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케이블카' 추진에 서식지 파괴 위기 놓여
'평균 수명 6~7년' 산양, 일생 천적 ‘인간’과 싸워

 

[그린포스트코리아 홍민영 기자] 이례적인 폭설로 전국이 신음하던 2010년 겨울, 경북 울진에서 25마리의 산양 사체가 발견됐다. 사인은 굶주림. 

2010년부터 2015년까지 탈진 또는 폐사한 산양의 수는 48마리. 2016년 2월과 3월 탈진한 산양이 연이어 구조됐고 올해 5월에도 1마리가 아사했다. 매년 수 마리에서 수십 마리의 산양이 서식지를 잃고 떠돌다 굶어 죽고 있다. 

(한국산양보호협회 제공) 2018.11.16/그린포스트코리아
어미 산양과 새끼 산양. (한국산양보호협회 제공) 2018.11.16/그린포스트코리아

◇국제적인 멸종위기종

산양은 우제목 소과 산양속의 동물이다. 전 세계에 6종이 존재하며 한국에도 1종이 서식하고 있다. 강원도 양구, 화천, 삼척, 울진, 설악산 등 산악지대에 약 1000여 마리가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5마리가 무리를 지어 생활하며 새순, 나무 열매, 식물 줄기, 나뭇잎 등을 먹는다.

250만년 전 지구상에 처음 출현했을 때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 보존 가치가 매우 높은 동물이지만 안타깝게도 국제적인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한국에서도 천연기념물 제217호, 멸종위기 야생생물Ⅰ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산양의 멸종을 부추기는 것은 환경오염으로 인한 이상기후와 서식지 파괴다. 산양 25마리의 목숨을 앗아간 2010년의 폭설도 이상기후 현상으로 인한 것이었다. 

서식지 파괴 문제도 심각하다. 산양은 이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 번 자신의 집을 정하면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산다.

그런 특성상 서식지 파괴는 산양의 죽음으로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겨울철 사냥의 뿔. (한국산양보호협회 제공) 2018.11.16/그린포스트코리아
겨울철 산양의 뿔. (한국산양보호협회 제공) 2018.11.16/그린포스트코리아

◇끝없는 싸움,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사업’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던 산양에게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앗아가는 것, 그것은 보통 인간의 난개발이다.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사업이 그 대표적인 예다.

정부, 강원도 양양군, 환경단체는 이 사업을 놓고 오랫동안 줄다리기를 해 왔다. 

1995년 양양군은 오색리에서 설악산 끝청봉까지 3.5km 구간에 케이블카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2012년과 2013년 국립공원위원회는 경제적 타당성이 없고 환경 훼손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이 계획을 부결했다. 그러나 양양군은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2015년 세 번째 시도 끝에 마침내 조건부 승인을 받아냈다.

시민환경단체들은 처음부터 이 사업을 반대했다.

가장 큰 이유는 환경 훼손이다. 케이블카의 설치는 탐방객 폭증을 불러 끝청봉과 대청봉 등 인근 환경이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설악산의 산양 서식지가 파괴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실제로 설악산 권금성은 케이블카 설치 이후 숲과 토양이 심하게 유실돼 ‘민둥산’이 됐다. 

시민환경단체들은 ‘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을 설립하고 투쟁에 나섰다. 2016년 1만인 서명 운동, 농성, 퍼포먼스, 1인 시위가 폭발했다. 당시 활동가들이 그해를 ‘투쟁의 해’로 묘사할 만큼, 싸움은 길고 치열하게 이어졌다. 

2016년 국정감사에서 오색 케이블카사업의 절차상 오류가 드러났다. 다음 해 예산 심사에서 사업 자체가 배제됐다.

2016년 12월 28일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사업을 부결시켰다. 이 부결로 사업은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여겨졌다. 환경단체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2017년 11월 무슨 일인지 문화재청은 기존의 결정을 뒤집는다. “설악산 천연보호구역의 문화재 현상변경을 허가해 달라”는 강원 양양군수의 재신청을 받아들여 케이블카 설치 가능 처분을 내린 것이다.

끝난 줄 알았던 싸움이 다시 시작된 셈이다. 

(한국산양보호협회 제공) 2018.11.16/그린포스트코리아
(한국산양보호협회 제공) 2018.11.16/그린포스트코리아

◇재판에 나선 산양

시민환경단체들은 이 싸움을 ‘세 번째 싸움’이라고 부른다. 이번 싸움은 끝내 재판까지 이어졌다. 

20년 넘게 산양 보호 활동에 몸담아 온 박그림 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가 나섰다. 케이블카 사업구간에 서식하는 산양 28마리를 원고로 해 문화재청을 상대로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박 대표가 산양의 후견인이 됐다.

동물을 원고로 한 재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6년 ‘천성산 도롱뇽 재판’과 ‘2007년 충주 황금박쥐 재판’이 있다. 두 재판의 쟁점은 '동물이 소송당사자의 자격을 갖고 있는가'였다. 대법원은 이들 모두 “소송을 수행할 당사자 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고 기각했다. 

지난 9월 5일 산양의 대리인들은 원고 자격으로 재판장에 섰다. 대리인은 동물의 소송당사자 자격을 인정한 외국의 판례와 동물도 법적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한 ‘생물다양성에 관한 협약’을 제시하며 산양의 권리를 주장했다.

피고인 문화재청은 “기존 판례에 따라 동물은 소송당사자 자격이 없다”고 맞섰다.

재판부는 선례를 따랐다. 산양을 법정에 불러 의사를 확인하지 않는 한 대리인에게 위임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변론을 종결한 것이다. 대리인은 기존 판례에 대해 다투겠다고 추가 기일을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올해 태어난 새끼 산양. (한국산양보호협회 제공) 2018.11.16/그린포스트코리아
올해 태어난 새끼 산양. (한국산양보호협회 제공) 2018.11.16/그린포스트코리아

◇산양의 삶은 어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양의 대리인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변론이 종결됐을 뿐 재판 자체가 기각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산양을 지키기 위해 계속 싸울 결심을 단단히 굳혔다. 

이런 가운데 올해 3월 23일 오색 케이블카 사업의 타당성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환경정책 제도개선위원회에서였다. 제도개선위원회는 “박근혜 정부가 오색 케이블카 사업과 관련해 부적절한 태스크포스(TF)를 운영했다”고 밝혔다. 

이들의 주장은 “케이블카 사업을 재실시하라”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환경부가 3개 TF를 운영했다는 것. 이 TF는 관련 보고서에 케이블카 사업부지에 대한 허위 내용을 기재하고 산양의 개체수를 축소 발표한 것으로 드러났다.

TF의 이런 행동은 2015년 국립공원위원회가 사업 허가 결정을 내리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제도개선위원회는 사업을 감사하고 타당성을 전면 재검토할 것을 환경부에 요구했다.

환경부는 어떻게 움직일까. 

김은경 전 장관은 오색 케이블카 사업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새로 임명된 조명래 장관은 어떨까. 조 장관의 의사에 따라 사업의 방향은 바뀔 수 있다.

사업을 포기하지 못하는 양양군과 산양을 지키려는 시민환경단체들은 잠시 '스톱’ 버튼을 누르고 눈치싸움에 들어갔다. 또 다시 긴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산양의 증식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한국산양보호협회는 어려움을 토로한다. 산양의 임신 기간이 긴 데다 출산 시 1마리밖에 낳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새끼를 밴 어미 산양이 굶어죽는 일까지 속출해 속앓이를 하고 있다. 어렵게 태어나 자란 산양이 아사하면 사업은 또 제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야생에서 산양의 수명은 고작 6~7년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산양은 ‘인간’이라는 천적과 싸워야 한다. 평화로워야 마땅한 산양의 삶은 언제까지 인간의 사정에 휘둘려야 할까.

hmy10@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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