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가구의 5%가 '절수형변기' 쓰면 4,500만 평 농지 "가뭄 걱정 끝"…여의도 50배 이상 규모

[편집자주]우리나라는 유엔이 지정한 물부족 국가. 이런 사실을 많은 국민들이 알고 있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여전히 물을 '물쓰듯' 한다. 특히 화장실과 욕실에서 쓰는 물의 양은 OECD의 다른 나라에 비해 두 배에 달한다. 환경부가 양변기로 낭비하는 물을 막기 위해 절수형 양변기 설치 확대에 나섰지만, 시장 여건의 미성숙 등으로 인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매년 반복되는 가뭄해소 등을 위해 절수형 양변기 설치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 따라 절수형 양변기 설치현황, 제품개발 상황, 제도적 보완책 등을 특별기획 시리즈로 보도한다. 

팔당댐 모습 출처=경기영상위원회

 


가정에서 물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용도는?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물을 어디서 가장 많이 쓸 것 같으세요?"
이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 머뭇거린다. "...샤워할 때? 설거지?...아니면 빨래...?"
보통 이런 용도로 물을 많이 쓸 거라고 생각하지만, 화장실에서 가장 많이 쓴다. 그것도 양변기(대변기)에서.

서울연구원이 지난 3월 서울시민 하루 물 사용량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가정용으로 사용하는 물 가운데 변기에서 사용하는 물이 25%로 가장 많았다. 설거지(21%)가 그 다음이고, 이어 세탁(20%), 목욕(16%), 세면(11%) 등의 순이었다.

우리 국민 한 사람이 하루에 소비하는 물의 양은 평균 280ℓ. 4인 가족을 기준으로 하면 한 가정마다 1120ℓ다. 
서울연구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이 가운데 변기로 쓰는 물이 280ℓ 가량 된다. 일년치는 무려 100t아 넘는다.

현재 대부분의 가정에서 사용하는 양변기는 1회 물사용량이 12~15ℓ에 달한다. 노후된 변기의 경우 한 번 물 내리면 20ℓ가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따라서 양변기의 1회 물사용량을 절반 가량 줄일수만 있다면 4인 가족이 1년에 양변기로 흘려보내는 물의 양은 50t 미만으로 팍 떨어진다.

국립환경과학원 생물안전연구동 화장실에 설치된 절수형 양변기 출처=박현영 기자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5%만 절수형양변기(1회 사용량 6ℓ이하)로 바꿔도 연간 3340만t의 물을 아낄 수 있다. 

이 정도 양의 물은 여의도의 50배가 넘는 1만 5,000여 ha(약 4,500만 평) 이상의 농지에 물을 공급할 수 있는 규모다. 이 수량은 경기도가 홍수조절용도인 한탄강 댐을 농업용수 공급을 위한 다목적 댐으로 변경 계획을 추진하면서 기대하는 용수량 3,000만 톤을 넘는 양이기도 하다. 

정부의 계획대로 절수형양변기 사용이 확대돼 전체 가구의 절반이 절수형양변기를 쓰게 된다면 3억3400만t이 절약된다. 2500만 수도권 시민들의 상수원인 팔당댐 1개 반 정도에 가득찬 물을 아끼는 것이다. 

환경부, 수도법 개정으로 '절수형양변기 설치 의무화'

정부가 양변기로 줄줄 새는 물을 줄이기 위해 마련한 방안이 절수형 양변기 설치 의무화다.

환경부는 지난 2012년 수도법을 개정, 모든 신축건물은 반드시 6ℓ 이하 절수형 양변기를 설치하도록 했다. 이를 어길 경우, 건물주는 3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다만 환경부는 당시 시판되던 절수형 양변기들의 기술적 수준이 미흡, 당장 6ℓ 기준을 충족하기에는 현실적 문제가 있다고 보고 시행을 1년반 유예했었다.
수도법 시행규칙 출처=환경부

 



따라서 2014년 1월부터는 이 개정법이 시행되고 있는 중이다.  

이전에는 양변기 물탱크안에 벽돌을 넣는 등 가정마다 물절약을 위한 '생활의 지혜'가 유행하기도 했으나, 사용중 여러 문제점들로 인해 지금은 시들해진 상태. 환경부는 절수형 양변기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이제는 제대로 된 절수형 양변기가 출시됐을 것이고, 따라서 발전된 기술이 벽돌을 대체하고 남음이 있다는 정책적 판단을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국내에서 다양한 모델의 절수형 양변기가 시장에 나왔으며, 일반 가정이나 사무실 등에서 절수형 양변기를 찾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절수형 양변기 보급 상황은?

환경부가 절수형 양변기 보급 확대를 위해 야심찬 계획을 발표한지 만 4년이 됐다. 특히 의무 불이행에 대해 과태료 등의 처분을 시작한지도 2년 6개월이 된다. 

하지만 현재 환경부는 절수형 양변기 설치 현황에 대한 자료가 전혀 없다.
법개정 후 만 4년이 지났음에도 신축건물의 설치의무 준수율, 절수형 양변기 시장상황, 정책적 효과 등을 전혀 파악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중앙부처는 관련 법안 마련 등 제도 정비의 역할로 한정되고, 구체적인 시행 사항 관리, 점검은 지자체의 몫"이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법개정으로 할 일을 다한 것이고, 개정법이 잘 지켜지는지 관리감독은 지자체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얘기다.

국립환경과학원 생물안전연구동 절수 기기 관련 서류 출처=박현영 기자

 


그러나 지자체 담당자들은 이런 내용조차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 건축 인허가 관계자에게 이런 내용을 알고 있는지 확인했으나 "알지 못한다"고 했다.
신축 건물 건축·준공 허가를 할 때 절수형 설비 설치 여부를 점검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것이다.

수도권의 다른 지자체 관계자는 "건축과에서 건축 인허가와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고 있지만 수도법에 규정된 절수 설비 의무 설치 내용은 누가 담당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사실 부족한 인원으로 많은 업무를 담당하다 보니 모든 업무를 정확하게 알고 처리하기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절수설비를 설치하지 않은 건축주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처벌 규정까지 마련됐지만 이를 관리 감독할 담당자가 불분명해, 관리 또한 정확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관리감독 주체조차 없다보니, 물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힘들게 개정한 법이 사문화된 상황이나 다름없다. 
수도법이 개정된 지난 2012년 이후 실제로 과태료가 부과된 사례가 있는지 확인한 결과, 지금까지 그런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자체에서 과태료 부과 등의 관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며 "여러 지자체에 확인했으나, 과태료 부과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고 말했다.

부족한 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처벌규정까지 마련하며 정책적 의지를 내보였지만, 지금까지는 용두사미다. 

환경시민단체 관계자는 "물 절약 등을 위해 정부가 의지를 갖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면서 "이제라도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실태파악 등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절수형 양변기 물 내려가는 모습. 사진=박현영 기자

 


"기준을 충족하는 절수형 양변기가 있기는 한가요?"

더 큰 문제는 시판중인 대부분의 절수형 양변기가 6ℓ 이하라는 기준을 총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산업기술원에서 환경인증을 받고, 6ℓ면 충분하다고 시험도 거쳤지만, 실제 6ℓ로는 턱없는 제품이 대부분이다. 말끔히 씻겨 내려가지 않고, 또 자주 막힌다.

그러다 보니 업체에서 절수형 양변기라고 설치해 놓고도 사용자들의 불만으로 인해 1회 사용량을 10ℓ 정도로 올려놓는 경우가 많다. 무늬만 6ℓ일 뿐, 실제로는 기존 변기와 성능면에서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업계 관계자는 "절수형 변기로 시판중인 양변기 가운데 6ℓ이하 기준에 맞는 제품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절수형 변기라는 환경인증은 붙어 있는데, 유량계 등으로 측정하면 실제 8~10ℓ리터의 물을 사용하고 있고, 심한 경우는 15ℓ리터까지 사용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물 절약을 호소하며 법까지 개정해 절수용 변기 등 절수 설비 기준을 강화했지만, '정책따로 현실따로'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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