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것들의 부피와 거기 얽힌 인생의 무게를 생각하며

때로는 긴 글 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많은 메시지를 담습니다. 과거 잡지기자로 일하던 시절에 그런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포토그래퍼나 디자이너에게 어떤 느낌의 작업물을 원하는지 전달하려면 빽빽한 글을 채운 작업지시서보다 딱 한 장의 ‘시안’이나 ‘레퍼런스’가 훨씬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살면서 마주치는 여러 가지 환경 관련 이슈, 그리고 경제 관련 이슈가 있습니다. 먼 곳에 있는 뉴스 말고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마주하는 공간에서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것들 말입니다. 그런 풍경들을 사진으로 전하겠습니다.

성능 좋은 DSLR이 아닙니다. 그저 주머니에서 꺼내 바로 찍을 수 있는 폰카입니다. 간단하게 촬영한 사진이지만 그 이미지 이면에 담긴 환경적인 내용들, 또는 경제적인 내용을 자세히 전달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사진으로 읽는 환경 또는 경제 뉴스입니다. 열 여덟번째 사진은 누군가의 삶의 무게로 쌓여있는 ‘폐기물(?)’의 모습입니다. [편집자 주]

 

서울 한 주택가 이면도로에 상자가 쌓여있다. 버려진 상자, 정확히 말하면 버려진 것들을 모은 상자 더미다. 쌓여있는 폐지 부피가 누군가에게 주는 불편과 그 폐지를 짊어진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의 무게가 함께 보인다. 이런 문제는 누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한 기자 2020.10.13)/그린포스트코리아
서울 한 주택가 이면도로에 상자가 쌓여있다. 버려진 상자, 정확히 말하면 버려진 것들을 모은 상자 더미다. 쌓여있는 폐지 부피가 누군가에게 주는 불편과 그 폐지를 짊어진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의 무게가 함께 보인다. 이런 문제는 누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한 기자 2020.10.13)/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서울 한 주택가 이면도로에 상자가 쌓여있다. 버려진 상자, 정확히 말하면 버려진 것들을 모은 상자 더미다. 그 위에는 구청에서 내건 안내문이 붙었다. ‘폐기물 적치로 민원이 발생하고 있으니 조속히 정비하고 청결을 유지해달라’는 내용이다.

기자가 이 모습을 보고 느낀 건 씁쓸한 아이러니다. 쌓여있는 폐지 부피가 누군가에게 주는 불편과 그 폐지를 짊어진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의 무게가 함께 느껴져서다. 폐골판지 가격은 부피가 아니라 무게로 매긴다. Kg당 60~80원 정도로 50Kg을 모아도 김밥 2줄을 못 산다. 상자를 저기 쌓아둔 사람은 이 폐지를 ‘정비’해서 ‘청결을 유지’하고 나면 얼마를 손에 쥘까?

생활정책연구원 부설 쓰레기센터 이동학 대표는 2년 동안 세계를 여행하며 지구촌 곳곳 쓰레기를 직접 보고 왔다. 그는 쓰레기더미 때문에 일상을 위협받는 사람과, 그 쓰레기 더미에서 돈벌이 거리를 찾아야 하는 사람의 삶을 함께 보면서 커다란 아이러니를 느꼈다고 했다. 쓰레기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생각도 새삼 들었단다. 그와 비슷한 모습이 바로 여기, 서울에도 있다. 이런 아이러니는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잔뜩 쌓인 상자의 부피는 곧 누군가의 고단한 삶이다. 그 사람은 저걸 팔아 쌀을 산다. 부피와 무게가 커질수록 밥벌이의 고단함도 더욱 깊어진다. 누군가의 쓰레기가 누구에겐 밥줄이 되는 아이러니다. 하지만 상황이 그래도 재활용품을 아무데나 쌓아두면 안 된다. 안락해야 할 내 집을 더럽힐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집 앞에 저런 게 있다고 상상하면 기자도 싫다.

저 주택에 사는 사람과 상자를 쌓아둔 사람의 어려움을 함께 풀어야 한다. 사회에 놓인 숙제다. 참고로 덧붙이면, 지난 7월 서울 한 지자체는 ‘코로나19 장기화와 폐지가격 하락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폐지 수집 어르신을 위해 폐지 단가 차액을 보전한다’고 밝혔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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