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의 모순과 정책적 시사점

인류가 호주대륙에 언제 정착했는지, 어떻게 건너오게 됐는지는 인류학뿐 아니라 생물학 등 모든 인접학문에서 흥미로운 관심사다. 과거에는 1만여년 전 구석기 인류가 뗏목을 타고 고기를 잡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한 끝에 우연히 호주 대륙에 떠밀려온 몇몇 개체들이 정착하게 됐다는 학설이 유력했다. 그러나 대륙 곳곳에서 발견된 유적과 유해의 탄소 연대측정 결과는 4만년이상의 세월을 입증했다. 나는 10여 년 전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을 통해 이에 관해 매우 시사적인 다큐멘터리를 봤다. 즉 일군의 고생물학자, 인류학자와 사회학자들은 4만여 년 전 지금의 파푸아뉴기니(PNG)와 인도네시아 파푸아등지에 살던 원시인류가 어떻게 남쪽의 큰 대륙에 정착하게 됐는지를 추정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한 결과를 담아 하나의 가설을 제시한 것이다. 당시의 내 메모와 기억을 되살려 그 가설을 복원해 보면 다음과 같다.

파푸아뉴기니의 원주민 [출처=파푸아뉴기니 트레블]
파푸아뉴기니의 원주민 [출처=파푸아뉴기니 트레블]

원시인류의 확산과 자연 적응

수렵채취 부족들은 늘 인구 압력에 시달린다. 영아살해 등을 통해 부족 인구의 증가를 억제하려 하지만, 한정된 서식지의 식량자원이 고갈되면 다른 풍요로운 곳을 찾아 이주해야 했다. 호주대륙과 가까운 인도네시아 열도의 고대인들은 그들의 조상들이 머나 먼 아프리카에서 출발해 여러 세대와 긴 세월에 걸쳐 대륙을 이동했듯이, 남쪽 바다 건너 멀지 않은 곳의 대륙으로 이주를 감행했다. 학자들은 그 증거로 PNG와 동티모르 남쪽 해안 곳곳에서 고대인이 독초나 독버섯까지 먹었던 흔적을 제시했다. 독초나 독버섯도 물에 오래 담궈 두면 독이 빠져서 먹을 수 있다. 즉 이는 그들이 살던 기니 섬 생태계의 식량자원이 한때 고갈됐음을 의미한다.

원시인들은 자연의 기세와 운동, 그리고 그 기미를 파악하는 데 동물적 감각을 지녔었다. 그들은 남쪽 멀지 않은 곳에 큰 섬이나 대륙이 있다는 사실을 여러 가지 징후를 보고 판단했다. 남쪽에서 날아오는 새들의 종류와 다양성, 미세한 바닷물 염도의 차이, 태풍이 지나고 난 뒤 해안가로 밀려온 나무의 잔해 등등. 그들은 저 남쪽에 풍요로운 땅으로 이주하기 위한 기획 항해에 나섰다. 바다 날씨가 잠잠한 절기를 기다려 10여 명씩 조를 이뤄 한 뗏목에 예컨대 열흘 분의 물을 싣고 떠났을 것이다. 한 뗏목이 떠나고 며칠 후엔 다른 뗏목이, 또 다음 뗏목이 떠나는 식이다. 이들 가운데 몇 팀이 대륙에 도착하지 못하더라도 비슷한 시기에 50명 이상만 무사히 착륙했으면 그들은 그 후로 성공적으로 대륙에 정착했을 확률이 높다.

미국의 어느 대학교에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해 본 결과 원시인도 어떤 생태계 안에서 50개체 까지 늘어난 이후부터 종으로서 그곳에 존속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오늘날 보존생태학에서 말하는 ‘최소존속개체군(MVP)’의 개념과 일치한다. 즉 새끼의 초기 사망률, 근친교배로 인한 유전적 다양성 상실 등을 극복하고 자손을 지속적으로 퍼뜨리기 위해서는 개체 수가 일정 수준을 넘어야 한다. 대형 포유류의 경우 그 종에 필요한 서식면적에서 50개체는 돼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15년 전 멸종위기에 처한 반달가슴곰의 복원사업 계획을 세우면서 내걸었던 목표, 즉 우선 지리산국립공원에서 50마리를 확보하자는 것도 이런 이론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반달가슴곰 복원계획의 성과와 모순

지리산반달곰 [출처=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반달곰 [출처=국립공원관리공단]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따르면 지리산에서 현재 반달가슴곰 47마리가 자연적응 중이다. 이 가운데 방사한 곰이 19마리, 자연에서 출산된 곰이 28마리다. 이 가운데 포획의 어려움 등으로 발신기를 교체하지 못한 개체가 11 마리다. 게다가 그밖에도 생사여부를 모르는 개체를 포함해 6~7마리가 관리의 손길에서 벗어나 있다. 공단과 전문가들은 복원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부터 살고 있던 약 5마리의 야생곰의 자손들도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지리산권에서 활동 중인 반달가슴곰 개체 수는 60마리에 육박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공단 관계자는 “2020년까지 지리산 내 반달가슴곰의 개체수를 최소존속개체군인 50마리까지 늘린다는 목표는 99% 달성한 셈”이라고 말했다. 또한 방사곰이 자연에서 출산한 곰 가운데 한 마리는 야생 반달가슴곰을 아버지로 한 새끼임이 밝혀졌다. 순수한 국내 야생 반달가슴곰의 후손을 빨리 확보하자는 게 복원사업의 목표 가운데 하나였음을 감안하면 이 또한 성과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지리산반달가슴곰 복원프로젝트의 궁극적 목표는 우리나라 백두대간 생태축을 따라서 반달가슴곰이 오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즉 설악산, 오대산, 소백산, 덕유산 등에도 반달가슴곰이 정착해야 완전한 성공이 되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지리산에서 반달가슴곰의 죽는 개체보다 태어나는 개체가 더 많아졌다. 또한 지리산국립공원에 인접한 웅석봉, 백운산 등 다른 산은 물론 88고속도로 근처까지도 반달가슴곰들이 자주 오가는 것이 발견됐다. 야생동물에게 인간이 그어놓은 경계선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PNG와 동티모르 땅의 옛 원시인들처럼 반달가슴곰도 한 서식지의 개체수가 늘거나 자원이 고갈되면 먹이자원과 짝짓기 기회가 더 많은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나도록 돼 있다. 지리산에서 서식 가능한 반달가슴곰의 최대 개체 수는 해외사례 등을 감안할 때 70마리에서 188마리까지 정도일 것으로 공단측은 보고 있다. 지리산 반달가슴곰들은 이미 인구 압력을 느끼고, 더 훌륭한 서식지를 찾고 있는 단계로 봐야 할 것이다. 이는 반달가슴곰 복원이 한 단계 더 진전할 조짐으로 보인다. (②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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