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자·장애인·아이들은 왜 늘 피해자가 되는가
지난달 서울 도심에서 또다시 발생한 지반침하 사고를 보며 씁쓸함을 금할 수 없었다. 인도를 걷던 시민이 갑자기 생긴 구멍에 추락하는 모습은 더 이상 충격적이지도 않다. 이미 우리에게 일상이 되어버린 풍경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사고가 반복될 때마다 한 가지 패턴이 보인다. 피해자 대부분이 노인, 어린이, 장애인 등 이른바 '안전 취약계층'이라는 점이다.
문제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우리의 안전교육 시스템이 정작 가장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안전교육은 건강한 성인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다. 빠른 판단력과 민첩한 행동력을 전제로 한 매뉴얼들이 과연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상황 인지 능력이 부족한 어린이에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까.
일본의 사례를 보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지점이 명확해진다. 일본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개인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안전교육을 실시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장애학생과 외국인 학생을 위한 별도 프로그램이다. 시각장애 학생에게는 지면의 진동과 소리로 위험을 감지하는 법을 가르치고, 청각장애 학생에게는 시각적 신호와 촉각을 활용한 대피 방법을 훈련시킨다. 외국인 학생들에게는 모국어로 제작된 안전 매뉴얼을 제공하며, 문화적 차이까지 고려한 교육을 진행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접근법도 인상적이다. 이들은 지역 내 취약계층 비율을 정확히 파악하고, 해당 지역에 안전교육 예산을 집중 투입한다. 노인복지관과 연계한 '시니어 안전 아카데미', 다문화가정을 위한 '패밀리 세이프티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이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서, 각 계층의 특성에 맞는 체험형 교육을 통해 실질적인 대응 능력을 기른다.
반면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 전체 안전사고 사상자 중 65세 이상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35%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다. 그런데도 노인을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안전교육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의 안전교육이 학교나 직장을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정작 가장 위험에 노출된 계층은 교육의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라도 우리의 안전교육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먼저 취약계층별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노인에게는 신체 능력을 고려한 현실적인 대피 방법을, 어린이에게는 놀이와 체험을 통한 직관적 학습을, 장애인에게는 개별 장애 유형에 특화된 안전 수칙을 가르쳐야 한다.
둘째, 학교교육에서부터 '포용적 안전교육'을 시작해야 한다. 일반 학생들이 취약계층을 돕는 방법을 배우고, 함께 훈련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안전 지식 습득을 넘어서 사회 통합과 배려 문화 형성에도 기여할 것이다.
셋째, 지역사회 기반의 안전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복지관, 경로당, 어린이집 등 취약계층이 주로 이용하는 시설을 안전교육의 거점으로 활용하고, 이웃 간 상호 돌봄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안전한 사회'란 강한 자만 살아남는 곳이 아니라, 약한 자도 보호받을 수 있는 곳이다. 진정한 안전교육은 모든 시민을 품어 안는 교육이어야 한다. 서울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들이 안전교육 예산을 편성할 때, 취약계층을 우선 고려하는 정책적 전환이 절실하다.
교실에서 시작되는 포용적 안전교육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진정한 '안전 공동체'로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더 이상 뉴스에서 "또 다른 안타까운 사고"라는 멘트를 듣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