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럽, 한국 그리고 ISSB...ESG공시 의무화 추진 흐름
부담 느끼는 국내 기업...다양한 공시 기준서 공통분모 찾아야

ESG경영 강화를 위해 ESG정보 공시 의무화가 이뤄지고 있는 국제사회. 하지만 여전히 ESG 공시에 대한 글로벌 기준이 없고, 국가마다 기준이 다른 상황이다.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까?(클립아트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ESG경영 강화를 위해 ESG정보 공시 의무화가 이뤄지고 있는 국제사회. 하지만 여전히 ESG 공시에 대한 글로벌 기준이 없고, 국가마다 기준이 다른 상황이다.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까?(클립아트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기업 경영 리스크 관리 강화, ESG 워싱 문제 해결 등을 이유로 국제사회에서 기업의 ESG경영 정보 공시 의무화 제도가 마련되고 있다. 그러나 ESG공시에 대한 글로벌 기준이 없고, 국가마다 공시 기준이 달라 기업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일부 기업은 ESG공시 의무를 규제로 바라보기도 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ESG공시 의무화를 더 이상 규제로 바라봐선 안되며, 글로벌 공시 기준 마련 전까지 다양한 공시 기준에서 공통점을 찾아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 세계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는 ESG공시 의무 제도화

ESG공시는 ESG가 주목받기 시작한 지난해부터 함께 주목받은 이슈다. 특히 유럽연합(EU)과 미국은 지난해부터 ESG공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본격 논의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3월 EU는 그린워싱을 방지하고 금융기관의 자금이 ESG와 부합되게 운영되는지 공개하도록 하는 ‘지속가능금융공시규정(SFRD)’ 의무화를 시행했고, 이어 EU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4월 기업의 비재무정보보고지침(NFRD)을 개정한 ‘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을 입안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지난 4월 CSRD 자문기관이자 유럽 ESG공시 기준 제정기관으로 지정된 유럽 재무보고자문그룹(EFRAG)은 CSRD 초안을 발표했고, 유럽의회는 지난 6월 21일 CSRD 최종안에 합의했다.

CSRD는 2024년부터 종업원 250명, 연매출 4000만 유로(약 544억 원)를 초과하는 기업은 상장여부와 상관없이 ESG공시를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외국 기업의 경우 1억 5000만 유로(약 2041억 원)를 초과하는 기업에 적용되는데 국내 기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도 움직였다. 지난해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기후 관련 금융 위험에 관한 행정명령’을 발표하고, 6월에는 기후리스크 공시법 등 11개 주제로 구성된 ‘기업 지배구조 개선 및 투자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하원을 통과했다.

이후 지난 3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기후정보공시 기준 초안’을 공개했다. SEC의 기후정보공시 기준은 미국 상장기업은 온실가스 배출량, 기후관련 리스크와 리스크 관리 과정, 기업이 식별한 기후관련 리스크가 단기, 중기, 장기적으로 영업활동과 연결 제무제표에 미치는 영향을 시장에 의무 공시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특히 SEC 기후정보공시의 온실가스 배출량 공시는 제품의 생산 단계에서 발생하는 직접 배출량인 ‘스코프1’사업장에서 사용하는 전기 등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간접 배출량 ‘스코프2’뿐만 아니라, 제품 생산 외 협력업체, 물류, 제품 사용 및 폐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인 ‘스코프3’까지 공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SEC 기후정보 공시는 올 연말 확정될 예정이다. 초안에 변동이 없을 경우 2023년 회계연도 재무제표부터 상장 대기업을 대상으로 스코프1과 스코프2의 공시가 의무화된다. 2024년부터는 스코프3까지 공시가 의무화될 예정이다. 미국 내 상장된 국내 기업들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도 ESG공시 의무화가 예고돼 있다. 지난해 1월 금융위원회는 ‘기업공시제도 종합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2025년부터 일정 규모 이상 자산을 보유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ESG 공시가 의무화될 방침이다. 2030년부터는 나머지 모든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로 ESG공시 의무가 확대될 예정이다.

◇ ESG공시 의무에 국내기업들 “부담”

이러한 흐름에 국내 기업들은 ESG공시 의무화가 부담스럽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상장협의회가 코스피 상장사 797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ESG 정보공개 의무화 관련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기업(254개사)의 88.6%가 ‘환경정보·정보보호 개별 법률에서 ESG 정보 공개 의무화가 추진되는 상황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러한 모습은 지난 7월에 특히 잘 나타났다. ESG공시 기준 초안을 위해 지난해 11월 유엔기후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국제회계기준(IFRS)재단이 설립한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는 지난 3월 ‘IFRS S1 일반 요구사항’ 및 'IFRS S2 기후관련 공시‘에 대한 공개 초안을 발표했다.

초안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일반 요구사항은 기업이 투자자에게 지속가능성 관련 리스크와 정보 등을 공시하도록 권고한 것이다. 협력사에 대한 지속가능성 관련 정보도 보고하도록 강화했다. 재무제표에 미치는 영향을 양적 정보로 공시하고, 사업 모델에 미치는 단기·중기·장기 영향 정보 공시도 권고하고 있다.

기후관련 공시는 기업이 투자자나 이용자에게 기후관련 위험이나 기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권고한 것이다. 탄소배출량 정보를 공시할 때 스코프3 배출량까지 공시하는 등 범위를 확대했다. ISSB는 전 세계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수렴 후 올해 연말까지 2개 기준에 대한 최종기준을 공표할 예정이다.

초안이 발표된 이후 국내 경제계에서는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들은 연이어 ISSB의 공개초안에 대해 ‘국내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우려에 금융위원회와 회계기준원은 국내 주요 기업과 금융사, 회계 및 법무법인, 유관기관으로 구성된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자문위원회’ 등을 중심으로 공개 의견 수렴 과정을 진행했다.

의견수렴 결과 국내 이해관계자들은 “해당 기준이 국내 기업에게 부담이 될 수 있으며 기준 적용의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며 “구체적인 지침이나 예시 제공, 공시 요구사항의 완화, 충분한 준비기간 부여 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금융위원회와 회계기준원은 수렴된 의견을 내용으로 '한국 측 의견서'를 제작해 지난 7월 29일 ISSB에 제출했다.

하지만 국내 경제계의 입장이 얼마나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IFRS는 기업의 회계처리와 재무제표에 대한 통일성을 높이기 위해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가 마련해 공표하는 회계기준이다. 기업의 전반적인 재무보고 시스템, 회계 및 자본시장의 감독 법규, 실무 등에 대한 국제적 기준으로 볼 수 있다.

때문에 ISSB가 마련할 ESG 공시기준은 세계 각국이 채택하는 글로벌 기준이 될 것으로 전망되며, ISSB 공시기준은 기존 ESG공시기준보다 강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ESG공시 의무화에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처럼 국제사회에서는 ESG공시 의무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 상황인 반면, 국내 기업과 경제계의 시선은 이러한 흐름을 우려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ESG 전문가들은 더 이상 ESG공시 의무화 흐름을 기업 부담이나 규제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제언한다.

오수길 지속가능성연구소 소장은 “현재 기업의 ESG경영은 필연적인 흐름으로, ESG공시 표준이 구축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기업들이 공시 기준에 대응하기 위한 역량 강화에 더 신경을 써야한다. ESG를 기업 부담으로 한정하지 말고 ESG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솔직하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 역시 지난 22일 열린 ‘한국기업지배구조원 개원 20주년 기념 좌담회’에서 “ESG는 세계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우리가 계속 고민해야 할 이슈”라며 “국내 ESG공시 의무화에 대비해 ESG 관련 공시제도를 구체화해 나갈 것이며,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뒷받침 할 수 있도록 ESG 발전을 위한 정책적 지원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ESG공시 의무화에 대응력을 키우기 위해 현재 사용되고 있는 다양한 ESG공시 기준을 활용하는 한편, 글로벌 ESG공시 기준이 어떻게 형성될 것인지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준호 전경련 ESG팀장은 “ESG공시 의무화가 이뤄지고 있지만 국가마다 공시기준이 다르고 글로벌 표준이 없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어떤 기준에 맞춰 얼마나 공시를 해야 하느냐’, ‘국내 기준과 해외 기준 중 어떤 공시에 중점을 둘 것이냐’이다”라며 “ 다양한 공시 제도로 사용되고 있는 지속가능보고서 가이드라인(GRI)를 비롯해 지속가능성회계기준위원회(SASB) 등의 기준에서 공통된 부분들을 찾아 대응을 준비하고, 향후 국제 기준이 될 ISSB 공시기준을 유심히 모니터링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ESG전문가인 최남수 서정대 교수 역시 “ESG공시에 대한 글로벌 표준이 도출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GRI, SASB, 기후관련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TCFD) 등 글로벌 지표를 사용해 ESG평가 및 공시를 준비하고, ESG 평가가 표준화 되는 과정을 주시하며 대응책 마련과 공시에 적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SG가 재계와 산업계 전반의 화두다. 기업이 경제적 이윤만 추구하지 말고 사회와 환경을 두루 고려한 경영 활동을 해야 한다는 배경이다. 이런 흐름을 두고 일각에서는 “ESG를 윤리적 측면의 규범으로만 인식하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제도변화 관점에서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다.

배경은 크게 3가지다. 탄소국경세가 시행되는 등 교역 과정에서의 환경 이슈가 비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고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ESG 가치를 고려한 공급망 구축에 나서는 추세이며 매출과 이익 등 재무적인 내용 뿐 아니라 비재무적 요소까지 공시의무가 확대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ESG를 새로운 ‘보호무역주의’ 시선으로 보는 관점도 있다.

이를 두고 ‘친환경 가치 등을 중시한 지금까지의 ESG가 버전 1.0이었다면 앞으로의 ESG는 새로워진 버전 2.0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추세 속에 기업이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탄소국경세와 글로벌 공급망, ESG 공시의무 관련 전략은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ESG를 등한시하는 기업은 앞으로 어떤 어려움을 겪을지 등을 시리즈로 보도한다. [편집자 주]

hdlim@greenpost.kr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