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휴먼 시장, 떠오르는 부작용
버추얼 휴먼 연기 배우 과도한 노동
수익성 낮은 개발사 쉽게 도산·실직

<편집자주> 인간보다 더 인간같은 가상 인간, 버추얼 휴먼(디지털 휴먼) 시장에서 게임업계가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넷마블, 스마일게이트, 크래프톤 등은 이미 버추얼 휴먼을 상용화했고, 엔씨소프트도 버추얼 휴먼을 미래 먹거리 중 하나로 낙점하고 연구개발(R&D)에 한창이다. 그러나 버추얼 휴먼 시장이 마냥 장밋빛은 아니다. 쏟아지는 버추얼 휴먼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차별화를 꾀해야 하고, 윤리적인 문제와 인간의 일자리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는 디지털 휴먼 시장의 명과 암을 들여다본다.

버추얼 인플루언서들(사진=버추얼 휴먼스)/그린포스트코리아
버추얼 인플루언서들(사진=버추얼 휴먼스)/그린포스트코리아

미국의 버추얼 휴먼 정보 사이트 버추얼 휴먼스(Virtual Humans)에 등록된 버추얼 휴먼은 2022년 기준 200여명이다. 그러나 이들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음지에서 무명으로 활동중인 버추얼 휴먼이 더 많다. 수많은 버추얼 휴먼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이 중 절반 가량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진다.

실제로 2021년 기준 중국판 유튜브로 불리는 빌리빌리(嗶哩嗶哩)에서 활동중인 버추얼 인플루언서 3400여명 중 1800여명은 월 수익이 0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버추얼 인플루언서들은 일반 인플루언서들에 비해 많은 제작비를 소모하는데, 초반에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면 소규모 회사들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이로 인해 버추얼 휴먼의 평균 수명은 매우 짧아지게 됐다.

버추얼 휴먼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과로와 보상 문제 등 기업윤리도 논란거리다. 위에화 엔터테인먼트와 바이트댄스가 공동제작한 가상 아이돌 그룹 에이소울(A-SOUL)은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버추얼 휴먼 중 하나다. 공식 웨이보의 팔로워 수는 213만명이 넘고, 생일파티 생방송 하루에만 197만위안(약 3억7500만원)을 벌어들일 정도로 많은 팬들을 끌어모았다.

에이소울(사진=위에화)/그린포스트코리아
에이소울(사진=위에화)/그린포스트코리아

그러나 메인보컬 ‘캐롤(Carol)’을 맡은 배우가 개인 SNS에 “업무 강도가 너무 세서 몸이 상했다”는 내용을 올리면서 팬덤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새벽 4시까지 야근을 했다”며 “연습 중에 모션캡처 슈트에 긁혔는데 스태프들은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욕설을 들었다”고 호소했다.

또 에이소울이 벌어들이는 돈에 비해 배우들의 급여가 너무 낮다는 내부 폭로도 이어졌다. 배우에게 기본급 1만1000위안(약 209만원)과 생방송 수익 1%만 성과급으로 지급한다는 소식에 팬들은 분노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피해는 온전히 배우에게 돌아갔다. 잡음이 끊이지 않자 결국 소속사는 ‘캐롤’ 역 배우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버추얼 휴먼이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다른 분야로 영역을 넓히면서 인간의 일자리를 뺏길까 우려하는 시선도 커지고 있다. 중국 건설회사 완커 그룹이 만든 버추얼 휴먼 ‘추이샤오판(崔筱盼)’이 대표적인 사례다. 추이샤오판은 사내 미수금 처리 및 연체 관리를 위해 만들어졌고, 2021년 재무 부서에 신입 직원으로 입사했다. 그녀가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기에 회사 사람들은 그녀가 버추얼 휴먼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추이샤오판(사진=바이두)/그린포스트코리아
추이샤오판(사진=바이두)/그린포스트코리아

그녀의 정체는 다음 해 우수 신입사원상을 수상하면서 밝혀졌다. 완커 그룹의 이사회 의장은 SNS에 “추이샤오판의 수상을 축하한다”는 글을 남겼고, 비로소 진실을 알게 된 직원들은 충격에 빠졌다. 중국 고용 시장에 한파가 몰아친 상황이라 파급 효과는 더욱 컸다. 일부는 버추얼 휴먼이 인간에게 돌아가야 할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의문을 표했고, 일부는 인간보다 뛰어난 버추얼 휴먼의 업무 능력에 두려움을 느꼈다. 

이같은 반응은 중국 뿐만 아니라 한국과 전 세계 전역에서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 한국마이크로소프트(한국MS)가 공개한 ‘업무동향지표 2023’에 따르면 한국 응답자 57%는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실직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할리웃 작가들은 대본을 작성할 때 AI 사용을 제한할 것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고, 일본 연예계에서도 AI로부터 일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하나은행과 협업하는 버추얼 휴먼 ‘나수아’(사진=온마인드)/그린포스트코리아
하나은행과 협업하는 버추얼 휴먼 ‘나수아’(사진=온마인드)/그린포스트코리아

일부 우려에도 불구하고 버추얼 휴먼은 계속해서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국민·신한 등 은행에서는 이미 버추얼 휴먼 은행원을 시범 배치했고, 하나손해보험에서도 사내 교육 및 홍보 영상 제작에 버추얼 휴먼을 활용할 계획이다. 

버추얼 휴먼의 일자리 뺏기에 대한 우려가 아직은 이르다는 의견도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전에도 낮은 수준의 재무 업무를 담당하는 자동화 금융 시스템이 존재했으며, 버추얼 휴먼으로 오면서 달라진 점은 얼굴과 이름이 생겼다는 것 뿐”이라며 “고도의 업무와 최종 결정은 여전히 사람이 맡아야 한다”고 전했다. 

dmseo@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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