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베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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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와 쓰레기 문제를 고민하며 새 옷을 사지 않는 ‘노쇼핑족’도 늘고 있습니다. 이들은 가지고 있는 옷을 오래 입고, 지인과 나눠 입으며, 가급적 중고를 구입합니다. 물론 새것을 무조건 사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 물건이 어떤 성분으로, 어떤 조건에서 만들어졌는지 신경 써서 살피고, 가격이 저렴한 것을 많이 사기보다는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적게 삽니다. 충동구매를 지양하고 여러 가지를 고려해 신중하게 구매하는 것이죠. 이렇게 하면 자연히 의류 쓰레기도 줄어들겠지요. 공허함에 쇼핑을 하고 난 뒤 쇼핑으로 생겨난 쓰레기에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일도 줄어들지요. 무엇보다 내가 이미 소유한 옷과 물건이 소중하게, 새롭게 느껴질 거예요. 패션은 개성을 드러내는 가장 편리한 방법이지만, 나다움을 가장 잘 드러낼 방법이 꼭 유행을 따라가는 것만은 아니니까요.” - ‘오늘부터 시작하는 탄소중립’(권승문·김세영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中, 68~69쪽.

계절마다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던 패션 시장은 이제 4~5주마다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내는 패스트패션(fast fashion)으로 진화했다. 유니클로, 자라, H&M 등 우리에게 익숙한 브랜드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들은 디자인부터 생산, 유통, 판매까지 직접 관리해 최신 유행을 반영한 상품을 빠르고 저렴하게 시장에 출시한다. 이제는 그 속도가 점점 더 빨라져 1~2주 만에 기획, 제작, 판매가 이뤄지는 ‘울트라 패스트 패션’의 시대가 열렸다. 이렇게 빠르게 많은 옷을 쏟아내는 오늘날의 패션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패스트패션 업계에서 옷을 빠르고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는 이유는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인도네시아와 같이 인건비가 낮은 나라에서 옷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의류 공장 노동자들은 시간당 300원에 못 미치는 급여를 받으며 옷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판매 이익의 대부분은 기업에 돌아간다. 반면 노동자들은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혹독한 노동을 해야 한다. 

2013년 4월 24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인근의 의류 공장 ‘라나플라자’가 붕괴돼 2500여명이 다치고 노동자 1136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있었다. 불법으로 증축된 공장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희생자 대부분이 10대 소녀였다고 한다. 

이런 큰 사고가 아니더라도 공장 노동자들과 인근 주민들은 섬유 염색과 화학 처리 공정에 의한 대기오염과 하천오염으로 고통스러운 일상을 보내야 했다. 방글라데시 하자리바그는 세계 가죽 생산지이자 세계 10대 오염 지역으로 악명이 높은 곳으로, 가죽 공장 노동자의 90%가 50세 이전에 사망한다는 보고도 있었다.

이렇게 1년에 1000억벌의 옷이 만들어지지만, 같은 기간 그중 3분의 1이 버려지는 현실이 바로 패스트패션이 만들어낸 결과다. 환경부에 따르면 전국 가정과 사업장에서 배출하는 폐의류는 2019년 기준으로 하루 약 161.5톤에 달한다. 대부분 재활용가능자원으로 분리 배출해 위탁업체에서 수거한다. 가정에서는 더 이상 입지 않는 옷이나 패션 소품을 인근의 헌옷수거함에 넣거나 재활용 상점에 ‘기부’한다. 

헌옷수거함에 버린 옷들은 수출업체 선별장으로 보내지는데, 그중 5%만이 국내 빈티지숍으로, 나머지 95%는 인도, 캄보디아, 우간다 같은 나라들로 수출된다. 한국은 세계 5위의 헌옷 수출국이다. 영국의 구호단체 옥스팜에 따르면, 서방에서 기부된 재활용 의류 70% 이상이 아프리카 대륙으로 간다. 이곳에서조차 절반 이상은 팔리지 않는다. 이렇게 버려진 헌옷이 강을 이루고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는 산처럼 쌓인 옷 폐기물 위에서 소들이 합성섬유를 뜯어먹는다고 한다.

최근 ‘아나바다’가 화제로 떠올랐다. 지난달 27일 어린이집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이 ‘아나바다 시장 놀이’ 글자를 보고 “아나바다가 무슨 뜻이에요?”라고 물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슈가 되었다. 해당 교사가 설명한 것처럼 아나바다는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는 의미의 줄임말로, 아나바다 운동은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당시 국민들이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자며 자발적으로 나섰던 일종의 물건 재활용 캠페인이다.

오래전에 생겨난 의미이자 운동이지만, 패션산업에서는 여전히 유효한 실천 과제다. 최근 화제가 된 ‘파타고니아’의 경영 철학도 아나바다의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실제로 파타고니아에서는 소비자들이 옷을 오래 입을 수 있도록 판매한 제품의 수선을 평생 보장하고, 해마다 4만벌 이상의 옷을 수선하고 있다고 한다. 용어의 의미를 아는지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정부와 기업, 개인 모두에게.

이제는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그리고 이 단어가 ‘중요한’ 문제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단어의 뜻을 알고 중요한 문제인지는 알지만, 한편으로는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어렵다는 건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이 내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다는 의미일 겁니다.

그린포스트코리아 권승문 기자가 지은 책 ‘오늘부터 시작하는 탄소중립’은 기후위기와 탄소중립 문제가 우리들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고 우리의 일상과 얼마나 가까운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후위기 시대, 함께 만들고 살아갈 ‘좋은 삶’이 무엇인지를 질문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오늘부터 시작하는 탄소중립’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매주 일요일, 책에서 나오는 주요한 내용을 발췌하고 핵심 단어를 선정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로 풀어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smkwo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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