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 성장에만 몰두 정부 친환경차 정책…경착륙 우려
영국 등 세계 각국 내연기관차 퇴출 선언
양정 팽창 보단 소비자 니즈 반영한 합리적 인프라 필요

 
전기차
최근 기술발달로 그 보급수가 증가하고 있는 전기차 충전 모습. (공민식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김동수 기자] 135년 동안 자동차 산업을 주도했던 내연기관차의 종말이 초읽기에 들어섰다. 지구온난화 등 기후위기가 전(全) 세계적인 이슈로 급부상하면서 다수 국가에서 내연기관차 퇴출 선언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자동차 제조업체들도 마찬가지다. 변화하는 국가 정책 및 시장 환경에 발맞춰 내연기관차에서 친환경차로의 전환을 준비 중이다.

국내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11년 태동하기 시작한 국내 전기차 보급을 시작으로 현 정부는 보조금 지원을 통해 친환경차 보급에 가속페달을 밟아왔다. 여기에 최근 발표한 ‘그린뉴딜’ 전략에 그린모빌티리 확대가 한 축을 담당하면서 친환경차 보급에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하지만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는 국내 친환경차 산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국내 역시 친환경차가 내연기관차의 자리를 차지할 테지만, 일각에서는 그간 양적 성장에만 머문 정부 정책으로 관련 산업이 ‘경착륙(硬着陸)’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 기술 개발과 함께 앞당겨진 세계적 추세…내연기관차 종말

유럽연합(EU)은 2018년 12월 파리기후협약에 따라 2030년까지 승용차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CO2)를 37.5% 감축하기로 했다. 차량당 CO2 배출 허용량을 기존 130g/㎞에서 2020년부터 95g/㎞로 제한하고 기준을 충족 못 한 자동차 판매 시, 기준을 초과한 CO2 배출량과 판매량을 토대로 차량당 95유로의 벌금을 물린다. 더 나아가 2023년 62g/㎞, 2050년 10g/㎞로 낮출 계획이다.

이에 유럽연합의 많은 국가가 내연기관차에 ‘사망선고’를 내린 바 있다. 영국은 2035년부터 휘발유와 경유차는 물론 하이브리드 차량까지 판매 금지하기로 했다. 이는 애초 2040년이었던 금지 적용 시기를 무려 5년이나 앞당긴 것이다. 프랑스도 2040년부터 화석연료 차량을 판매 금지하고 독일에서도 2030년부터 화석연료차 판매를 금지하는 결의안이 의회를 통과했다. 네덜란드와 스페인도 각각 2030년, 2040년에 내연기관차 판매금지 목표를 선언했으며 이 밖에도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도 동참 중이다.

반면 친환경차에 대한 보조금과 정책은 강화되고 있다. 독일은 최근 코로나19 경기 부양안으로 전기차 정부보조금을 기존 3000유로에서 6000유로로 확대했다. 여기에 부가세도 3% 인하했다. 프랑스도 올해 6월부터 12월까지 승용 전기차 보조금을 6000유로에서 7000유로로 상향했고 영국도 세계적 추세에 따라 전기차 교체 보조금으로 6000파운드를 지급하는 방안을 계획 중이어서 내연기관차의 입지는 더 좁아질 전망이다.

내연기관차 퇴출이란 세계적 추세는 유럽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시아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은데, 인도가 2030년부터 휘발유와 경유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했다. 싱가포르도 지난 2월 2040년까지 내연기관차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모든 차량을 친환경차로 바꾸는 비전을 발표했다. 중국도 국가 차원에서 내연기관차 퇴출에 적극적이다.

전문가들은 과거 내연기관차와 친환경차가 30~40년 정도 공존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앞서 본 세계 각국의 사례와 같이 기술 발달로 친환경차의 단점이 급격히 사라지면서 그 시기가 앞당겨진 것이다.

친환경차 수출현장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친환경차 수출현장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보급 목표 제시에만 급급…충전소 등 인프라 질적 관리 ‘뒷전’ 

유럽 등의 국가에 비해 그 강도는 약하지만 국내 역시 친환경차로의 전환이라는 세계적인 추세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새해 첫 일정으로 평택항을 찾아 “대중교통과 화물차량도 친환경차로 전환하고 2030년까지 신차의 33%를 친환경차로 보급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정부에선 친환경차 보급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발언은 그 의미가 크다. 이전 정부도 2020년까지 신차 판매의 30%를 친환경차로 대체하겠다고 공언하긴 했지만 문제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부터 친환경차를 신(新)성장동력 중 하나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보 시절 그는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설치하고 전기차 등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한 바 있다.

국내에선 정부 차원에서 유럽과 같이 내연기관차 퇴출을 공식 선언한 적은 없지만 서울시가 지난 8일 2035년부터 친환경차인 전기차와 수소차만 신규등록할 수 있도록 법령을 개정할 것을 정부에 건의하기로 하는 ‘서울판 그린뉴딜’을 발표하면서 내연기관차 퇴출이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최근 정부가 ‘그린뉴딜’ 전략에서 2025년까지 전기차와 수소차 보급대수를 각각 12배, 40배로 확대한다고 발표해 친환경차가 국내 자동차 산업의 주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정부의 정책을 기존과 같은 ‘양적 성장’에만 머물러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지금까지 막대한 보조금을 통해 국내 친환경차 시장을 크게 성장시켰지만 충전소 인프라와 관련 전문인력 양성 등 ‘질적 관리’는 여전히 미비하다는 것이다. 

경기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 ‘미세먼지 저감, 전기차・수소차 어디까지 왔나'에 따르면 정부의 지원정책으로 전기차・수소차는 2015~2019년 사이 16.5배가 증가할 정도로 상승곡선을 그려왔다.

반면 전기차·수소차 확대를 위한 대표적 인프라인 충전기반시설 보급을 더디기만 한 상황이다. 전기차 공용 급속충전기는 2018년 3만9000기 구축 완료 계획이었지만 2019년 겨우 5800기가 구축됐다. 즉, 3만3200기나 괴리가 발생한 것이다. 수소충전소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2019년 86개소 구축 완료할 계획이었지만 목표에 절반도 채 안 되는 25개소만 구축(착공 제외)돼 61개소나 괴리가 있다. 결국 정부는 자신 있게 발표한 목표조차 매번 달성하지 못하면서 무리하게 친환경차 보급에만 나서고 있는 셈이다.

보고서는 또한 수요자 중심이 아닌 공급자 위주의 충전기반시설 설치도 이용 효율성을 저하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충전기반시설은 교통량이 많고 거주 및 이동인구가 많은 지역에 설치해야 효과적이다. 하지만 관공서나 외곽 공공부지에 지나치게 편중한다는 것이다. 2019년 10월 기준 공용 급속 전기차 충전기 설치비율을 볼 때 시군청, 주민센터 등 공공시설에 설치한 것이 1595기로 전체의 30%나 차지한다. 수소충전소는 도심 입지규제, 주민 반대 민원 등으로 충전이 불편한 외곽 공공부지에 집중돼 수요-공급이 미스매치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국내 주거 특성에 맞는 한국형 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있지만 정부는 이를 전혀 고민하지 않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나온다. 가령 도심지 약 70%가 거주하는 아파트의 경우 좁은 공용주차장 특성에 맞게 모바일 충전기 활성 방안을 세워야 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30%가 거주하는 빌라나 연립주택의 경우는 주차장 넓이가 좁아서 공공용 충전기 설치조건이 되지 않아 혜택에서 제외되는 등 불이익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 등이 필요하다고 한다.

여기에 충전기 관리예산을 별도로 책정해 충전 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사고를 예방하는 등 양적 팽창을 넘어 질적 측면에서 관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 정책은 매해 보급 목표 수치만 제시할 뿐 소비자의 니즈 반영이나 합리적인 인프라 구축과 거리가 멀었다고 이들은 설명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내연기관차의 종말 시점이 15~20년 내로 빨라지고 있어 이 기간에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며 “예를 들어 전기차의 경우 정비부터 폐배터리 리사이클, 충전기 등 관련 전문인력 양성이 필요하지만 국내는 아직 취약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가 매해 보급 수치를 제시하며 목표의식을 갖는 것은 좋지만 이제 양적 팽창이 아니 대한 질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kds0327@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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