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자원공사, 국내 최대 7000RT 도심 수열 착공… 탄소중립 실현 박차
COP 5.0 고효율 수열기술로 냉각탑·송전선 없는 냉난방 구현

한국수자원공사(K-water)는 지난 3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무역센터 수열에너지 사업’ 착공식을 열고, 국내 최대 규모의 도심형 수열에너지 공급체계 구축에 나섰다./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한국수자원공사(K-water)는 지난 3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무역센터 수열에너지 사업’ 착공식을 열고, 국내 최대 규모의 도심형 수열에너지 공급체계 구축에 나섰다./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서울 강남의 무역센터 지하에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가 흐르기 시작했다. 송전선도, 연료도 없다. 단지 한강의 물이 건물로 들어와 냉난방을 책임진다. 한국수자원공사(K-water)는 지난 3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무역센터 수열에너지 사업’ 착공식을 열고, 국내 최대 규모의 도심형 수열에너지 공급체계 구축에 나섰다.

이번에 착공된 수열시스템은 트레이드타워, 코엑스, 아셈타워 등 대형 건물에 하루 약 7000RT(Refrigeration Ton, 냉동톤)의 수열에너지를 공급한다. 이는 8평형 에어컨 약 7000대를 대체하는 냉방 효과다. 단일 건물 대상 수열시스템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수온을 에너지로… 탄소 없는 냉난방

수열에너지는 여름철 대기보다 차갑고 겨울철에는 높은 강물의 온도 차를 이용해 냉난방에 활용하는 친환경 시스템이다. 광역 상수도망으로 공급된 한강 원수를 여과 및 히트펌프 시스템을 통해 건물 냉난방 설비에 연결한다. 이 과정에서 화석연료나 전력 기반 변환 없이 열을 직접 이동시키므로 에너지 손실이 적고 탄소 배출이 거의 없다.

한국에너지공단의 ‘신재생에너지 백서’에 따르면, 수열에너지는 같은 전기로 에어컨 5대를 돌리는 효과에 해당하는 'COP 5.0' 수준의 고효율 기술이라며, 도심의 전력 부담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고 평가했다.

2014년 수자원공사가 도입한 롯데월드타워 수열시스템(3000RT)은 연간 에너지 사용량을 32.6% 절감한 실증 사례다.

수자원공사는 이번 무역센터 사업을 시작으로, 인근 현대차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 잠실종합운동장 등으로 수열 공급을 확대할 예정이다. 총 18660RT 규모의 공급망이 조성되면, 강남과 송파 일대는 명실상부한 도심형 수열에너지 클러스터로 자리잡게 된다.

한강을 기반으로 상수도망을 활용해 도심 내 대형 건물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구조는, 기존 송전설비나 냉각탑 없이도 에너지 전환을 가능케 하는 장점이 있다. 이는 도심의 에너지 자립률을 높이고, 최근 부각되고 있는 열섬현상의 완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2030년, 원전 1기 분량 수열에너지 보급 목표

환경부의 ‘수열에너지 보급 기본계획(2023~2030)’에 따르면, 국내 수열에너지 잠재량은 약 284만RT에 달한다. 현재 수자원공사가 개발한 규모는 약 43000RT로 전체의 1.5% 수준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28만4,000RT(약 1GW)를 보급해, 원자력발전소 1기에 해당하는 발전량을 대체하겠다는 목표다. 이 경우 연간 약 450GWh의 에너지 소비가 줄어들며, 이는 51만 명이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시화조력발전소 발전량에 준하는 규모다.

이를 위해 환경부와 수자원공사는 병원, 데이터센터, 공공시설 등에도 수열 보급을 확대하고 있으며, 설계비와 시공비의 약 50%를 국고로 지원하는 시범사업도 추진 중이다.

(오른쪽 네 번째부터) 윤석대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윤진식 한국무역협회 회장 등 주요 참석자들이 무역센터 수열에너지 사업 착공을 기념하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

해외 주요 도시도 ‘물의 열’에 주목

수열에너지는 이미 해외 주요 도시에서 실증되고 있다. 프랑스 파리는 센강 하층의 수온을 활용해 루브르 박물관과 관공서 등에 냉방을 공급하고 있으며, 탄소배출을 최대 84% 감축한 것으로 보고됐다.

캐나다 토론토는 온타리오호 심층수를 활용해 100여 개 건물에 냉방을 제공하는 ‘DLWC 시스템(Deep Lake Water Cooling)’을 운영 중이다. 토론토지역 에너지 공급 기업 Enwave사에 따르면, 해당 시스템은 연간 79000톤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있으며, 총 용량은 59000RT에 이른다.

스웨덴 스톡홀름은 발트해 해수를 이용해 도시 난방의 약 90%를 공급하는 지역열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으며, 전체 난방의 80% 이상이 재생에너지 기반이다. 일본 도쿄와 요코하마 역시 수열·하수열을 활용한 지역 냉난방 시스템(DHC)을 운영하며, 히트펌프 기반의 친환경 열공급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수열 기반 도심형 지역냉난방 시스템은 온실가스 감축과 전력망 부담 완화 측면에서 핵심 전략”이라고 평가한다.

도심형 재생에너지, 서울이 시작한다

윤석대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은 “수열은 탄소중립과 RE100 산업단지 조성을 실현하는 현실적 해법이 되고 있다”며, “정부와 함께 재생에너지 고속도로를 조성해 가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무역센터 사업은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수열에너지가 실제 도시 에너지 인프라로 자리 잡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롯데월드타워에 이은 실증을 기반으로, 강남 업무지구 중심에서 공급망을 확대하는 도심형 확산 모델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초기 설비 투자와 시공 난이도, 민간 참여 확대를 위한 제도적 유인이 마련돼야 지속 가능성이 담보된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공공이 인프라를 구축하고 제도를 주도해 나가는 방식은, 향후 민간 확대 적용의 기반이 된다. 서울 도심에서 실증되는 이 수열 공급 체계가, 에너지 자립도와 탄소중립을 현실화하는 도시 전환 전략의 모델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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