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 호수'가 만든 도시 러시아 이르쿠츠크 여행기②

러시아 이르쿠츠크에 위치한 '바이칼 호수' (황인솔 기자)2018.7.26/그린포스트코리아
러시아 이르쿠츠크에 위치한 '바이칼 호수' (황인솔 기자)2018.7.26/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황인솔 기자] 모든 생명체에게 물은 곧 생명이다. 생존에 있어 수분 섭취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 문화, 전통을 살펴보면 식수 확보를 위한 노력들을 찾아볼 수 있다. 세계 4대 문명은 나일강, 유프라테스강 등 물줄기를 따라 시작됐고, 주거지에서 쉽게 물을 구하기 위해 우물을 파거나 항아리 같은 도구를 만들었다. 

물은 지구상에 있는 가장 흔한 천연자원으로, 풍부해 보이지만 세계의 많은 국가가 '물부족'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대표적 물부족 국가인 아프리카 에디오피아 주민은 하루 최대 7~8시간을 걸어 강이나 공동 수도의 물을 길어오기도 한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국토를 가진 러시아는 그런 면에서 '물 부자'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는 전 세계 지표수의 25%를 보유하고 있고 지하수 또한 풍부하다. 특히 이르쿠츠크에 위치한 '바이칼 호수'의 담수량은 세계 1위인 2만3615㎦로 지구상에서 얼지 않는 물의 20%에 해당한다.

바이칼호의 물은 몇십미터 아래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다. (황인솔 기자)2018.7.26/그린포스트코리아
바이칼호의 물은 몇십미터 아래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다. (황인솔 기자)2018.7.26/그린포스트코리아

◇맑다, 크다, 풍부하다...러시아의 자원 '바이칼호'

이르쿠츠크 시내에서 '안가라 강'을 따라 자동차로 약 1시간 정도 이동하다 보면 울창한 자작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빽빽한 나무 사이를 지나면 강 줄기가 조금씩 넓어지면서 아시아에서 가장 큰 호수인 바이칼에 도달한다.

바이칼이라는 이름의 어원은 넓은 바다, 풍요로운 바다라는 시베리아 원주민의 말에서 나왔다. 실제로 바이칼 호수를 처음 마주하면 거대한 '바다' 같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분명 호수인데 물가에 서서 반대편을 바라보면 땅이 아니라 수평선이 보인다. 한국의 호수에서는 잘 만날 수 없는 파도도 친다. 동글동글한 조약돌 위에 몸을 뉘면 7월의 더위를 녹이는 찬 바람과 차가운 물줄기를 경험할 수 있다.

게다가 깨끗하기까지 하다. 배를 타고 바이칼호 위를 유람하면 물이 너무 맑아 수심 40m 아래까지 훤히 들여다 보인다. 손을 뻗으면 바로 바닥에 닿을 것 같이 느껴질 정도다. 그래서 바이칼호에 몸을 담그면 30년 젊어진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바이칼호가 깨끗한 수질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바이칼은 '셀렝가' 등 366개의 크고 작은 강과 연결되어 있어, 계속해서 새로운 물이 공급된다.

바이칼호에 모인 물은 호수의 바닥인 수심 1637m 지점에 서식하는 '에피스추라'라는 소형 갑각류에 의해 정화된다. 새우와 닮은 이들은 오염물질을 여과하는 청소부 역할을 한다. 이렇게 정화된 물은 고여 있지 않고 366개 강 중 유일한 배수로인 안가라 강을 통해 빠져나가 북극해에 도달한다.

인간이 개입할 일은 없다. 그저 자연스럽게 두면 흐르고 돌아 다시 바다로 흘러간다.

바이칼호는 1550여 종의 동물이 서식하는 생물의 보고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민물호수에서 서식하는 바다표범 '네르파'(바이칼물범)를 비롯해 수많은 토착종이 이곳을 집으로 삼고 있다.

바이칼 호 주변에는 소나무, 자작나무 등 숲이 울창히 우거져있다. (황인솔 기자)2018.7.26/그린포스트코리아
바이칼 호 주변에는 소나무, 자작나무 등 숲이 울창히 우거져있다. (황인솔 기자)2018.7.26/그린포스트코리아

◇자연은 함부로 대하는 순간 '가치'를 잃는다

이처럼 부족한 것 없어 보이는 바이칼도 한때 위기를 겪었다고 한다. 셀렝가 강이 러시아 부랴티야 공화국의 수도 울란우데를 거치며 오염됐고, 바이칼 수질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여기에 1966년에 바이칼스크 지역에 세워진 펄프·제지공장의 유독 폐기물도 끊임없이 호수로 유입됐다.

지난 1997년에는 바이칼 호수 토착종 네르파가 1만마리 이상 떼죽음을 당했다. 원인은 독성 산업폐기물로 발생한 전염병이었다. 비슷한 현상은 1998년, 1999년에도 일어났다.

공장이 2013년 '경영난'으로 폐업하고 나서야 네르파는 다시 바이칼호로 돌아올 수 있었다.

관광객에 의해 쌓인 쓰레기. (황인솔 기자)2018.7.26/그린포스트코리아
관광객에 의해 쌓인 쓰레기. (황인솔 기자)2018.7.26/그린포스트코리아

◇결국 또 '사람'이 문제다

바이칼호의 수질이 유지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주변에 대도시가 없다는 점이다. 가장 가까운 이르쿠츠크도 수십㎞ 떨어져 있고, 바이칼 안쪽 섬 중 유일하게 사람이 살고 있는 '알혼섬'도 인구 2500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많은 관광객이 바이칼호를 찾으면서 위기에 놓였다.

실제로 깨끗한 호숫물과 달리 주변에는 관광객들이 버린 페트병, 유리병, 플라스틱 등 쓰레기가 가득했다. 곳곳에 쓰레기통이 놓여있지만 모든 폐기물을 수용하기에는 버거워 보였다.

바이칼 호수는 여름철에 관광객의 90% 이상이 집중된다. 유명 관광지 주변은 쓰레기 무단 투기에 시달리며, 숙박시설과 음식점에서 나오는 오·폐수 처리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바이칼호 근처에서 30년 동안 슈퍼마켓을 운영해온 A씨는 이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3년 전부터 한국 관광객들도 정말 많이 온다.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 관광객이 많으면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바닥에 무수히 떨어져 있는 쓰레기봉투들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바이칼호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는 내용의 포스터. (황인솔 기자)2018.7.26/그린포스트코리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바이칼호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자는 내용의 포스터. (황인솔 기자)2018.7.26/그린포스트코리아

◇'물 좋은' 나라 되기 위한 러시아의 노력

러시아는 바이칼호를 포함해 물 자원이 무척 풍부하지만, 사실상 관리는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러시아 물산업협회 조사에 따르면 국토 전체 물 자원의 절반 이상은 마시기 부적합한 상태이며, 지하수의 30% 가량도 심각하게 오염된 것으로 알려졌다.

워낙 국토가 방대해 하나의 정부가 모든 지역을 다 관리할 수 없는 것 또한 문제다. 이에 러시아 정부는 환경오염 관련 건은 지방정부에 권한을 맡겼지만, 지역 경제개발과 환경보존이라는 딜레마에 빠져 엄격한 규제가 이뤄지지 않았다.

푸틴 정부 2기(2004년~2008년)부터는 러시아도 국민 삶의 질 향상과 환경 보존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수질 오염의 원인을 열악한 상하수도 환경 및 오·폐수 처리 시설 부족으로 보고, 지난 2011년부터 2017년까지 '클린 워터'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이를 위해 규제완화 등 민간기업이 물 산업에 투자를 확대할 수 있는 산업 환경을 조성하고, 물 산업 인프라 개선을 위해 3318억루블(약 100억달러)을 투입했다.

폐기물 처리 방법도 개선 중이다. 러시아는 배출되는 쓰레기의 96%를 매립하고 있고, 재활용도 대부분 하지 않는다. 이에 '폐기물관리법'을 통해 다른 나라에서 시행 중인 재활용 등을 추진 중이나 아직까지는 뚜렷한 방향이 정해지지 않았다.

호수 근처에 세워진 별장, 이중에는 '불법 건축물'도 많다고 한다. (황인솔 기자)2018.7.26/그린포스트코리아
호수 근처에 세워진 별장, 이중에는 '불법 건축물'도 많다고 한다. (황인솔 기자)2018.7.26/그린포스트코리아

이르쿠츠크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는 재학생 B씨는 "아직 '인식'이 만들어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서도 환경에 대한 관심이 점차 커지고 있다. 바이칼은 이 도시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자원이기 때문에 조만간 호숫물이 석유보다 비싸질 것이라는 농담도 한다. 최근에는 러시아 정부가 오염을 막기 위해 호숫가 50m 내 건축물을 짓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들었다는데,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중심 관광지인 알혼섬에도 많은 불법 건축물이 지어져 있다."

B씨는 러시아의 마지막 왕조 로마노프가 붕괴하고, 소비에트 정부가 세워질 때를 환경 문제를 빗대 설명했다.

"러시아 안에서 전쟁이 끊임없이 벌어질 때, 1920년 이르쿠츠크에는 유례없는 혹한기가 찾아왔다. 그때 소련 정부를 피해 행군하던 125만명 중 25만명이 얼어붙은 바이칼호 위에서 동사했다. 자연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다. 무한히 선물을 줄 것 같으면서도, 잔인하게 삶을 앗아가기도 한다. 이처럼 물이란 생명을 잉태하는 출발점이지만 비극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오염이 계속된다면 러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비극이 발생할 것이다."

breezy@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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