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 온도, 원전 냉각 필요 설계 기준치에 근접 중
한수원 원자력안전위에 보고··· "에너지 안보 위협"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 상승이 원자력 발전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 상승이 원자력 발전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기후변화로 인한 바닷물(해수) 온도 급상승이 국내 원전의 냉각 안전여유를 빠르게 갉아먹고 있다. 해수 온도가 설계 기준에 다가서면 원자로를 멈춰야 하는 상황이 현실화될 수 있어 향후 10년 내 최대 8기 원전이 정지 위기에 놓였다. 이는 전력 공급 불안과 안전성 저하로 이어져 국가 에너지 안보를 위협하게된다. 단순한 기준 조정이 아닌 냉각 설비 개선과 안전 기준 강화가 시급하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14일 열린 제218회 회의에서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해수 온도 상승에 따른 대응 현황과 계획을 보고받았고, 다수 원전이 설계 기준치에 근접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에 따르면, 국내 원전의 설계 해수 온도는 대략 31도에서 36.1도 사이이며, 이를 넘으면 운전을 제한한다. 지난해엔 신한울 1·2호기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부지에서 최고 해수 온도 기록이 경신됐다. 

설계 해수 온도가 31.5도인 신월성 1·2호기는 여름 실제 해수 온도가 31도까지 올라 '여유 기간이 약 6년'으로 평가됐다. 서해안에 위치한 한빛 1호기부터 6호기까지도 서해 수온 상승률을 고려하면 여유 기간이 최대 10년이다. 고리 3·4호기, 한빛 3·4호기 등 일부 원전은 2030년대 초·중반에 제한치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TS(LCO) 기준: 넘으면 ‘정지’… 설비 개선 중심의 대응 전환

원전 냉각수 순환 과정 구조도 /원자력안전위원회
원전 냉각수 순환 과정 구조도 /원자력안전위원회

원전 사고 대비 기준으로는 격납건물 건전성 유지를 위해 기기냉각수(CCW) 온도를 43.33℃ 이하로 관리해야 하며, 이를 위한 해수 온도가 각 호기의 설계 해수 온도다. 설계 해수 온도를 넘으면 운영기술지침서(TS)의 운전제한조건(LCO)에 따라 원자로를 정지하고, 정해진 시간 안에 더 안전한 운전 모드로 전환해야 한다. 국내 심의자료에는 '제한치 초과 후 6시간 이내 원자로 정지, 36시간 이내 냉각' 조치 시간이 제시돼 있다. 

한수원은 그간 안전성 영향이 없는 범위에서 설계 해수 온도를 단계적으로 높여 대응해 왔다. 그러나 최근 상승 속도를 감안해 앞으로는 열교환기 증설·교체 등 냉각 설비 자체 성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한다. 신월성 1·2호기는 열교환기 전열판 증설로 냉각 성능을 개선했으며 운전 변경 허가(설계 해수 온도 상향) 추진 방침을 밝혔다. 한빛 1호기부터 6호기까지는 2029년까지 기존 관형 열교환기 교체 등 설비 개선을 순차 진행할 계획이다. 원안위는 전담팀 구성, 단계별 대응 절차서 마련과 함께 해수 온도 실측·예측 시스템 구축 등 선제 대응을 주문했다. 

국제 기구, 기후 리스크 대응과 SMR 잠재력 강조

프랑스 그라블린 원전 전경. /프랑스 전력공사 EDF
프랑스 그라블린 원전 전경. /프랑스 전력공사 EDF

올여름 프랑스 북부 그라블린(Gravelines) 원전은 대규모 해파리 떼가 취수 필터를 막으면서 4개 원자로가 자동 정지됐다. 이는 해수온도 상승이 해파리 대량 발생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같은 해 6월 말엔 남서부 골프슈(Golfech) 원전 1호기가 취수 하천 가론강 수온 상승으로 환경 기준을 맞추기 위해 일시 정지됐다. 스위스 베츠나우(Beznau) 원전도 6월 말 폭염으로 취수 하천 아레강 온도가 25도에 이르자 출력 절반 수준으로 출력을 낮췄다.

유럽연합 공동연구센터 등 국제기관 분석에 따르면, 기온이 1도 상승할 때 원전 발전량이 평균 0.5%, 폭염·가뭄 시에는 최대 2% 이상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조건에서 기온이 1도 오를 때 원전 및 열발전 발전량이 평균 0.5% 감소하고, 폭염·가뭄 등 냉각수 제약이 겹치면 손실이 2% 이상으로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는 냉각 효율 저하와 방류 수온 한계 등 환경규제로 인한 출력 제한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5년 보고서에서 소형모듈원자로(SMR)가 안정적 저탄소 전력 공급의 핵심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다만 금융·공급망·규제 측면의 과제가 병행 해결돼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다. 같은 해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원전이 기후 완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재확인하면서도, 냉각수 가용성 저하 등 기후 리스크에 대한 기술·정책적 적응 투자의 시급성을 지적했다. 

냉각 개선과 예측 역량 강화 병행 필요

한국은 원전이 전력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30%에 이른다. 해수 온도가 설계 기준치에 근접하거나 이를 초과하면 냉각 효율 저하로 출력 제한이나 일시 정지가 불가피하며, 여름·겨울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시기에는 예비율 급락으로 전력 수급 불안이 발생할 수 있다.

한수원은 이러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 냉각 성능 개선과 예측 역량 강화를 병행한다. 신월성 1·2호기는 열교환기 전열판 증설을 통해 설계 해수 온도를 1.37℃ 상향하는 운영변경 허가를 이달 중 신청할 예정이다. 한빛 16호기는 2029년까지 순차적으로 기존 관형 열교환기를 교체해 냉각 효율을 높일 계획이다.

아울러 해수 온도 실측과 상승률 분석을 토대로 원전별 가동 여유 기간을 매년 재평가하고, AI 기반 예측 시스템을 구축해 단기·중장기 전망의 정확도를 높일 계획이다. 동시에 온도 단계별 설비 점검, 출력 조정, 안전 정지 절차를 포함한 대응 매뉴얼도 마련해 전담팀이 상시 대응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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