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각 사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각 사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프로그램’이 시행된 지 1년에 가깝지만, 금융지주사들이 밸류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조기대선 정국 전환’과 ‘미국 상호관세 부과’ 등으로 금융당국의 금융지원 요구가 확대되면서 건전성 관리가 어려워졌고, 당국의 엇박자 정책도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는 미국 상호관세 부과로 피해가 예상되는 중소기업·소상공인에 총 25조원 규모를 지원하기로 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지난 9일 상호관세 발효 이후 주요 금융지주 회장단에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실물경제 자금지원 역할을 강조한 이후 나온 결정이다. 

금융지주 관계자는 “어느 정도 예상된 상황이지만, 다들 긴장감이 높다”라며 “중소기업·소상공인 자금지원(대출)을 늘리면 금융기관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긍정적인 부분이 있지만, 위험가중자산(RWA)을 증가시켜 자본비율에 부담을 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RWA는 은행이 보유한 자산 중 위험도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한 자본건전성 지표다. 기업대출은 RWA를 산정할 때 보통 100% 이상의 높은 가중치가 적용돼, 같은 규모의 대출이라도 국채나 주택담보대출보다 RWA 증가폭이 훨씬 크다.

이보다 앞서 4대 금융지주는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한 지난 4일 오후에도 각기 긴급 회의를 열어, 주로 환율 변동성 우려와 이에 따른 외환·자금 시장 유동성 리스크 모니터링 강화 등을 논의했다. 

실제로 지난 9일 상호관세 발효를 앞둔 오전 9시 10분께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1487.5까지 오르며, 1500원대에 바짝 다가섰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지난 2009년 3월 16일(1492.0원) 이후 16년여 만의 장중 최고치다.

달러·원 환율이 오르면 금융지주들의 자본건전성 지표인 보통주자본비율(Common Equity Tier 1, CET1 비율)에 부담이 가중된다. CET1 비율은 은행의 핵심 자본인 보통주 자본을 RWA로 나눈 값으로, 금융당국의 건전성 규제 기준으로 활용된다. 이 비율이 낮아질 경우 주주환원 정책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게다가 금융당국은 고금리 장기화로 인한 서민 부담을 완화한다는 명목 하에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된 작년 하반기부터 시중은행에 대출금리 인하를 요구해 왔다. 

이처럼 이익(예대마진)을 줄이라는 압박과 기업·가계에 자금을 공급하라는 상반된 요구도 금융지주의 밸류업을 어렵게 하는 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밸류업을 하려면 자산 건전성을 유지하면서도 배당 확대나 자사주 소각 등으로 시장 신뢰를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금융당국의 정책이나 주문이 다소 모순적이고, 막 압박하다가 또 필요하면 손 벌리는 식이어서 불만이 쌓이고 있다”라고 전했다.

한편, 금융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4대 금융지주의 평균 주주환원율은 37.8%로, 전년 대비 2.5%포인트(p) 상승에 그쳤다. 주주환원율은 전체 순이익 중 배당, 자사주 소각·매입 등을 통해 주주에게 환원하는 비율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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