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세계최강의 쇼트트랙과 피겨여왕 김연아를 떠올린다. 이 둘이야말로 대한민국이 동계올림픽에 열광하게 만든 장본인들이고, 3수 끝에 동계올림픽 유치 성공을 이끌어낸  동인(動因)이기도 하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불과 두 달여 전까지만 해도 탄도미사일을 펑펑 쏘아 올리던 북한의 김정은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하겠다며 현송월을 방남하는 ‘이벤트’도 없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가정을 근거로 한 논리전개이기는 하지만, 스포츠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가를 느끼기에 충분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영화 '쿨 러닝(Cool Runnings, 1993)'
영화 '쿨 러닝(Cool Runnings, 1993)'

올림픽은 스포츠스타의 '산실'이자 순수 아마추어리즘의 '경연장'

동계올림픽을 얘기할 때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은 자메이카 봅슬레이팀이다. 자메이카는 북미 카리브해상에 있는 작은 섬나라(면적 기준 세계 167위)다. 적도 근처에 있으니까, 당연히 일 년 내내 여름이다. 그런 나라에서 1998년 제15회 캐나다 캘거리동계올림픽에 ‘당당하게’ 봅슬레이팀을 출전시켰다. 비록 메달을 목에 걸지는 못했지만, 실패에 굴하지 않는 도전정신과 참가에 의의를 둔 그 자세만큼은 단연 금메달감이라 할 수 있었다. 이들을 소재로 만든 영화, '쿨 러닝(Cool Runnings)'이 1993년 개봉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을 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메달이 목표가 아니라, 어떤 역경도 뚫고 헤쳐 나겠다는 불굴의 투지가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것이다. 이는 살아 있는 올림픽정신의 표상이며, 우리가 올림픽에 열광하는 이유가 아니던가. 

스포츠에 있어서 아마추어와 프로를 구분 짓는 경계는 '돈'이다. 자신의 스포츠가 생계의 수단이면 프로, 그렇지 않고 즐기기 위한 활동의 일환이면 아마추어로 분류한다. 그렇기에 프로와 아마추어는 이른바 ‘클래스(class)’가 다르다. 프로는 정상급 반열에 오르는 순간 엄청난 부와 명예가 기다리고 있다. 단순히 참가 자체에 의의를 두고 즐거워하는 순수 동호인 차원의 아마추어와 비할 바가 못 된다. 

종목 마다 프로를 능가하는 아마추어 선수가 즐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유망한 아마추어 선수들은 최대한 기량을 갈고 닦아 스스로의 몸값을 높인 뒤 프로의 세계로 뛰어든다. 이런 스포츠 선수들에게 올림픽은 자신의 기량을 맘껏 선보일 수 있는 최고의 무대이다. 동시에 프로로 올라서기 위한 등용문이기도 하다. 

이렇듯, ‘선수들의 세계’에서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종이장처럼 얇다. 물론 참가 자체에 의미를 두는 팀들도 많지만, 올림픽에서 최정상급에 오르는 선수들은 기량에 있어서는 이미 프로라고 할 수 있다. 그 정도는 되어야 국가를 대표하는 스포츠선수로서 조국의 명예를 드높일 수 있고 자국 국민들에게 기쁨과 희망, 때로는 위로를 선사할 수 있다.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훈련을 뒷바라지 하고, 메달을 따면 연금 등의 보상과 혜택을 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치지도자 정부당국자가 고수이어야만 하는 '이유'

우리는 나라살림을 이끌어갈 대표선수, 정치인들에게도 같은 희망과 기대를 건다. 기량(능력)만으로 뽑는 것은 아니고(뽑을 수도 없고), 상대적으로 다수가 원하는 사람들을 우리의 대리인으로 앉힌다는 점에서 올림픽 대표선수와는 차원이 다르지만, 싫든 좋든 우리의 대표가 된 이상 최고 수준의 능력을 펼쳐주길 바란다. 그래야만 하며, 그것이 국민들로부터 잠시 권한을 위임받은 국정 지도자들의 의무이다. 이전 경력이 ‘아마추어 수준’에 불과하다 해도, 국정 지도자가 된 이상 참가에 의의를 두는 아마추어리즘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최근 미세먼지 대책을 바라보면, 물씬 풍겨나는 아마추어리즘에 정신이 아득할 지경이다. 

먼저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 

미세먼지를 잡아 보겠다고 하루에 50억원씩의 혈세를 쏟아 부어 대중교통 출퇴근 무료 ‘서비스’를 시행했다. 사흘간 150억원이 들어갔지만, 교통량 감소율은 2%에 그쳤다. 생각해 보라. 버스정류장이, 지하철역이 바로 코  앞에 있지 않은 한,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걸어서 버스정류장과 지하철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미세먼지가 강한 날에는 단 10미터라도 덜 걷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버스비 공짜로 해 줄 테니 차 놓고 출근하라고? 목이 콱콱 막힐 것 같은 미세먼지 속으로 걸어 들어가라고? 

서울시가 사방이 가로막힌 원통 같은 공간이라면 이런 ‘원맨쇼’를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하늘은 뚫려 있고 바람은 중국에서 서해를 넘어 경기도를 지나 시청 앞 한 복판까지 속절없이 흘러온다. 그런데 ‘차비 공짜’라는 마술을 통해 서울과 경기, 서울과 인천의 경계에서 공기 흐름을 멈추게 하겠다고? 미세먼지로 뿌연 서울시청 앞을 지나면서 지방선거용 선심 서비스를 떠올린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어 김은경 장관의 환경부.

국민들이 미세먼지로 고통 받은 게 어디 올해 얘기인가? 지난해에도, 그 이전 해에도, 그 전전 해에도 이 맘 때면 여지없이 반복되는 환경문제다. 환경문제 가운데서도 모든 국민이 너나 할 것 없이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는 최악의 ‘환경재앙’이다. 그런데 환경부는 뭘 했나? 12월부터 미세먼지가 심해지기 시작하므로 늦어도 11월에는 미세먼지를 줄일 대책을 마련했어야 한다. 그 대책을 통해 얼마만큼의 미세먼지를 줄인 것인지, 이를 위해 각 시도와 어떻게 협력한 것인지, 대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국민들의 참여는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지 등등. 

그러나 아무리 찾아 봐도 그런 ‘특단의 대책’은 없다. 이전 정권의 환경부가 마련했던 대책을 거의 그대로 ‘베껴’ 대책이라고 발표한 수준뿐이다. 하나 같이 뜬 구름 잡는 얘기. 아니 뜬 미세먼지 잡는 얘기라고 해야 옳을라나. 그러다가 지난 주 국민들의 고통이 임계치까지 치솟자 서울시 인천시 경기도 등과 ‘제1차 수도권 고농도 미세먼지 비상저감 협의회’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참으로 궁금한 사항 하나. 지난해 9월 ‘미세먼지대책위원회’는 왜 만들었는가? 환경부가 미세먼지 종합대책을 수립하는데 있어서 싱크탱크(집단지성) 역할을 수행한다고 했는데, 그 퍼포먼스가 고작 이 정도인가? 하긴 미세먼지가 최악의 수준으로 치달은 지난 18일에 세 번째 회의를 개최했으니 더 이상 말해 무엇하랴. 

"당신은 최고수인가?"

이제 평창동계올림픽까지 17일이 남았다. 보름여가 지나면 지구촌은 평창에서 흥겨운 겨울축제에 빠져든다. 아마추어 스포츠스타들의 눈부신 경연이 우리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은 대회가 끝나면 각자의 나라로 돌아간다. 어쨌든, 그걸로 ‘끝’이다. 메달을 못 땄다고 해서 국민들이 고통 받는 일은 없다. 피나는 훈련을 통해 갈고 닦았고, 꿈의 무대에서 최고의 기량을 선보였으며, 전 세계인들을 TV앞으로 모이게 했으면 그걸로 올림픽 정신을 구현하고도 남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당국이라는 대표선수들은 아마추어여서는 안 된다.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면 그걸로 끝이 아니라, 정부라는 무대에서 펼친 기량(업무수행)이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선심정책으로 시민 혈세를 펑펑 날려버리면 뒷감당은 시민들의 몫이 된다. 걸핏하면 위원회를 만들어 책임을 떠넘길 궁리부터 하고, 내 ‘전공’이 아니니까 ‘아, 몰랑’ 한다면 국민들은 미세먼지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

비록 자신의 주종목이 피겨였다고 해도 선수단장을 맡는 순간 모든 종목이 주종목으로 바뀌어야 한다. 선수단장이 되어서도 자신의 이전 주종목만 들여다 본다면, 선수단장의 자격이 없을 뿐 아니라 선수단장으로 뽑은 임명권자에게도 누를 끼치는 행위이다. 설령 운 좋게, 줄 잘 서서 그 자리에 올랐다고 해도, 정책을 책임지는 대표가 된 이상 프로 버금 가는 아마추어야 한다. 정부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무명의 아마추어였다고 해도, 정부 청사의 문을 열고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는 최고수 중에서도 최고수여야만 한다. 

박원순, 김은경 두 ‘대표선수’에게 묻는다. 

“당신은 아마추어 고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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