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 평가에 정의로운 전환 지표 포함
정의로운 전환 앞서가는 기업들, “이점이 크다는 것 알기 때문”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최대 투자자그룹인 Climate Action 100+(CA100+)는 10가지 지표를 마련해 기업의 탈탄소 벤치마크 평가를 수행하면서 지난 3월 ‘정의로운 전환’ 지표를 이 평가에 통합시켰다.(기후정의동맹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최대 투자자그룹인 Climate Action 100+(CA100+)는 10가지 지표를 마련해 기업의 탈탄소 벤치마크 평가를 수행하면서 지난 3월 ‘정의로운 전환’ 지표를 이 평가에 통합시켰다.(기후정의동맹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ESG 관점에서 정의로운 전환이 중요한 이슈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글로벌 투자그룹들이 정의로운 전환을 기업 ESG 평가의 주요한 요소로 고려하기 시작하면서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을 실행하고 있는 기업들도 생겨나고 있다. 탄소중립을 위한 전환 과정에서 기업들이 노동자와 지역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고려하지 않으면 기업의 사회적 평판을 해치고 투자자의 수익감소와 비용 증가로 이어져 기업의 혁신 역량이 손상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 글로벌 투자 평가에 정의로운 전환 지표 포함

유엔 책임투자원칙(UN PRI)은 지난 7월 11일 ‘투자자가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방안(How investors can advance decent work)’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투자자가 탈탄소 전환의 시기에 노사갈등이나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해 위험을 줄이면 회사의 공급망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하면 기업 운영의 효율성은 증가하고 평판이 추락할 위험은 감소한다. 

따라서 투자자는 탈탄소 전환의 과정에서 정의로운 전환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설명이다. 탈탄소 정책이 노동자와 지역사회, 소비자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그 영향을 완화하는 정의로운 정책과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리가 부실하면 탄소중립으로의 과정은 불평등을 키우고 노동자와 지역사회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지만, 성공적으로 전환되면 투자자에게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최대 투자자그룹인 Climate Action 100+(CA100+)는 10가지 지표를 마련해 기업의 탈탄소 벤치마크 평가를 수행하면서 지난 3월 ‘정의로운 전환’ 지표를 이 평가에 통합시켰다. CA100+가 정의로운 전환을 평가 지표에 포함한 이유는 의식 있는 투자자들의 거센 요구 때문이었다. 

‘세계 벤치마킹 얼라이언스(World Benchmarking Alliance, 이하 WBA)’는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지침(UNGPs)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등 국제인권규범에 근거한 지속가능성과 환경·인권경영에 관한 국제 기준을 개발하고 평가하는 글로벌 비영리기관이다. 

◇ 대상 기업 중 73%, 정의로운 전환 지표 미충족

이러한 WBA와 CA100+는 2021년 정의로운 전환에 관한 각자의 지표개발을 위해 협력했고, 이를 기반으로 166개 기업을 평가했다. 이들이 개발한 정의로운 전환 지표는 ‘파리 기후변화협약’과 국제노동기구(ILO)의 ‘정의로운 전환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수립됐다. 

평가 결과, 대상 기업 중 73%가 정의로운 전환 지표를 충족하지 못했다. 지표 하나 이상을 충족하는 기업은 27%에 불과했고, 이들 중에 75%가 넷제로 이행에 있어 정의로운 전환의 조치 필요성을 공식화하는 ‘인정(Acknowledgement) 단계’만 충족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다수 기업이 탈탄소 전략에 있어 약속과 이행 없이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하다는 인정만 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표 하나 이상을 충족하는 기업의 25%는 인정을 넘어 약속(Commitment), 참여(Engagement), 조치(Action)에 해당하는 다양한 수준의 진전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탈탄소의 속도와 규모에 맞는 전환은 아직 이행되지 않아 더 많은 조치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탄소 집약적 산업에 의존하고 있는 노동자와 지역사회 및 기타 이해관계자가 저탄소 전환의 과도기적 위치에서 물리적·재정적으로 피해를 보지 않도록 기업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 정의로운 전환 앞서가는 기업들, “이점이 크다는 것 알기 때문”

정의로운 전환에 관한 비교적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앞서 나가는 기업들도 있다. 이탈리아 에너지기업인 에넬(ENEL)은 2015년 발전소 해체로 영향을 받는 발전소 주변 지역의 포용적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Future-e’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또한 이를 위해 에넬은 세계 노동조합과 포괄적인 협정을 맺고, 이탈리아 노동조합과 정의로운 전환 협정을 맺었다. 

스웨덴 철강기업인 사브(SSAB)는 2026년까지 화석연료 없는 철강을 공급하고 2045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하면서 노동조합의 참여를 통해 양질의 조직화된 일자리가 유지될 것이라고 보장했다. 덴마크 에너지기업인 외스테드는 고탄소 산업인 석유와 가스에서 벗어나 2025년까지 에너지 생산에서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이를 정의로운 전환을 통해 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프랑스 전력공사(EDF)에서는 회사의 전통적인 사회적 대화 과정을 통해 정의로운 전환 개념이 등장했고 혁신적인 지역 생태계 전환 계약을 개발했다. 영국의 에너지기업인 SSE도 투자자가 개입하면서 고탄소 산업에서 벗어나 넷제로로 전환하는 것을 포함하는 20가지 활동을 통한 정의로운 전환 전략을 수립했다. 

지현영 법무법인 지평 ESG센터 변호사는 “정의로운 전환의 성공은 기후 파괴로 인한 막대한 인적 및 경제적 비용을 방지하고 신규 일자를 창출하고 불평등을 줄이지만, 실패는 기업과 투자자에게 시스템적 위험을 가중할 수 있다”며 “기업들이 앞서 움직이는 것은 노동자와 지역사회를 위해 공정하고 공평한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비용보다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smkwo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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