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첫 수출… 탈원전 2년 탓하기 민망
잘나가던 미국·프랑스 원전 건설사도 몰락

[그린포스트코리아 서창완 기자] 한국 원자력발전소는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에 바라카 원전 4기를 처음 수출했다. 이후 10년 동안 수출은 더 이상 없었다. 첫 수출이 마지막 수출이 된 것이다. 원자력 산업계와 보수언론 등은 이를 2년간의 탈원전 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바라카 원전 이후 한국에는 ‘친원전’을 기치로 내건 정부가 8년이나 집권했었다.

산업계와 일부 언론은 정부가 탈원전 선언을 한 지 2년 만에 한국 원전이 글로벌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스스로 깎아 먹었다고 지적한다. 그 말을 곧이듣는다면 첫 수출 뒤 8년 동안 열심히 축적해 온 원자력계의 경쟁력이 선언만으로 사라진 것이다. 경쟁력을 어떻게 축적해 왔길래 2년 만에 사라져 버렸을까. 한국 원전 기술은 한 때 세계 최고라고 자랑해왔다.

◇구멍 숭숭 뚫리는데 세계 최고?

UAE 바라카 원전. (한국전력공사 제공)
UAE 바라카 원전. (한국전력공사 제공)

UAE 바라카 원전 운영사인 나와는 최근 한국과의 장기정비계약 기간을 나눠 단기정비계약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는 진영에서는 이를 탈원전 탓으로 돌렸다. 한국 생태계가 무너지려는 조짐을 보이자 우리와의 장기계약을 꺼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원전 생태계가 무너졌다는 한국에서 탈원전 선언 2년 동안 폐쇄된 원전은 월성 1호기 1기뿐이다. 지난해 6월 폐쇄됐다. 1983년 가동이 시작돼 2012년 설계수명이 연장된 월성 1호기는 고리 1호기에 이어 두 번째로 지어졌다. 30년 동안 39회 고장으로 발전이 정지됐고 2012년 한 해 3번의 고장이 발생했다. 폐쇄 전 1년 넘게 가동이 중단됐고, 직전 10년 동안 연평균 1036억원의 적자를 냈다.

한국은 현재 23기 원전이 가동 중이다. 탈원전 선언에 따라 삼척과 영덕 4기, 울진(신한울 3, 4호기) 2기 등 총 6기의 신규 원전 계획이 백지화됐다. 신고리 5, 6호기는 공론화를 거쳐 건설 재개를 결정했다.

오히려 최고라고 자부하던 원전 건설 기술에는 문제가 없을까. 지난해 11월 세계 최고 기술을 가진 한국이 건설한 바라카 3호기 격납건물에는 균열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콘크리트 벽 속에 주입한 윤활유인 ‘그리스’가 별 바깥쪽에 생긴 공극(빈 공간)으로 흘러나온 게 발견됐다. 균열은 공극보다 더 심각한 부실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당시 아랍에미리트 원자력공사 에넥은 바라카 2·3호기에서 공극이 발견됐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에 대한 보수작업이 진행되면서 4호기 준공시기도 당초 2020년에서 2025년으로 늦춰졌다. 최고라기에는 민망한 상황이 됐다.

양이원영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은 “국내에 있는 한빛과 고리 원전에 보였던 철판 부식이나 격납 건물 동공이나 이런 부실시공이 UAE에서도 발견됐다는 건 공사감리를 못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미국·프랑스 원전 수출… 공기 지연이 발목 잡았다

미국 웨스팅하우스는 지난 2017년 미국 연방법원에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웨스팅하우스는 전 세계 원전의 절반을 건설했을 정도로 승승장구하던 기업이다. 미국은 1979년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로 40년 가까이 자국에 원전을 건설하지 않았다.

웨스팅하우스는 한국 첫 상업용 원전인 고리 1호기를 건설한 회사로도 잘 알려져 있다. 웨스팅하우스의 몰락은 2011년 후쿠시마 동일본 대지진으로부터 시작됐다. 멜트다운이 된 원자로 3기 중 2기를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한 도시바가 만든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웨스팅하우스 로고.
웨스팅하우스 로고.

웨스팅하우스를 무너뜨린 한방은 이후 중국에서 나타난 기술결함이었다. 상하이 남쪽 해변에 건설하던 산멘 원자력발전소의 원자로에서 기술결함이 발견돼 공기가 4년이나 지연됐다. 최첨단이라고 자랑했지만 곳곳에서 공기가 지연되는 일이 이어지면서 원전 공룡은 결국 쓰러졌다.

한때 세계 원전 4기 중 1기(2011년 기준)를 건설하며 원전 시장을 장악했던 프랑스 아레바 역시 원전 사업을 매각했다. 핀란드 원전 건설사업 지연 등으로 2014년 6조원 넘는 손실을 봤기 때문이다.

‘2018 세계 원전산업 동향 보고서(WNISR)’의 총괄 저자 마이클 슈나이더 컨설턴트는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핀란드에서 원전을 짓다가 파산한 프랑스 아레바의 금융 책임자는 아레바가 프랑스전력공사(EDF)로 인수되기 전 사직하면서 영국 힝클리포인트 원전 사업의 위험성을 경고했다”고 말했다.

30년 넘게 원자력계에서 일해 온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원전 수출이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정도 지위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한다. 건설 기간에 10년이 걸리는 만큼 막대한 건설비용을 메꿀 전력판매단가를 보장받기 힘들어서다. 실제 2010년 10월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발표한 영국은 상대국 기업에 보장하려는 전력판매단가가 건설비용보다 현저히 낮아 투자 협상만 수년째 하고 있다.

이 대표는 “국제분쟁조정 능력이 있는 국가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수준이 아니라면 전력 공급을 위한 가격 조정 능력을 갖출 수 없어 30년 동안 운영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seotive@greenpost.kr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