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퇴직연금 제도는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가 가입자 직접 신청(옵트인·계약형) 방식인 점, 300여 개 상품 난립으로 운용의 질 저하 등이 수익률 부진 원인으로 지목된다./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여야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의 임기 연장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논의가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연금특위는 현재 국회에 발의된 ‘운용 주체별 3개 모델’을 중심으로 논의를 가속할 전망이다.

18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는 올해 말까지인 연금특위 임기를 내년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연금특위의 공식 임무는 ‘국민연금 구조개혁’과 ‘다층 노후소득 보장 체계 정비’이며, ‘퇴직연금 개편(기금형 도입 포함)’은 다층보장체계의 중요 축으로 분류된다.

연금특위는 지난 3월 출범했으나 활동 기간 대부분을 사실상 공회전했다. 6월 대선 등 잇따른 정치 일정과 의견 불일치로 탓이 컸다. 권고안을 마련할 민간자문위원회는 출범 반년 만인 지난 9월 말 구성됐고, 지난 14일에야 첫 회의를 열었다.

국회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국내 퇴직연금은 최근 10년(2015~2024년)간 평균 수익률이 2.34%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평균 임금 상승률(3.47%)이나 국민연금 평균 수익률(6.56%)에 크게 못 미쳐, 제 역할을 못 한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다.

수익률 부진 원인으로는 △전체 적립금의 83%가 예·적금 등 원리금보장상품에 몰린 구조 △2022년 7월 도입된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가 가입자 직접 신청(옵트인·계약형) 방식인 점 △300여 개 상품 난립으로 운용의 질 저하 등이 지목된다.

반면, 기금형은 독립 수탁법인이 퇴직연금 적립금을 통합 운용해 운용 효율성과 수익률 개선 가능성이 비교적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공적 기금형 퇴직연금인 근로복지공단의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푸른씨앗’)은 지난 9월 연환산 수익률 8.94%(최근 3년 평균 7% 안팎)를 기록했다.

당시 박종길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은 “푸른씨앗에 30인 미만 사업장만 가입할 수 있어 아쉽다”라며 “근로자 수와 상관없이 근로조건이 열악한 취약계층과 사업주가 불분명한 노무제공자 등 적용 범위가 조속히 확대되길 바란다”라고 기금형 수탁업무 확대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현재 국회에는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에 관해 4건의 법안이 발의돼 있으며, 운용 주체별로 크게 3가지 모델로 나뉜다.

우선 ‘대기업 자율형’(한정애 의원 대표발의안)은 대기업·우량기업 중심으로 ‘사업장 단위 기금’을 구성하며, 노사 자율로 기금 설치 여부와 구조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기금 설치 주체가 기업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금융사 경쟁형’(안도걸 안)은 금융사들이 기금형 퇴직연금 운용기관을 설립하는 방안이다. 운용 성과·수수료 경쟁을 촉진해 수익률을 높이려는 시장 기반 모델로 평가된다.

‘공공기관 주도형’(박홍배·안호영 안)은 국민연금과 유사하게 공적 기금기구가 설계·운용을 주도하는 형태다. 실제 기금 수탁·운용 인프라를 보유한 근로복지공단이 가장 현실적인 수탁 주체로 거론된다.

다만, 안호영 안은 ‘퇴직연금공단’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공적 기관을 신설하는 방안이어서 조직 구성, 예산 확보, 정치적 합의 등이 장벽으로 꼽힌다.

한 퇴직연금 전문가는 “기금형 도입의 필요성에 공감한다면, 누가 어떤 방식으로 어디까지 운용할지 운영 주체와 범위 결정이 쟁점”이라며 “3개 모델의 차이가 뚜렷해서 통합안을 도출하기가 쉽지 않아 대안 발의로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관측했다.

한편, 지난 3월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9%에서 13%로 단계적 인상, 소득대체율은 40%에서 43%로 인상됐다.

연금특위 민간자문위는 지난 14일 첫 회의에서 1700조원 규모의 ‘미적립부채(Unfunded Liabilities)’라는 개념과 공개 여부를 두고 공방을 벌였다.

미적립부채는 국민연금이 미래에 지급해야 할 총연금액에서 지금까지 쌓은 적립금과 향후 보험료 수입을 제외한 차액이다. 현 제도를 유지하면, 추가 보험료 인상이나 세금 투입 없이 연금 지급을 위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 금액을 말한다. 당장 갚아야 할 빚은 아니지만, 미래 세대가 짊어질 잠재적 부채인 셈이다.

한쪽에서는 “미래세대에 떠넘길 빚 폭탄”이라며 “당장 이 규모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국제적으로도 잘 쓰지 않는 개념”이라며 “국민에게 불필요한 공포감을 조장한다”고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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