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탈소비현상과 21세기판 행복

 

우리 사회는 정-반-합의 변증법적 진화를 반복하며 발전해왔다. 한국사회 곳곳에서는 그동안 주류가 기대온 가치관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사람들은 '낡은' 구조로부터 이탈해 새로운 가치를 찾아나선다. '합'으로 나아가려는 이들의 이러한 시도는 종종 논란 속에 길을 잃기도 한다. 이에 탈(脫)과 관련한 우리 사회의 현상들을 진단해보고 차이와 반복을 통한 '합'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탈(脫)수기'시리즈를 통해 그 방향을 제시해본다. 시리즈는 총 3회에 걸쳐 '탈코르셋', '탈소비', '탈원전'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편집자주]

[그린포스트코리아 권오경 기자] 행복한 삶을 위해 필요한 돈을 얼마일까. 그동안 사람들은 미래의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어떤 기대, 희망을 품고 손에 잡히지 않는 '행복'을 위해 밑빠진 독에 물붓는 식으로 저축과 소비를 반복했다. 사람들은 더 '좋은' 소비를 하기 위해 더 '많이' 벌어들이려 노력하며 허울뿐인 ‘장밋빛 인생’을 꿈꿔왔다.

하지만 21세기 현재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뒷걸음질 중이다. OECD에 따르면 2016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2.8%을 기록했으며, 2017년에는 2.7%에 그쳤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도 3%를 웃돌 것으로 OECD는 예상했다. 가정 경제의 가처분 소득도 거의 증가하지 않고 있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은 “현재 우리 사회는 이전과 달리 사실상 경제의 고도성장이라는 것이 끝나버린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이제는 '국민총생산(GNP)'보다 ‘국민총행복량(GNH)'의 개념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물질주의의 폐해를 체감한 사람들은 ‘카르페 디엠’ 혹은 ‘욜로’(You Live Only Once)를 외치며 현재에 집중하고, 자신의 행복을 가꾸는 데 열중하기 시작했다.

◇ ‘물질주의’세대가 말하는 행복

18세기 산업혁명과 19, 20세기 자본주의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경제를 곧 ‘돈벌이’로 직결시켰다. 홍기빈 소장은 “경제라는 말에는 ‘돈벌이’라는 뜻과 ‘살림살이’라는 뜻이 모두 포함돼 있는데 사람들은 전자의 의미로만 경제를 인식해왔다”면서 “살림살이가 제외된 좁은 의미의 경제개념이 퍼지면서 사람들은 오로지 '성장'과 '화폐로 계산되는 수익의 극대화와 축적’에만 주의를 기울여왔다”고 지적했다.

급격한 성장을 추구하는 사회는 과잉생산, 과잉소비 현상을 낳았다. 2018.7.31/그린포스트코리아
급격한 성장을 추구하는 사회는 과잉생산, 과잉소비 현상을 낳았다. 2018.7.31/그린포스트코리아

그 결과 한국의 1980~1990년대 경제성장률은 8%에 육박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 이후에는 정치적인 민주화까지 이뤄지면서 국민소득이 더욱 높아졌다.

급격한 성장만 추구하던 사회는 성장과 동시에 과잉생산, 과잉소비 현상을 낳았다. 홍 소장은 “세계 경제가 고도성장기에 있을 때 사람들은 ‘행복한 삶’의 개념을 물질주의와 긴밀하게 연결시켰고 이와 연결된 소비 패턴이 문화적 삶의 틀과 합쳐져 하나의 구조를 이루었다”고 말한다. 물질주의가 인생 주기에 대한 관점과 가치관을 결정해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노후를 대비한 부동산 혹은 아이들 유학자금 등 지금보다 나중을, 개인적인 것보다는 가족을 위한 것에 투자하는 경향을 보였다. 결혼해서 둘 이상의 자식을 낳고, 넓은 평수의 집을 사고,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그 평수를 늘려나가고, 차도 사고, 고급차로 바꾸면서, 별장도 사고, 해외여행도 다니고, 아이들 유학도 보내고 노후 준비도 철저히 하는 것 등이 행복의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른바 '제로성장시대'에 들어선 21세기 우리 사회에서 인간의 ‘행복한 삶’을 위해 필요한 것들은 시장에서 돈 주고 사올 수 있는 것이 아닌 경우가 너무나 많다. 미세먼지없는 삶, 여성들이 밤거리를 안전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삶 등이 그렇다.

홍 소장은 “사람들은 이제 경제를 돈벌이로만 생각하던 것에서 벗어나 좋은 삶을 위한 ‘살림살이’로서 경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으며 ‘행복’에 대한 인식도 이전과는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탈소비주의’가 말하는 행복

물질주의의 폐해를 체감한 사람들은 ‘카르페 디엠’ 혹은 ‘욜로’(You Live Only Once)를 외치며 현재에 집중하고, 자신의 행복을 가꾸는 데 열중하기 시작했다.2018.7.31/그린포스트코리아
물질주의의 폐해를 체감한 사람들은 ‘카르페 디엠’ 혹은 ‘욜로’(You Live Only Once)를 외치며 현재에 집중하고, 자신의 행복을 가꾸는 데 열중하기 시작했다.2018.7.31/그린포스트코리아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는 2018년 경제 키워드로 ‘소확행’을 제시했다. ‘소확행’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한다는 뜻의 신조어이다. 성공을 위해 현실을 희생하느니 지금 아주 작게라도 확실한 행복을 찾겠다는 의지가 담긴 표현이 바로 ‘소확행’이다. 1990년대에는 가족행복시대였다. 결혼을 하고 내 가족과 내 집에서 사는 것이 행복으로 여겨지는 시대였다. 하지만 2018년 현재의 사람들은 결혼, 자녀, 집 구매 등의 거창하지만 불확실한 행복보다 일상 속에서 만나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기 시작했다.

‘일상속에서 만나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2018.7.31/그린포스트코리아
‘일상속에서 만나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2018.7.31/그린포스트코리아

지금 현대사회 소비자들은 취업, 결혼, 연애 등의 꿈들보다 갓 구운 빵을 찢어 먹고, 금요일 밤 옥탑방에 둘러앉아 수다를 떠는 시간과 같은 ‘일상속에서 만나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원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제 소비가 아닌 공유를 하기 시작했다. 옷과 가방을 대여해주는 더 클로젯, 서울시가 운영하는 자전거 대여 시스템 ‘따릉이’, 비슷한 방향의 목적지로 향하는 사람들이 차량을 함께 타는 ‘카풀’ 등은 모두 공유경제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풀러스.2018.7.31/그린포스트코리아
풀러스유튜브 홍보영상 캡처.2018.7.31/그린포스트코리아

‘풀러스’는 라이더가 출발지와 목적지에 대한 정보를 핸드폰에 입력하면 루트가 유사한 드라이버에게 이를 전송하고, 가장 가까운 드라이버를 라이더에게 매칭시키는 ‘카풀’ 어플리케이션이다. 이용자들은 풀러스를 통해 같은 여정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만나 새로운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으며 풀러스 커뮤니티를 통해 기름값과 교통비를 절약하고, 출퇴근 길의 불편도 해소하고 있다.

풀러스 홈페이지 캡처.2018.7.31/그린포스트코리아
풀러스 홈페이지 캡처.2018.7.31/그린포스트코리아

김태호 풀러스 전 대표이사는 “경제적이고 환경 친화적인 교통생태계를 만드는데 기여하고 싶었다”면서 “대부분의 차량들이 주차장에 세워져 있고 이동 차량의 탑승자도 운전자 혼자라는 사실에 주목했고 자동차의 공유를 통한 ‘협력적 소비문화’를 확산하고자 사업을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옷과 가방을 빌려주는 더클로젯 역시 ‘공유’와 ‘협력’에 방점을 두고 사업이 시작됐다.

더클로젯 홈페이지 캡처.2018.7.31/그린포스트코리아
더클로젯 홈페이지 캡처.2018.7.31/그린포스트코리아

성주희 더클로젯 대표는 “제품을 버리지 않고 공유하며 필요할 때 빌려쓰니 경제성이 높고 환경 친화적”이라면서 “미니멀리즘과 의식있는 소비에도 잘 부합하는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공식적인 자리에 맞는 의상을 구매하기에 부담스러운 고객들을 위해 더 클로젯은 명품 브랜드의 옷이나 가방 등을 대여해준다. 현재 7000명 이상의 회원이 더클로젯을 이용하고 있다. 명품브랜드 가방을 대여한 A씨는 “괜찮은 가격대에 좋은 디자인과 품질의 옷과 가방을 빌릴 수 있다는 게 더클로젯의 장점”이라면서 “굳이 구매하지 않고도 이런 공유서비스를 통해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이용 후기를 전했다.

더클로젯 홍보용 이미지.2018.7.31/그린포스트코리아
더클로젯 홍보용 이미지.2018.7.31/그린포스트코리아

사회가 복잡해져 갈수록 사람들은 단순함에 더 매력을 느낀다. ‘단순한 학교’의 운영자이자 책 '가장 단순한 것의 힘' 저자인 탁진현 작가는 탈소비주의가 등장하게 된 배경을 “산업혁명을 통해 풍요를 맛보고 대량소비를 해본 선진국들은 이미 2~30년 전부터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 역시 많이 사고, 많이 소유하면서 살아봤지만 결국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 이제 트렌드처럼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단순한학교 홈페이지 캡처.2018.7.31/그린포스트코리아
단순한학교 홈페이지 캡처.2018.7.31/그린포스트코리아

탁 작가가 ‘단순한 학교’를 설립하게 된 것도 사람들에게 '비우는 용기와 그로부터 오는 행복'을 알리기 위해서다. 신문사에서 10년 동안 일한 경력이 있는 그는 누구보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어야 했다.

탁 작가는 “예전에 나는 더 높은 연봉을 받으려 아등바등 일하고, 물건이 많으니까 더 큰 집으로 이사하려고 애쓰며 살았었는데 그런 나에게 그 누구도 비우라고 말해주지 않았다”면서 “너무 채우면서 살면 오히려 소소한 행복을 놓치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지금보다 더 많이, 더 높이 원할수록 욕망은 계속해서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주변에 있던 소중한 행복을 놓치게 될 수 있는데 필요치 않은 것들을 비워낸다면 지금 나에게 가치있는 것들에 더 집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가장 단순한 것의 힘'의 저자이자 단순한학교 운영자인 탁진현 씨.(단순한 학교 홈페이지 캡처)2018.7.31/그린포스트코리아
'가장 단순한 것의 힘'의 저자이자 단순한학교 운영자인 탁진현 씨.(단순한 학교 홈페이지 캡처)2018.7.31/그린포스트코리아

‘단순한 학교’에서 강의를 들은 수강생인 김모(30대)씨는 “이젠 나를 위한 시간을 내기로 했다. 워킹맘인데 이번 수업을 들으면서 아이들 장난감이나 책은 절대 없애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버렸다. 집이 늘 지저분해서 퇴근 후에도 스트레스가 쌓였는데 매일 쓰지 않는 것들을 치우자 집이 깨끗해지고 청소가 간편해졌다. 살 빠지면 입을 것 같은 옷도 줄이고, 사진, 통장, 명함도 정리했다. 인생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적어보는 것도 도움이 됐다. 일 욕심이 많아서 작년 365일 일만 했는데 가족을 잘 돌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가족과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자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강생인 조모(40대)씨는 “물건보다 자연이 좋아졌다”면서 “친구와 신제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었는데 강의를 듣고 생활패턴을 바꿔야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주말 쇼핑몰을 가는 대신 광릉수목원을 걸으니 너무 좋더라. 그동안 물질적인 소비를 많이 해왔는데 이제는 점점 자연이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탁진현 작가는 “이곳에서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은 미니멀 라이프가 가져오는 행복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고 일상 속에서 만나는 진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면서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미래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닌,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가족과 친구의 소중함 등 일상 속에 ’존재‘하는 것이 진짜 행복”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면서 행복은 지금의 일상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래에만 있어서 결코 오지 않았던 행복이 마침내 현재의 나에게로 찾아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roma2017@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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