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AM 대상 9개 품목, EU 수출 금액의 15.3% 차지
EU와 동등한 수준으로 배출권 가격 높이고 기업들 지원해야

 

유럽연합(EU) 의회가 지난 6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 법률안을 확정했다.(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유럽연합(EU) 의회가 지난 6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 법률안을 확정했다.(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유럽연합(EU)이 2025년부터 강화된 ‘탄소국경세’를 본격 시행하기로 하면서 국내 산업에 미칠 파장이 그만큼 커질 전망이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7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EU가 온실가스 배출량 톤당 50달러의 탄소국경세를 부과할 경우 한국 수출은 연간 0.5%(약 32억 달러) 줄어들 것으로 분석됐다. 

국내 산업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기 위해서는 EU와 동등한 수준으로 배출권 가격을 부과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 시행되는 배출권거래제는 EU에 비해 배출권 가격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유상할당을 확대해 배출권 가격을 높이고 기업들이 온실가스 감축에 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EU, 2025년부터 강화된 탄소국경세 본격 시행

EU 의회가 지난 6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 법률안을 확정했다. EU는 지난해 7월 기후 대응 법안 ‘피트 포 55(Fit for 55)’를 발표하며 CBAM을 시행할 것을 예고했다. EU 의회는 지난해 12월 기존 집행위원회(안) 대비 대상 품목 및 기준, 도입 시기 등을 대폭 강화하는 안을 제시했다. 이번에 통과된 법률안은 초안보다 강화된 안이다. 

CBAM은 EU로 수입되는 제품에 포함된 온실가스 배출량에 EU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등과 연동된 탄소가격을 부과해 징수하는 조치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이 규제가 약한 국가로 이전하는 ‘탄소누출’을 방지하고 자국의 산업 경쟁력 약화 대응, 글로벌 기후 합의 사항에 대한 타국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EU로 수출하는 기업에는 일종의 추가 관세로 작용해 ‘탄소국경세’라 불린다.

CBAM은 내년부터 시범 시행에 들어가 2025년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초안의 경우 철강·알루미늄·시멘트를 비롯한 5개 항목이 우선 적용 품목으로 적용될 계획이었지만 강화된 안에 따라 플라스틱·유기화학품·수소·암모니아 등 4개 품목이 추가됐다. 또한 제도의 적용 배출범위를 직접배출에서 전기 생산에 따른 간접배출까지 확대하는 방안이 통과됐다. 

◇ CBAM 대상 9개 품목, EU 수출 금액의 15.3% 차지

산업계에 미칠 파장도 그만큼 커졌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표한 ‘EU의회의 탄소국경조정제도 수정안 평가와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2019~2021년 동안 한국이 EU로 수출한 연평균 금액은 초안에 포함된 5개 품목의 경우 30억 달러(4조2천억원) 규모로 EU에 대한 총수출액의 5.4%였다. 

여기에 추가된 4개 품목의 경우 같은 기간 연평균 수출 규모는 55억 달러(7조8천억원)로 EU 수출액의 9.9%에 달한다. 한국의 최근 3년간 연평균 EU 수출액 가운데 이들 9개 품목이 차지하는 비율이 15.3%에 이르는 상황이다.

CBAM은 EU 역외 제품과 역내 제품 사이의 온실가스 배출 비용의 차이를 관세의 형태로 부과하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7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EU가 온실가스 배출량 톤당 50달러의 탄소국경세를 부과할 경우 한국 수출은 연간 0.5%(약 32억 달러) 줄어들 것으로 분석됐다. 

산업연구원이 지난해 12월에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1년간 EU와 한국의 배출권거래제 가격 차이의 중위값인 33.1달러로 계산할 경우 알루미늄 산업은 13.1%, 철강산업은 12.3%, 시멘트·비료는 각각 1.8%의 EU 수출 감소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됐다.

◇ EU와 동등한 수준으로 배출권 가격 높여야

국내 산업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기 위해서는 EU와 동등한 수준으로 배출권 가격을 부과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 시행되는 배출권거래제는 EU에 비해 배출권 가격이 매우 낮은 수준이다. 

국내 배출권 가격은 작년 6월 t당 1만6150원에서 올해 1월 3만5400원, 7월 2만800원으로 나타났다. 유럽 탄소배출권(EU-ETS) 가격은 작년 7월 t당 52.14유로에서 올해 7월 78.11유로로 49.8% 증가했다. 현재 국내 배출권 가격은 톤당 2만7000원(19.44유로) 수준으로 올해 7월 기준 EU 배출권 가격(78.11유로)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EU와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국내 기업에 대해 유상할당을 통해 동등한 수준으로 탄소비용을 부과해 관세를 부담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후환경단체 ‘플랜 1.5’은 “기업에 부과하는 유상할당 재원은 기후대응기금으로 편입돼 기업들의 온실가스 감축 투자 및 지자체 지원, 정의로운 전환 등 다양한 사업에 활용될 수 있다”며 “하지만 CBAM 적용 대상 업종에 대한 유상할당 확대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해당 재원은 고스란히 EU의 예산과 기금으로 전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기업들 온실가스 감축 투자 유도하고 지원해야

이를 위해서는 현행 배출권거래제법에 따른 유상할당 대상 업종 기준과 유상할당 비율을 개편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현재 유상할당 대상 업종 기준은 무역집약도와 탄소비용발생도로 평가되는데, 현행 기준으로는 철강 및 석유화학, 시멘트 등 다배출 업종에 대한 유상할당 업종 지정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창훈 한국환경연구원 원장은 지난 14일 대한상공회의소에 개최한 ‘탄소중립 이행 위한 합리적인 규제 개선’ 세미나에서 “우리나라의 탄소가격 제도인 배출권거래제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며 “국가 감축목표에 상응하는 배출권 허용 총량을 사전에 확정하고 유상할당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형나 경희대학교 국제학과 교수도 “현행 배출권거래제는 배출권 가격이 낮고, 가격 변동성이 크며, 거래량이 빈약한 수준으로 기업이 온실가스 감축투자를 할 때 손익을 따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시멘트 업종은 저탄소 기술 도입에 톤당 50유로, 철강은 62유로, 알루미늄 60유로, 청정에너지는 40유로가 필요하다. 기업들이 배출권 가격이 낮은 상황에 더 많은 돈을 들여 저탄소 기술에 투자할 유인이 없는 상황이다. 

유상할당을 확대해 배출권 가격을 높이고 기업들이 온실가스 감축에 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경식 고철연구소장은 “스웨덴 철강회사 SSAB사는 EU가 유상할당 경매수입으로 조성한 혁신펀드로부터 1900억원을 지원받아 수소환원제철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며 “배출권거래제 유상할당 수입 등으로 조성된 기후대응기금의 상당부문을 기업의 혁신기술 개발에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SG가 재계와 산업계 전반의 화두다. 기업이 경제적 이윤만 추구하지 말고 사회와 환경을 두루 고려한 경영 활동을 해야 한다는 배경이다. 이런 흐름을 두고 일각에서는 “ESG를 윤리적 측면의 규범으로만 인식하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제도변화 관점에서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다.

배경은 크게 3가지다. 탄소국경세가 시행되는 등 교역 과정에서의 환경 이슈가 비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고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ESG 가치를 고려한 공급망 구축에 나서는 추세이며 매출과 이익 등 재무적인 내용 뿐 아니라 비재무적 요소까지 공시의무가 확대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ESG를 새로운 ‘보호무역주의’ 시선으로 보는 관점도 있다.

이를 두고 ‘친환경 가치 등을 중시한 지금까지의 ESG가 버전 1.0이었다면 앞으로의 ESG는 새로워진 버전 2.0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추세 속에 기업이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탄소국경세와 글로벌 공급망, ESG 공시의무 관련 전략은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ESG를 등한시하는 기업은 앞으로 어떤 어려움을 겪을지 등을 시리즈로 보도한다. [편집자 주]

smkwo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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