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 호수'가 만든 도시 러시아 이르쿠츠크 여행기③

러시아 '이르쿠츠크역'. (황인솔 기자)2018.7.27/그린포스트코리아
러시아 '이르쿠츠크역'. (황인솔 기자)2018.7.27/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황인솔 기자] 유럽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창밖으로 낯선 풍경이 끝없이 펼쳐지고, 덜컹거리는 기차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경험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모스크바 야로슬라블역에서 블라디보스토크의 블라디보스토크역 구간을 연결하며 길이는 9288㎞, 본선 상의 역만 850개에 달한다. 종착역까지 걸리는 시간은 무려 7박 8일. 시속 500㎞ 자기부상열차로 달려도 약 19시간이 소요되는 말그대로 '대장정'이다.

그중에서도 이르쿠츠크는 횡단철도 선상에서 가장 바깥 풍경이 아름다운 구간 중 하나로 꼽힌다. 은빛 자작나무 숲이 끝없이 펼쳐지고, 바다와 닮은 바이칼 호수를 몇 시간 즐기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크리스 모스 작가의 '시베리아 횡단철도'라는 책 속에서는 이르쿠츠크 구간을 이렇게 소개한다.

"시베리아 횡단 여행은 지구상에서 가장 길고, 특이하고, 서사적인 여정이다. 여행을 떠날 때 어떤 노선을 선택하든 간에 이르쿠츠크에서는 꼭 한번 내려야 한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정점은 바로 바이칼 호수이기 때문이다. 가장 깊고, 가장 차갑고, 가장 푸른 호수로 시베리아의 황무지와 환상적인 대비를 이룬다."

환바이칼 열차 내부. (황인솔 기자)2018.7.27/그린포스트코리아
환바이칼 열차 내부. (황인솔 기자)2018.7.27/그린포스트코리아
이르쿠츠크 지도. (황인솔 기자)2018.7.27/그린포스트코리아
이르쿠츠크 지도. (황인솔 기자)2018.7.27/그린포스트코리아

◇대륙을 횡단하던 열차...'관광'을 위해 머무르다

이르쿠츠크역을 중심으로 놓인 '환바이칼 철도'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지역노선 중 하나다. 길이는 약 90㎞로 바이칼호 옆을 따라 38개 터널과 248개 교량을 지난다.

과거에는 본선의 일부였으나 안가라강 댐 건설로 일부 구간이 수몰되면서 폐선됐다. 이후 바이칼호가 관광지로 떠오르면서 보수를 통해 관광 열차로 이용되고 있다.

이르쿠츠크역에서 환바이칼 열차에 탑승하면 종착지인 포르트바이칼역까지 9시간 동안 달린다. 시속 20㎞로 느릿느릿 달리는 기차에 몸을 맡기다 보면, 이르쿠츠크와 바이칼호의 다양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환바이칼 열차 내부에서 식사를 즐기는 러시아 가족. (황인솔 기자)2018.7.27/그린포스트코리아
환바이칼 열차 내부에서 식사를 즐기는 러시아 가족. (황인솔 기자)2018.7.27/그린포스트코리아

◇9시간동안 둘러보는 '바이칼호'...즐기는 모습도 제각각

직접 탑승한 환바이칼 열차의 첫인상은 '단조로움'이었다. 엉덩이를 붙일 수 있는 의자와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는 창문이 전부다. 휴대폰도 잘 터지지 않는다.

유일한 즐길거리는 칸마다 놓인 작은 TV에서 흘러나오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역사를 담은 애니메이션, 토착종 '네르파'(바이칼물범) 다큐멘터리, 바이칼 호수에 가라앉아 있다는 황금의 전설 등 방송이다. 이마저도 러시아어를 하지 못한다면 알아들을 수 없겠지만.

환바이칼 열차에 탑승한 이들의 모습은 저마다 달랐다. 몇몇은 테이블을 활용해 포커를 치거나 마작을 했고, 뒷자리에 앉은 한 일본인은 두 권의 책을 완독했다. 긴 낮잠을 자거나 끝없는 수다로 시간을 때우는 이들도 있었다.

가족 단위로 열차에 탑승한 러시아인들은 9시간을 '식사'로 채웠다. 집에서 싸온 것으로 보이는 으깬 감자, 제철 과일, 음료수, 과자, 아이스크림이 대부분이다. 바이칼호의 특산물이자 훈제 생선요리인 '오물'을 먹기도 했다. 우리나라 기차역에서 김밥이나 삶은 달걀 등을 팔듯, 이르쿠츠크 기차역에서는 즉석에서 구운 오물을 비닐봉지에 담아 판매한다.

한국산 컵라면 '도시락'도 이 열차의 단골 메뉴 중 하나다. 식당 칸에 가면 '초코파이'와 함께 진열되어 있고, 끓인 물과 함께 제공된다.

환바이칼 열차. (황인솔 기자)2018.7.27/그린포스트코리아
환바이칼 열차. (황인솔 기자)2018.7.27/그린포스트코리아
첫 번째 도착지 '슬류단카역'의 매점. (황인솔 기자)2018.7.27/그린포스트코리아
첫 번째 도착지 '슬류단카역'의 매점. (황인솔 기자)2018.7.27/그린포스트코리아

◇슬류단카부터 포르트바이칼까지...8개 관광 포인트

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도 충분히 멋지지만 9시간 동안 기차에만 붙잡혀 있는 것은 아니다. 종착역까지 슬류단카역, 앙가솔카, 샤르잘가이, 끼르기레이, 빨라반늬 언덕, 이탈얀스카야 스텐카 등 총 8개 지점에서 멈춰 짧게 10~30분, 길게 1시간까지 주변을 구경할 수 있다.

역마다 정차하는 시간이 달라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드넓은 바이칼호 주변에서 미아가 될 지 모른다.

첫 번째 도착지 슬류단카역은 환바이칼 여정을 준비할 수 있는 곳이다. 기념품점, 매점 등이 있어 기차에서 먹을만한 음식과 음료수를 구입할 수 있다.

앙가솔카, 샤르잘가이, 끼르기레이에서는 본격적인 바이칼 호수 관람이 시작된다. 각 지점에서 정차하면 철도 위에서 바이칼호와 주변을 산책할 수 있다.

빨라반늬는 '중간'이라는 뜻으로, 1시간동안 정차한다. 이 곳에서는 환바이칼 열차 직원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그동안 관광객들은 주변 마을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 밖에도 환바이칼 열차는 세계대전 당시 포로들이 끌려와 완성한 돌벽, 100여년 전에 사용됐던 터널 등 구간구간 역사의 현장에도 정차한다.

각 지점에서는 바이칼호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만날 수 있다. 직접 만든 딸기잼을 파는 어린이, 산에서 따온 열매로 술을 담가 파는 노인, 기차가 정차하는 시간 동안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도 있다.

앙가솔카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아티스트'. (황인솔 기자)2018.7.27/그린포스트코리아
앙가솔카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아티스트'. (황인솔 기자)2018.7.27/그린포스트코리아
바이칼 호수를 구경하는 어린이.(황인솔 기자)2018.7.27/그린포스트코리아
바이칼 호수를 구경하는 어린이.(황인솔 기자)2018.7.27/그린포스트코리아
낚시를 하던 이르쿠츠크 주민. (황인솔 기자)2018.7.27/그린포스트코리아
낚시를 하던 이르쿠츠크 주민. (황인솔 기자)2018.7.27/그린포스트코리아

◇우리에게도 곧 '이웃'이 될 러시아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이후 사람들의 시선은 철도로 향했다. 통일이 된 후 멈췄던 '철마(鐵馬)'가 다시 달리고, 이것이 중국·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이어지는 거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언젠가 부산발 유럽행 열차가 달리는 날이 올 것을 기대하며.

만약 남북이 통일되고 '유라시아 대륙철도'가 완성된다면 러시아는 기찻길이 이어진 가까운 이웃나라가 된다.

이르쿠츠크 시내를 걷다가 시민들과 눈을 마주치면 많은 이들이 '니하오'라고 인사한다. 그럴 때 '카레이찌!'(한국인이야)라고 대답하면 많은 이들이 웃으면서 다시 한 번 '안녕하세요'라고 살짝 어눌하게, 하지만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현지에서 5년째 유학 중인 A씨는 최근 이르쿠츠크 내에서도 '한류열풍'이 불어 한국에 대한 호감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이르쿠츠크가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은 도시가 되기를 희망했다.

"러시아와 한국은 비행기로 5시간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이지만, 아직 서로에게 친숙한 존재는 아닌 것 같다. 철도가 이어지기 전에 두 나라가 조금 더 가까워졌으면 한다. 이르쿠츠크에 살고 있는 한국인 대학생 30여명은 이곳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국내에 많이 소개돼 더 많은 이들이 바이칼호의 아름다움을 즐기러 왔으면 좋겠다."

종착역인 '포르트바이칼역'에서는 여행객을 위한 공연이 진행된다. (황인솔 기자)2018.7.27/그린포스트코리아
종착역인 '포르트바이칼역'에서는 여행객을 위한 공연이 진행된다. (황인솔 기자)2018.7.27/그린포스트코리아
러시아 여행 중인 독일인 부부. (황인솔 기자)2018.7.27/그린포스트코리아
러시아 여행 중인 독일인 부부. (황인솔 기자)2018.7.27/그린포스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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