장센, 자신만의 색깔을 구축한 영화세계를 구축한 초로의 감독이 어떻게 영화를 빚어내는가에 대한 ‘스크린 뒤’의 모습과 메이킹 스토리에 대한 궁금증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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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취재현장에서 나온 감독 박찬욱에 대한 얘기들을 종합해 보면 박찬욱은 ‘젠틀하다’. 신사, 아름다운 선비다.

‘아가씨’에서 사기꾼 백작 역을 맡은 배우 하정우는 “좋은 감독 이전에 좋은 사람이다. 아름다운 선비다.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깊다”고 말했다.

칸에 초청받은 영화 ‘올드 보이’와 ‘박쥐’만 보더라도 근친상간, 구도자이면서 뱀파이어가 된 신부처럼 기이하고 가학적이고 잔인한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들려준 박찬욱 감독. 조선시대 선비 같은 양반에게서 어찌 이러한 영화가 나오는가에 대해 하정우는 설득력 있는 답을 제시했다.

“감독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것, 반전의 세계를 영화로 만든다”라는 답에 기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 박찬욱 안에 있지 않은 것, 그것이 감독 박찬욱에 의해 영화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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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의 배려심에 대한 에피소드를 조진웅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배우 조진웅은 귀족 아가씨 히데코의 삼촌 코우즈키를 연기했다.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촬영장에 늦은 거지요. 고인력의 스태프와 배우들이 저 하나로 인해 일을 못 하고 기다리게 한 거예요. 드라마 촬영을 마치고 달려갔지만 이미 몇 시간을 늦었고, 모두에게 혼나 마땅한 일이지만 대표해서 감독께 죽어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박찬욱 감독께서는 ‘어, 왔니? 그렇게 바빠서, 힘들어서 어떻게 하니?’라고 말씀하셨어요. ‘좀 쉬어, 숨 돌리고 시작하자’고 하셨어요, 이거 쉬운 일 아니거든요.”

감독 박찬욱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집요하다’가 될 수 있겠다.

세계 언론을 대상으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배우들에게 “깊은 감정연기를 보여줬는데 감독의 정확한 지시에 따른 것인가”라는 질문이 던져졌다.

하정우는 “사실 배우로서 인물을 새롭게 만드는 여지는 적다. 이미 시나리오 안에 캐릭터가 규정돼 있다. 프리프러덕션(사전제작) 기간을 길게 가졌다. 아주 찬찬히 디테일하게 많은 부분을 감독과 이야기 나누었다. 캐릭터에 대한 디렉션을 끝내놓은 상태에서 촬영에 임했다”고 말했다.

일본인 아가씨 히데코를 연기한 김민희가 답을 이어갔다. “감독님과 미리 많은 얘기를 나눴다. 현장에서는 많이 열어둔 상태에서 감정을 변주해가며 촬영했다. 이게 맞다, ‘틀’을 만들기보다 감정의 폭을 어떻게 넓혀 나갈 수 있는지 확대시켜 가며 연기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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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의 하녀로 김민희와 함께 파격적 정사 신을 연기한 신인배우 김태리는 박찬욱 감독의 영향력을 한층 더 강조했다. “새로 시작한 배우의 특권을 잘 누렸다. 모르거나 어려운 것 있을 때마다 감독님에게 질문했고. 그때마다 자유롭게 잘 헤쳐나갔다”고 답했다.

조진웅의 “그런데 저는 제 마음대로 했다. 그리고 감독님께서는 다시 하자고 말씀하다. 그러니까 분명한 지점은 집요하게 가지고 계셨던 거다. 그래서 감사하고 있다”는 재치 있는 답변에 기자회견장에는 웃음이 번졌다. 동시에, 배우에게 자유를 열어두되 애초 염두에 뒀던 부분은 확실하게 확보하고 가는 면모가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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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는 국내 언론 인터뷰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박찬욱 감독의 연기 디렉팅을 설명했다.

“기본적으로 하나하나 간섭하시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성애를 그린 소설 등을 여러 신사들 앞에서 읽는) 독회 장면을 예로 들면, 그냥 이렇게 지켜보세요. 그러다가 말씀을 주시죠, 읽다가 혀로 한번 입술에 침을 묻혀 봐요. 그런 작은 게 큰 차이를 만들더라고요, 감독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되죠. 배우들의 연기뿐이 아니에요. 미술, 음악, 의상 하나하나에 대해 정밀하게 마음을 쓰세요. 그렇게 하지 않는 감독들이 잘못하는 건 아니고 감독마다 특성이 다른 것이긴 하지만, 이렇게 작은 소품하나까지 화면 안에 들어가는 모든 것을 챙기는 감독은 제게는 처음이에요. 신기했고 배우인 저에게도 많은 공부가 됐어요.”

박찬욱 감독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할까. 국내 기자회견과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보다 가까이 마주한 박찬욱은 자신을 ‘협업이 끔찍하게 싫은 사람이고 교통사고라도 나서 레드카펫과 언론인터뷰를 피하고 싶을 만큼 누군가의 앞에 나서는 게 싫은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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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혼자 글 쓰고 그림 그리고, 혼자 하는 일이 맞는 성격이에요. (‘오마주’라는 책으로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그면서도) 글을 쓰는 게 너무 힘들어서 영화를 하게 됐어요. 그건 제가 좀 못 해도 다른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제 부족함을 메워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협업이 끔찍한 사람이에요, 누군가와 맞추고 한 명 한 명 소통해서 전체를 끌어나가는 일이 제겐 너무 어려운 거죠. 영화를 해오며 시간이 지날수록(실제로는 그가 세계적으로 성공한 감독이 되어서) 보다 좋은 사람들과 작업하게 돼서 다행이에요. 맞춰나가기가 좀 수월한 거죠. 그래도 힘든 건 여러 행사 무대에 서는 일들, (기자들을 보며 멋쩍은 듯 웃으며) 기자들을 만나는 일이에요. 그런 전날이면 교통사고라도 났으면 하는 심정이에요, 그러면 욕먹지 않고 공식적으로 그 일들을 피할 수 있잖아요.”

전혀 긴장하는 기색 없이 여유로운 표정과 몸짓으로 레드카펫을 밟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다소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를 엉킨 실타래 풀 듯 차분히 들려주는가 하면 빈틈을 허락하지 않는 미장센으로 ‘보는 맛’을 선사하는 박찬욱 감독의 겉모습 안에 그런 긴장과 곤란이 자리하고 있다니. 배우 하정우의 말을 역으로 적용하자면, 박찬욱 영화의 반전 세계가 인간 박찬욱의 면모인걸까. 알수록 더 알고 싶어지는 박찬욱의 세계, 그의 차기작이 벌써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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