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M-53의 북상은 일탈이냐, 서식지 확산을 위한 모험이냐

급기야 올 들어서는 반달가슴곰 KM-53이 자신의 서식지에서 80km나 떨어진 김천의 수도산까지 지난 6월과 7월 두 차례 갔다가 주민들에 의해 발견되어 지리산으로 매번 ‘회수’됐다. 그 후 이 곰은 ‘지리산 문수리 자연적응훈련장’에 갇혀 있다. 환경부는 KM-53을 회수한 이유에 대해 이렇다 할 설명을 하지 않고 있지만, 주민들과 맞닥뜨릴 가능성과 그 때 사람이 다칠 우려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곰이 사람을 해쳤다고 했을 때 반달가슴곰 관리부실에 대한 비난여론 등 복원 프로젝트 전체에 대한 역풍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백두대간을 따라 곰을 복원한다는 목표가 있다면 경계선을 모르는 곰이 등산객은 물론 공원 경계를 벗어나 마을주민들과 만날 가능성이 상존하는데 이를 차단하겠다는 생각은 복원계획과 정면으로 모순에 빠진다. 반달가슴곰이 지리산국립공원 경계를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벌써 오래 전인데 공단과 환경부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반달가슴곰 이동경로 [출처=환경부]
반달가슴곰 이동경로 [출처=환경부]

예상되는 이동경로 주변 지역주민은 물론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곰과 공존할 필요성과 그 방식에 대해 꾸준한 인식 전환과 교육을 추진했어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환경부는 곰의 장거리 이동을 일종의 일탈로 여기는 분위기다. 곰과 공존할 준비가 안 돼 있는 지역의 주민과 지자체를 감안할 때 예상 밖의 장소, 또는 서식지로 이동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그렇다면 수도산이 아닌 백두대간 생태축, 육십령, 덕유산, 민주지산, 속리산 등은 어떤가.

환경부 산하 자연환경국민신탁은 곰의 이동을 돕기 위해 2014년 지리산 사치재 부근 농지 6000여㎡를 매입했다. 환경부와 산림청은 도로로 끊긴 백두대간을 다시 잇는 생태통로를 설치하려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기존의 생태통로는 야생동물이 거의 이용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백두대간 능선이 너무 많은 자동차도로로 끊겨 있는데다 그 도로를 가로지르는 생태통로가 차량과 등산객이 많이 오가는 곳에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KM-53도 백두대간과 생태통로를 버리고, 88고속도로 교량형 구간의 교량 사이로 이동한 것으로 밝혀졌다.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KM-53을 수도산에 재방사하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지만, 환경부는 여전히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최근에는 재방사 방침은 굳혔고, 시기와 장소를 저울질하고 있다. 지리산이냐, 수미산이냐는 선택, 그리고 수미산에 재방사할 경우 김천시를 비롯한 지역주민들의 수미산 올무제거 등의 준비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8월17일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주최한 ‘반달가슴곰과 공존방안 모색을 위한 워크숍’에서는 KM-53의 장거리 이동이 무리에서 추방된 것이냐, 새로운 서식지를 개척하기 위한 확산이냐 하는 논의가 나왔다. 전문가들은 젊고, 건강한 개체가 더 풍부한 먹이자원과 짝짓기 상대를 찾기 위해 모험을 감행했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토론자로 참석한 장이권 이화여대교수는 “ KM-53의 이동은 건강한 수컷의 본능인 건강한 배우자 찾기를 위한 확산시도로 보인다”면서 “야생성이 뛰어난 개체이므로 조속히 방사하고 암컷도 함께 방사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만 하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생후 2년 반 된 KM-53은 아직 청소년쯤에 해당하는데다 건강하고 야생성이 있어, 먹이가 많은 곳을 찾아 다시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해발 1300미터가 넘는 수도산은 뽕나무, 산딸기, 다래류, 버찌 등 열매 종류가 많고 곰이 잘 먹는 참나물과 취나물도 많아 곰이 서식하기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생태계의 예측불가능성과 복원사업의 정책적 제안

수도산에서 포획된 반달가슴곰(KM-53) [출처=종복원기술원]
수도산에서 포획된 반달가슴곰(KM-53) [출처=종복원기술원]

사람들은 생태계와 야생동물도 은연중에 관리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경제성장의 신화와 과학기술 만능주의 탓이 크다. 그러나 생태계와 그 안의 먹이그물은 사람과 과학의 인식과 예측 범위를 늘 벗어난다. 어떤 한 종이 사라지거나 멸종된 종을 복원했을 때의 파급효과는 매우 복잡한 메커니즘을 통해 생태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있는 핵심종(keystone species)인 늑대의 개체 수가 크게 줄어들거나 사라지면 대형 초식동물의 개체수가 늘어날 것으로 생각하지만, 미국 옐로스톤에서 결과는 정 반대로 엘크, 무스 등의 개체수도 줄어들었다. 늑대가 개체 수를 조절해 온 들쥐, 마모트 등 소형 초식동물들이 급증하면서 번식력이 왕성한 이들이 초원의 풀들을 고갈시킨 탓이다.

미국정부는 1994년 목축업자들의 과도한 사냥 탓에 1973년 멸종위기종으로 등재된 늑대의 복원사업 추진을 결정했다. 이듬해부터 2년간 캐나다 앨버타주 등에서 포획한 늑대 66마리를 옐로우스톤, 아이다호 중부, 몬태나 북서부 등 3곳에 방사했다. 2002년에는 늑대 개체수가 232마리로 늘어 목표를 달성했다. 동시에 늑대는 멸종위기종 목록에서 해제됐다. 핵심종인 늑대의 복원과 함께 포식자와 초식동물의 균형이 인간의 간섭이 있기 전으로 되돌아갔다. 산림과 초원이 건강하게 복원되면서 일부 대형 초식동물 개체수는 오히려 증가한 것이다.

야생동물과 원시인들은 자연에 적응하는 능력에 있어서 현대 인류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현명하거나 현명했다. 과학기술을 맹신하는 현대인들이 자연의 속성과 그 변화에 대해 훨씬 더 무지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호주의 원주민들이 미개하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또한 원시인류의 자연 인식과 항해기술을 멸시해 왔다. 고고학과 고생물학의 발굴을 통해 그 편견들은 자꾸만 깨져가고 있다. 그와 비슷한 이치로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을 제대로 추진한다면 우리는 우리 사회와 정부가 얼마나 인간중심적, 개발만능적 사고에 젖어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즉 반달가슴곰 무리가 살아가고, 자손을 퍼뜨리기에 한반도는 너무 많은 도로로 단절돼 있고, 다양한 생물종이 서식하는 숲이나 습지가 이미 개발됐다거나 무분별한 개발위협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이다.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이 성공한다면, 그 성공이 우리 국민들의 삶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과 의미는 그러한 반성이다. 또한 역으로 그 같은 반성이 없이는 복원사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한국수달연구센터의 한성용 센터장은 “이제부터라도 지리산뿐 아니라 우리나라 깊은 산에는 곰이 사니까 혼자서 산에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면서 “사람이 산에 대한 경외심과 두려움을 가진다는 것은 자연과 사람 모두를 위한 축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복원사업이 성공하려면 다음과 같은 정책들이 필요하다. 우선 현재 8km 마다 단절돼 있는 백두대간 마루금의 도로 가운데 차량 통행량이 적거나 기능을 잃은 구도로를 대상으로 아스팔트 제거를 통한 재자연화하거나 탐방로로 복원하는 계획을 대대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런 옛길 복원에는 예산도 많이 들고, 통행불편을 우려하는 주민들의 반대도 심하다. 그러나 주민설득이 어려운 만큼이나 설득에 성공한다면 국민들의 반성과 인식전환에도 이뤄진다는 의미다. 또한 반달가슴곰의 이동경로가 예측불허라는 점을 계기로 법정보호구역과 핵심보호구역을 확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립공원,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백두대간보호구역, 자연경관보호구역, 국유림 등 여러 종류의 보호구역을 통합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또한 보호구역 담담부처들 간에 일부 조직 통합이나 인력과 예산의 공유 등 협력도 필요하다.

[출처 = wellsgraypark]
[출처 = wellsgraypark]

고래, 코끼리, 회색곰, 호랑이와 같은 ‘카리스마적 대형동물’들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따라서 이들 동물은 많은 곳에서 직접 관광자원이 되기도 한다. 생물학자 에드워드 O. 윌슨은 “회색곰, 늑대, 대왕오징어 등 희귀동물이 우리 곁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자연이 살아 있다는 상징이 되고 우리 세계가 안전할 것이라는 안도감을 준다”고 말했다. 윌슨은 이를 ‘회색곰 효과’라고 불렀다. 우리나라에 남은 카리스마적 대형동물의 대표는 반달가슴곰이다. 곰이나 호랑이와 같은 맹수와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는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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