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 호수'가 만든 도시 러시아 이르쿠츠크 여행기①

러시아 이르쿠츠크 '바이칼호수' 전경 (황인솔 기자)2018.7.25/그린포스트코리아
러시아 이르쿠츠크 '바이칼호수' 전경 (황인솔 기자)2018.7.25/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황인솔 기자] 최근 대한민국 국민들은 '냉동만두' 같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겨울이면 영하 25도의 맹추위에 얼려지고, 여름에는 40도를 웃도는 더위에 익어간다. 여기에 습도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찜통 속 만두' 신세 같다.

불볕더위는 우리나라의 문제만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북극과 남극 일대만 낮은 온도를 보이고, 온 지구가 폭염에 시달린다. 아프리카 알제리 사하라 사막의 우아르글라 지역은 지난 5일 51.3도를 기록, 기상 관측 아래 최고 기온을 경신하기도 했다.

이처럼 매년 기온이 계속 치솟는다면 몇십년 뒤에는 추위의 상징 '시베리아'가 지구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일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바이칼호에서 시민들과 반려견이 뱃놀이를 즐기고 있다. (황인솔 기자) 2018.7.25/그린포스트코리아
바이칼호에서 시민들과 반려견이 뱃놀이를 즐기고 있다. (황인솔 기자) 2018.7.25/그린포스트코리아

◇여름과 어울리는 도시, 러시아 이르쿠츠크

러시아 특히 시베리아 지역은 혹한으로 유명하다. 최저 기온이 영하 48도까지 떨어지고 추위를 이기기 위해 독한 보드카를 마셔야만 한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쩐지 여름도 덥지 않을 것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실제로 7월의 러시아 이르쿠츠크는 최저 기온 15도, 최고 기온 28도로 불볕더위가 찾아온 우리나라에 비해 쾌적했다.

러시아 이르쿠츠크 주의 주도 이르쿠츠크는 휴양지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 '바이칼 호수'의 서쪽에 위치한 동시베리아의 행정·경제·문화 중심지다. 수도인 모스크바와는 약 4200㎞ 떨어져 있으며 휴가를 즐기기 위해 찾은 이들로 북적이는 '여름의 도시'이기도 하다.

이르쿠츠크의 여름은 바이칼호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한여름에도 평균 수온 3도를 유지하는 물을 통해 더위를 식히는 것이다. 수영 시설이나 국내에서 유행하는 수상 스포츠 등 놀이시설은 따로 없다. 그저 호수에 몸을 맡기고, 여름을 천천히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깊은 수심이지만,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만큼 맑은 바이칼호. (황인솔 기자) 2018.7.25/그린포스트코리아
깊은 수심이지만,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만큼 맑은 바이칼호. (황인솔 기자) 2018.7.25/그린포스트코리아
물놀이를 즐기는 가족의 모습. (황인솔 기자)2018.7.25/그린포스트코리아
물놀이를 즐기는 가족의 모습. (황인솔 기자)2018.7.25/그린포스트코리아

◇바이칼호의 여름은 '여유롭다'

바이칼호의 첫 번째 인상은 '거대함'이다. 수평선이 보일 만큼 넓고 깊은 호수. 그래서 이르쿠츠크 주민들은 바이칼호를 바다로 여긴다. 바이칼호의 면적과 수심은 각 3만1722㎢(남한의 1/3 크기), 1637m로 아시아에서 가장 넓고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다.

두 번째 인상은 '여유로움'이다. 러시아 국민은 물론이고 수많은 유럽, 아시아인들이 트래킹, 캠핑을 하거나 뱃놀이를 즐긴다. 또 사람들은 수영복 차림으로 호수 앞에 돗자리를 펴고 누워 선탠을 즐기거나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낮잠을 자다가 더위가 느껴지면 물 속으로 풍덩 빠진다.

물놀이 도중 허기가 지면 즉석에서 모닥불을 피워 준비해온 냄비를 얹는다. 이를 통해 감자를 구워 먹거나 바이칼 특산 생선요리 '오물'을 먹고, 즉석에서 수프를 끓이기도 한다.

무언가를 즐기려 노력하지도 않고, 시간을 특별함으로 채우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어떻게 보면 그저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장소가 집에서 바이칼 호수로 바뀌었을 뿐이다.

대부분의 러시아 국민들은 6월부터 9월까지 약 3개월간 휴가를 간다. 그래서 러시아 국민들은 바이칼호 같은 휴양지 주변에 별장을 갖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여름이 되면 바이칼호 주변을 찾아 수영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르쿠츠크에 살고 있는 한국인 A씨에게 이 '여유로움'의 원인을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대부분의 러시아 사람들은 돈을 모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9개월 동안 일을 하면서 모은 돈은 여름 휴가 기간에 쏟아붓는다. 별장도 몇 년에 걸쳐 짓는 경우가 많다. 직접 나무, 돌 같은 자재를 구입해 짓다가 돈이 떨어지면 멈추는 식이다. 이들의 여유로움은 주거비 마련에 대한 압박이 없다는 것에서 나온다. 소련 정부가 무너질 때 땅을 나눠주고, 그곳에 집을 짓고 살아왔으니까. 땅이 좁은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자신을 '벨라루스 맨'으로 소개한 청년. 세계 각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보내기 위해 이르쿠츠크를 찾는다. (황인솔 기자) 2018.7.25/그린포스트코리아
자신을 '벨라루스 맨'으로 소개한 청년. 세계 각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보내기 위해 이르쿠츠크를 찾는다. (황인솔 기자) 2018.7.25/그린포스트코리아
배가 고프면 모닥불을 피워 직접 음식을 해먹는 경우가 많다. (황인솔 기자) 2018.7.25/그린포스트코리아
배가 고프면 모닥불을 피워 직접 음식을 해먹는 경우가 많다. (황인솔 기자) 2018.7.25/그린포스트코리아
유유자적, 이르쿠츠크에서는 노동의 상징 '소'도 여유롭다. (황인솔 기자)2018.7.25/그린포스트코리아
유유자적, 이르쿠츠크에서는 노동의 상징 '소'도 여유롭다. (황인솔 기자)2018.7.25/그린포스트코리아

◇시베리아의 파리...이르쿠츠크를 가야하는 또 다른 이유

이르쿠츠크의 매력은 바이칼호를 중심으로 즐기는 멋진 자연과 여유로움이지만 여행자들의 지적 욕구도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점도 크다.

여행을 할 때 과거를 알고 싶다면 박물관으로, 현재를 보려면 시장으로, 미래를 예측하려면 학교로 가라는 말이 있다. 이르쿠츠크 시내를 찾으면 시베리아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만나볼 수 있다.

이르쿠츠크는 발전된 문화와 예술로 '시베리아의 파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시내에는 금붙이로 꾸며진 화려한 정교회 성당, 러시아와 시베리아 지역의 과거를 가르쳐주는 수많은 박물관, 원주민 마을 등이 있다.

이르쿠츠크가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혁명으로 인해 세계가 들썩일 때, 이르쿠츠크는 지식인들의 유배지로 이름을 떨쳤다. 수도에서 4200㎞를 '마차'를 이용해 이동하는 이들에게, 바이칼호와 시베리아의 찬 바람은 반갑지 않았으리라.

특히 '데카브리스트의 난'으로 인해 서유럽의 분위기를 경험한 러시아 지식인들이 유배를 오게 되면서 많은 아픔과 희생이 있었지만, 이들의 영향으로 이르쿠츠크는 찬란한 문화와 예술을 꽃피울 수 있었다.

박물관에서 마주친 이르쿠츠크 국립대학 경제학과 재학생 B씨는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를 읊으며 이르쿠츠크라는 도시의 정의를 조심스럽게 내렸다.

"바이칼호에서 여름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이곳에 터전을 일궜던 조상들의 모습이 계속 생각난다. 그들이 '사형'에 가까운 유배를 왔기 때문에 이곳이 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었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소련 정부가 있었기 때문에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놓여질 수 있었다.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훗날 소중하게 될 것이니. 과거에는 혹독한 아픔과 추위가 있었지만, 이곳은 지금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롭다."

과거에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다녔던 이르쿠츠크 역. (황인솔 기자)2018.7.25/그린포스트코리아
과거에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다녔던 이르쿠츠크 역. (황인솔 기자)2018.7.25/그린포스트코리아
러시아 정교회 성당. (황인솔 기자)2018.7.25/그린포스트코리아
러시아 정교회 성당. (황인솔 기자)2018.7.25/그린포스트코리아
(황인솔 기자)2018.7.25/그린포스트코리아
러시아 이르쿠츠크에서 소원 하나를 빌고 돌아왔다. (황인솔 기자)2018.7.25/그린포스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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