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과일지도’가 바뀌고 있다, 알고 보면 섬뜩하다
‘한반도 과일지도’가 바뀌고 있다, 알고 보면 섬뜩하다
  • 채석원 기자
  • 승인 2018.11.2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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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난화 탓에 이름도 생소한 열대과일 재배 크게 늘어
‘금세기 안에 한반도에서 사과 사라질 수도’ 전망까지
사라진 명태, 사라지는 오징어와 꽁치… 바다도 ‘급변’
한반도 평균 온도, 지구 평균보다 훨씬 가파르게 올라
영동군 주민 이병덕(62)씨가 열대과일인 용과를 수확하고 있다. (사진=영동군 제공)
영동군 주민 이병덕(62)씨가 열대과일인 용과를 수확하고 있다. (사진=영동군 제공)

[그린포스트코리아 채석원 기자] 충복 영동의 한 농가가 ‘용과’를 생산한다는 소식이 22일 알려지며 한반도 기후변화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날 영동군에 따르면 심천면 초강리의 이병덕(62)씨가 요즘 한창 용과를 수확하고 있다. 선홍빛의 선인장과 열매인 용과는 생김새가 용을 닮았다는 이유로 드래곤 프루트(Dragon Fruit)로 불린다.

용과의 생육 온도는 최저 10도, 최고 38도다. 따뜻한 중남미 열대와 아열대 지역에서 주로 기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우스에서 재배한다곤 하지만 한국에서 용과를 수확한다는 건 그만큼 한국의 기후가 아열대화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이씨는 2016년 포도 재배를 접고 1800평 규모 시설하우스에 용과 7200주를 심어 올해 첫 수확을 시작했다. 이씨는 포도를 재배할 때보다 매출도 높고 생산원가도 낮아 용과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영동군이 주목하는 과일은 용과뿐만이 아니다. 기후 온난화에 맞춘 새로운 지역특화품목을 발굴하기 위해 지역 활력화 기반조성 사업으로 올해 국비 2억4000만원을 확보하고 천혜향, 레드향 등 만감류 재배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영동에서 생산한 다양한 열대과일을 맛볼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은 셈이다. 영동군은 폐원한 포도 하우스에서 이들 과일을 기르면 열대과일이 신소득 작목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후변화가 한국의 ‘과일 지도’를 바꾸고 있는 셈이다.

농촌진흥청은 2년 전 2010년대부터 209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6대 과수 작물의 재배지 변동을 예측한 바 있다. 그랬더니 충격적인 예측 결과가 나왔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먹는 과일인 사과가 한반도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농촌진흥청은 사과 재배 면적이 급격히 줄어 2100년쯤이면 사과 농장 대부분이 사라질 거라고 했다. 강원도 산간 일부에서나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 희귀 과일이 된다는 것이다.

배 복숭아 포도 등 다른 과일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40~2050년까지는 재배가 늘다 이후 계속 줄 것으로 예측됐다. 반면 비교적 따뜻한 지방에서 자라는 단감과 감귤은 꾸준히 재배 면적이 늘 것으로 전망됐다.

제주에서 기르는 한라봉의 재배지가 전남 고흥과 나주 등으로 북상하고, 사과 주산지가 대구에서 훨씬 북쪽인 강원 영월과 평창 등으로 대체되고 있는 걸 보면 기후변화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이렇게 가다간 북한에서 사과나 포도를 수입하는 시대를 맞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 점차 사라지는 과일은 열대 작목이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용과는 물론이고 파파야 구아버 애플망고 파인애플 바나나 패션프루트 아떼모야 아보카도 등의 열대 과일을 한국 농부들이 키우고 있다. 제주는 이미 ‘이국 과일 성지’로 떠올랐다. 올리브 노지 재배에 성공한가 하면 남북회귀선에서나 볼 법한 커피나무까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농촌진흥청 자료를 보면 ‘과일 지도’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 열대과일 생산량은 1074톤으로 전년(769.6톤)보다 52.5% 급증했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은 열대과일 재배면적이 2014년 1345ha에서 2016년 1407ha로 늘었다면서 패션프루트 망고 파인애플 용과 파파야 등이 특히 많이 재배되고 있다고 밝혔다. 과일만 놓고 보면 한국은 이미 동남아시아인 셈이다.

제주에서 발견된 파란고리문어(사진=국립수산과학원 제공)
제주에서 발견된 파란고리문어(사진=국립수산과학원 제공)

급격한 기후변화 징후는 ‘물고기 지도’를 봐도 확인할 수 있다.

요즘 정부는 명태 살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1981년엔 10만톤이나 잡은 명태의 어획량이 2008년부터 아예 ‘제로’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개도 안 물어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이 잡았던 명태를 멸종 위기에서 구해 다시 ‘국민 생선’의 지위를 부여하기 위해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그리고 ‘집 나간 명태를 찾습니다’라고 적은 전단을 동해안의 각 항구에 뿌렸다. 명태를 잡아 오면 보존 상태에 따라 5만~50만원의 포상금을 주겠다는 내용의 전단지였다.

갖은 노력 끝에 명태 부화에 성공하고 완전 양식기술을 갖추는 데 성공했지만 집 나간 명태를 찾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국 바다의 상황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가 부화해 방류한 명태는 31만6000여 마리지만 생사를 확인한 건 세 마리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해안이 자꾸 따뜻해지면서 명태에 이어 꽁치도 집을 나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꽁치 어획량은 20년 전(1741t)의 0.37%(40톤)에 불과하다. 가을철 대표 생선이 온난화로 인해 어느덧 희귀 생선이 된 셈이다. 오징어 어획량도 급감했다. 1997년 4만4862톤 잡혔던 오징어의 어획량은 20년 사이 10분의 1로 줄었다. 지난해 어획량은 고작 4721톤이다. 가격이 껑충 뛰어 ‘금징어’ 대접을 받는 건 물론이다. 상황이 이런 탓에 자치단체가 ‘오징어 축제’ 현장에 방어 광어 멍게를 투입하는 진풍경까지 연출되고 있다.

제주 바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바닷물이 따뜻해지면서 아열대 어류인 황놀래기 샛별돔 파랑쥐치 줄도화돔 쏠종개 청줄돔 주걱치 아홉동가리 등이 제주 바다를 돌아다니고 있다. 낯선 물고기가 많은 탓에 제주 토박이들조차 물고기 이름을 모를 정도다. 맹독성인 넓은띠큰바다뱀, 파란고리문어도 나타났다. 파란고리문어의 경우 만지기만 해도 위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에 볼 수 없었던 알록달록한 물고기와 산호를 감상하려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제주는 ‘스킨스쿠버 천국’이 됐지만 바닷속에선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과일과 물고기의 지도가 바뀐 건 ‘지구 온난화’ 때문이다. 지구 평균 기온이 점점 높아지는 건 전지구적인 현상이지만 한국 평균 기온의 경우 더욱 가파른 상승세룰 보이고 있다. 지난 100년간 세계 연평균 기온이 0.7도 오를 때 한국은 1.5도 올랐다.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는 이런 추세로 가다간 2100년 한국의 연평균 기온이 5.7도 상승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 같은 수치는 세계 연평균 기온 상승치(4.6도)보다 1.1도 높은 것이다.

이렇게 지구온난화가 계속해서 악화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영국 가디언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 연구팀은 과학저널 네이처에 게재한 논문에서 지금처럼 지구온난화가 계속해서 악화한다면 이번 세기에 지구 온도가 3, 4도가량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구 온도가 3, 4도 오르면 허리케인 강우량이 33%가량 증가하고 풍속이 시속 25노트(46.3㎞) 빨라지는 가공할 사태가 벌어질 거라고 했다. IPCC에 따르면 지구 온도가 2도 이상 오르면 여름철 폭염으로 유럽에서만 수만 명이 죽고 세계 각종 생물의 3분의 1이 멸종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식량 생산이 4분의 1 감소해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도 있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은 JTBC ‘차이나는 클라스-질문 있습니다’에 출연해 지구 온도가 6도가량 오르면 지구멸종이 완성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지구온난화를 단순 자연재해로 여기지 않고 전 지구가 힘을 합해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로 삼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반도 ‘과일 지도’와 ‘물고기 지도’의 변화를 심상찮게 여겨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jdtimes@green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