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홍수시대] ①번번이 삐끗하는 환경부 정책들
문제 터지면 고민없이 '업체와 자발적협약'만 우려먹기

플라스틱은 20세기 기적의 소재라 불렸다. 지난 150년간 인류에게 선물처럼 쓰였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은 이제 골칫덩어리가 됐다. 폐플라스틱을 대량으로 흡수했던 중국이 올 1월 수입을 전면 중단하면서다. 그간 각국에서 무분별하게 버려진 플라스틱은 북태평양에 쓰레기섬을 만들었고 그 크기가 무려 한반도 면적의 7배인 155만㎢다. 완전 분해에 500년 걸린다는 플라스틱은 인류 영속을 방해하는 실패한 발명품이 됐다. 정부는 2030년까지 플라스틱 사용량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침투한 플라스틱의 폐해를 과연 막을 수 있을까. '플라스틱 홍수시대' 시리즈를 통해 국내 플라스틱 관련 문제점을 짚어보고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지난 7월 1일 서울 한 대형마트 앞에서 펼쳐진 '플라스틱 어택' 활동 당시 모습. (서창완 기자) 2018.7.1/그린포스트코리아
지난 7월 1일 서울 한 대형마트 앞에서 펼쳐진 '플라스틱 어택' 활동 당시 모습. (서창완 기자) 2018.7.1/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서창완 기자] 26억개, 414장, 5445.6톤. 비닐과 플라스틱을 둘러싼 숫자다. 자원순환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하루 평균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은 2003년 하루 3956.4톤에서 2016년 하루 5445.6톤으로 40% 가까이 늘었다. 플라스틱컵은 2015년 기준 연간 26억개 정도를 배출했다. 국민 1인당 연간 비닐 소비량은 414장 정도로 추정된다.

플라스틱은 저렴하고 편리해 어디서든 쓰인다. 카페, 배달음식점, 마트·편의점 등 다양한 곳에서 활용된다. 투명한 플라스틱은 깨끗한 느낌을 줬다. 재활용이 가능해 환경오염 문제도 적다고 생각했다. 지난 5월 국내에 터진 ‘재활용 쓰레기 대란’이 없었다면 여전히 사랑받고 있을지 모른다.

◇자발적 협약만 믿었는데…마음 급해진 환경부

서울 마포구 한 오피스텔 폐기물 수거장에 쌓인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서창완 기자) 2018.9.23/그린포스트코리아
서울 마포구 한 오피스텔 폐기물 수거장에 쌓인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서창완 기자) 2018.9.23/그린포스트코리아

환경부는 5월 재활용 폐기물 관리 종합대책을 내놓으며 2030년까지 플라스틱 쓰레기 발생량을 절반으로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이 폐플라스틱 수입을 중단하면서 4월부터 나타난 ‘재활용 쓰레기 대란’ 여파에 대한 대책이다. 지난 8월부터는 ‘커피전문점 등 식품접객업의 매장 내 일회용컵 단속’을 시작했다.

문제는 환경부의 매장내 플라스틱컵 금지 정책이 최근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환경부가 매장 내 일회용컵 사용을 금지하는 근거가 된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자원재활용법)이 만들어진 게 1994년이다. 그 뒤 일회용컵 정책은 자발적 협약 형태로 올해 재활용 대란 이후까지도 형태만 바꿔 계속됐다.

“환경부는 4일 일회용컵의 재활용을 촉진하기 위해 7개의 패스트푸드 체인업체 및 24개의 테이크아웃 커피전문 체인업체와 ‘일회용품 줄이기 자발적 협약’을 체결했다.”

최근 뉴스를 가득 메웠을 법한 위 문장은 2002년 10월 4일 신문에 실린 기사 발췌문이다. 당시 협약에서는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가 도입됐다. 해당 제도는 50원, 100원의 1회용컵 처리 비용을 포함해 음료를 구입한 소비자가 컵을 반납하면 해당 액수를 돌려받을 수 있게 했다. 50평 이상 커피전문점에서는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기로 한 합의 내용도 포함됐다.

일회용컵 단속이 시작되긴 전 음료 픽업대 모습. (서창완 기자) 2018.6.20/그린포스트코리아
일회용컵 단속이 시작되긴 전 음료 픽업대 모습. (서창완 기자) 2018.6.20/그린포스트코리아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는 2008년 폐지됐다. 미반환 보증금 관리의 불투명성과 매장 회수 일회용컵 증가세 둔화 등이 이유였다. 2014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조사 결과를 보면 컵보증금제 폐지 이듬해인 2009년 커피전문점 등의 매장당 일회용컵 사용량은 10만5996개로 늘어났다. 제도 폐지 이전 5년 동안 사용량은 2만~3만 개에 불과했다.

실효성 있는 정책을 폐지한 이듬해인 2009년 환경부는 다회용 개인 컵 사용 소비자에게 가격을 할인해 주는 내용이 추가된 자발적 협약을 업계와 다시 체결했다. 2013년 자발적 협약에서는 2020년까지 일회용품 사용량을 22%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올해 맺은 자발적 협약도 습관에 따른 결과다. 텀블러 사용 혜택과 다회용컵 우선 제공 등이 반복됐다. 환경부는 소비자나 협약 업체 직원들이 잘 모르는 자발적 협약을 15년간 4번이나 맺어왔다.

오래된 자원재활용법의 재정비도 필요해 보인다. 플라스틱컵과 한 세트처럼 쓰이는 플라스틱 빨대는 여전히 제재 품목이 아니다. 커피전문점 안에서 머그잔에 빨대를 꽂아 놓고 커피를 마셔도 제재할 법적 권한이 없다.

이병화 환경부 자원순환정책과장은 “빨대는 현행법상 금지 대상이 아니라서 업계 자율적으로 감축을 유도하고 있다”며 “빨대가 이슈화된 게 비교적 최근이라 과거 법 제정 과정에 빨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일회용품 규제 비대상 품목인 플라스틱 빨대 등에 관련해서는 정책 마련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EPR 제도 허점… 일회용과 재활용의 묘한 경계

비오는 날 서울 광화문역에 설치된 우산 빗물 제거기. (서창완 기자) 2018.10.5/그린포스트코리아
비오는 날 서울 광화문역에 설치된 우산 빗물 제거기. (서창완 기자) 2018.10.5/그린포스트코리아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에도 허점이 드러났다. EPR제도는 재활용을 원활히 하기 위한 제도다. 포장재·제품 생산자에게 회수·재활용에 드는 비용을 분담하게 해 재활용률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품목을 보면 페트병, 유리병 등 4개 포장재와 타이어, 형광등 등 39개 제품에 해당된다. 생산과정에 물건을 보관해야 하는 포장재 용도로 쓰이거나 수명이 긴 게 특징이다.

환경부가 지난 8월 2일 입법예고 한 '자원재활용법' 하위법령 개정안에도 EPR제도가 등장한다. 비닐 5종을 EPR제도 품목에 추가하기로 한 내용이다. 비닐 5종은 세탁소 비닐, 운송용 에어캡(일명 뽁뽁이), 우산용 비닐 등 비닐봉지, 일회용 비닐장갑, 식품 포장용 랩 필름 등이다. 재활용업체 지원금을 높여 원활한 재활용을 가능하게 한다는 목적이다.

이중 세탁소 비닐이나 우산용 비닐 등은 발생 억제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부피가 큰 데다 단 한 번 쓰고 버리는 1회용 측면이 강해서다. 서울시는 쓰레기 대란 뒤인 지난 5월에서야 지하철 역사에서 우산비닐 제공을 금지했다. 연간 1억장 정도로 추정되는 사용량을 줄이려는 목적이었다. 세탁소 비닐 사용량은 우산비닐 사용보다 5배 넘게 많은 5억장 이상 사용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한 세탁소에 세탁용 비닐에 쌓인 옷들이 걸려 있다. (서창완 기자) 2018.10.17/그린포스트코리아
서울 한 세탁소에 세탁용 비닐에 쌓인 옷들이 걸려 있다. (서창완 기자) 2018.10.17/그린포스트코리아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사무총장은 세탁소 비닐은 EPR보다 일회용 억제 정책에 어울리는 품목이라고 설명했다. 김 사무총장은 “정부에 세탁소 비닐을 규제 정책으로 관리하라는 요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면서 “세탁소 비닐 같은 경우 억제를 우선한 뒤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부분을 수거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세탁소 비닐의 경우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지는 않은 측면이 있어 검토 못한 측면이 있다”고 인정했다.

일회용과 재활용품의 경계는 편의점 컵얼음에서도 나타난다. 업계에 따르면 편의점 컵 얼음 판매량은 연간 3억개에 달한다. 양이 상당함에도 규제 방법은 마땅치 않다. 편의점 플라스틱컵이 ‘일회용컵’으로 분류되지 않아서다. 컵얼음은 ‘일회용품’이 아닌 ‘포장재’로 분류돼 EPR제도 대상이다. 앞으로 진행될 '일회용컵 대책' 대상이 아닌 셈이다. 소비량을 생각하면 아쉬운 지점이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편의점 컵얼음 사용을 줄이고 재활용하기 위한 방안이라면 컵보증금 적용 정도인데 그마저도 법률을 개정해야 하는 문제”라며 “지금 단계에서는 포장재 자체에 생분해성 재질을 적용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홍 소장은 자원재활용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흐른 만큼 규제와 관련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제품 판매 형태 등이 과거와 비교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똑같은 플라스틱컵도 다른 기준을 적용이 적용되는 만큼 기존 규제만으로는 대응하기 복잡한 상황이다.

◇고민 흔적 없는 기존 정책 재활용 언제까지

비닐·플라스틱 포장 범람을 느끼고 싶다면 대형마트에 가면 된다. (서창완 기자) 2018.10.20/그린포스트코리아
비닐·플라스틱 포장 범람을 느끼고 싶다면 대형마트에 가면 된다. (서창완 기자) 2018.6.7/그린포스트코리아

환경부가 지난 5월 발표한 재활용 폐기물 종합대책에는 깊은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유통·소비 단계 과대포장 억제와 일회용품 사용 획기적 저감을 위한 대책만 봐도 그렇다. 2008년 폐지된 컵 보증금 제도 부활, 대형마트·슈퍼 비닐봉투 사용금지 등 기존 정책의 재활용 측면이 크다. 생분해 플라스틱이나 근본적인 규제 검토 논의는 빠졌다.

환경부가 지난 2010년부터 대형마트와 맺고 있는 자발적 협약도 이번 대책에 생색내기처럼 들어가 있다. 자원순환사회연대 등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비닐봉지 생산량은 2003년 125억개에서 2015년 216억개 수준으로 높아졌다. 2008년 147억개, 2013년 191억개로 가파르게 늘어났다. 이런 상황에 환경부는 지난 4월 26일 5개 대형마트 사업자와 함께 ‘일회용 비닐쇼핑백·과대포장 없는 점포 운영 자발적 협약’을 맺었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비닐 롤백 최소화와 1+1 행사상품 포장을 최소화하는 식으로 노력하고 있다”며 “애초에 생산할 때 줄이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비닐 롤백 사용을 줄이는데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종착점은 최소화지만, 소비자 인식이 바뀌는 것도 필요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답했다.

거의 모든 것이 포장된 장바구니 품목. (서창완 기자) 2018.6.7/그린포스트코리아
대형마트에서 비닐과 플라스틱을 피해가기는 어렵다. (서창완 기자) 2018.6.7/그린포스트코리아

대형마트와 환경부는 8년의 시간 동안 소비자 인식 변화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대형마트는 비닐봉투 줄이기 자발적 협약을 반복한 동안 비닐·플라스틱 포장의 진열장이 됐다. 이곳에서는 사과·대파 등 대부분 신선식품 품목들이 위생과 편리함, 1인 가구 증가 등을 이유로 개별 포장돼 있다. 최종적으로 들고 가는 장바구니용 비닐 봉투나 속비닐 사용을 ‘자발적’으로 규제하는 정책을 8년이나 반복해 온 결과다.

배선영 녹색연합 활동가는 “소비자들에게는 재활용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라면서 마트에서 장을 보면 비닐이 폭탄 수준”이라며 “쓰레기를 줄이는 삶을 추구해도 장을 보러 마트에 가면 좌절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쓰레기 대란 이후 포장재를 원하지 않는 소비자들도 많아지는 추세다. 소비자가 요구할 때 비닐과 플라스틱을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 도입 등을 생각해 봐야 한다. 자발적 협약 우려먹기 대신 진지한 고민과 실효성 있는 환경부 대책이 필요한 때다.

 

/기획취재: 박소희 기자, 서창완 기자, 주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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