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진, 목소리에만 집중하라더니 전문판정단에 몸매전문가 투입

출처=MBC '복면가왕' 홈페이지, 방송화면 캡처

 

[환경TV뉴스] 홍종선 기자 = 음악프로그램의 혁신과 복제, 변이가 예능의 인기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케이블TV 채널의 ‘슈퍼스타K’가 지난 209년 7월 시작을 알린 뒤 지상파TV가 ‘위대한 탄생’ ‘K팝스타’ 등으로 복제하면서 오디션 프로그램의 붐이 일었고 음악방송에 대한 시청자의 관심이 고조됐다.

이후 출연자를 가수지망생이 아닌 기성가수로 바꾸고 ‘경연’의 콘셉트만 살린 프로그램들이 바통을 받았다.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은 인기스타의 가세로 음악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을 한층 더 고조시키고, 지나간 가요들이 21세기에 불리게 함으로써 세대 간의 소통에 한몫했다.

고조된 인기에 힘입어 음악프로그램들은 ‘예능의 옷’을 한 겹 보태며 재미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힌트를 가수지망생 오디션 프로그램 ‘보이스 오브 코리아’에서 얻은 것일까. 해당 프로그램이 시청자에게는 모두 공개하되, 심사위원에게는 목소리 외에 아무 것도 노출시키지 않았던 ‘비밀주의’ 전략을 차용해 독창적으로 변이시켰다.

그 가운데 ‘너의 목소리가 보여’는 비가수 출연자인 것은 같되, 거꾸로 목소리만 ‘숨긴’ 방식으로 음치와 실력자를 찾아내게 한다. ‘히든 싱어’ 역시 주로 특정 가수의 팬이거나 모창 능력자인 일반 시민이 출연, 해당 가수와 ‘진짜 그 가수의 목소리 찾기’를 펼친다. 목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도록 ‘비밀의 통’ 속에서 노래한다.

비밀주의를 채택한 아류작들 가운데, 출연자를 가수를 비롯한 연예인으로 바꾼 ‘복면가왕’은 ‘보이스 오브 코리아’와 가장 비슷한 형식과 목적을 취한다. ‘목소리에 집중해’ 경연에서의 승자를 가리는 방식으로, 대중적 인기도나 외모의 우월이라는 ‘계급장’을 떼고 실력만으로 가왕을 뽑는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심사위원뿐 아니라 방송 현장의 판정단, 안방 시청자 모두 가수(노래 부르는 자)의 ‘정체’를 알 수 없다.

음악프로그램의 자기복제와 변이 속에 ‘복면가왕’은 음악‘예능’의 정점에 있다. 출연자가 연예인이라는 점에서 인기의 기본을 확보하고 시작하는 데다 승자와 패자를 뽑는 경연 방식을 취하고, 추억의 노래들을 오늘로 불러내 세대 공감을 도모하는 데다 출연자마다 복면을 쓰고 노래하고 싶었던 ‘특별한 사연’을 가지고 있어 감동 지수를 높인다. 복면 하나 썼을 뿐인데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은 ‘숨은그림찾기’나 ‘윌리를 찾아라’를 능가하는 재미를 제공함과 동시에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가수의 노래 그 자체보다 그들의 외모에 관심을 가져 왔는지 돌아보게 한다.

그.런.데 레이양이 등장했다. 레이양은 복면가수의 정체를 추측하고 객석의 시민판정단과 마찬가지로 경연의 승패를 결정짓는 ‘1표’를 행사하는 전문판정단에 지난 11월29일 방송분부터 합류했다. 처음에는 누구인지 모르는 체, 아니 모르다 보니 더욱, 눈에 보이는 정보에 의존해 ‘남다른’ 볼륨을 지닌 그의 몸매에 눈길이 갔다. 누드 톤의 민소매 원피스 하나 입었을 뿐인데 단번에 시청자의 관심을 사로잡았고 그러한 관심은 다음날 양산된 기사로 확인됐다. 미스코리아 진(2007) 출신으로 머슬마니아 1위 수상에 빛나는 인물이라는,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심쿵 비키니녀’의 그녀라는 소개가 이어졌다.

노래를 들어야 하는데 엉뚱한 데로 관심이 쏠리더라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특출한 몸매 그대로, MC 김성주는 레이양을 ‘몸매전문가’라 칭한다. 레이양은 출연자들의 몸매와 몸짓을 보고 연령대나 직업군을 추측한다. 의상 뒤의 몸만을 보고 20대라거나 30대 후반이라고 분석하고, 걸음걸이나 서 있는 자세를 보고 모델이라거나 뮤지컬배우, 아이돌가수라 예상한다.

복면 뒤 정체를 찾는 게 중요한 재미인 프로그램이라지만, 목소리만으로는 알기 힘들어 몸매전문가까지 동원해 시청자의 유추를 돕는 것인가, 마음속에 물음표가 자리 잡는다. 물음표의 정체는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그램의 취지 혹은 초심으로 수렴된다. 외모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과 편견을 잠시 내려놓고 목소리에 집중해 노래를 들어보고 실력을 가리자며 출사표를 낸 게 아니던가. 이제와 우리는 몸을 가리지 않았다, 얼굴에만 복면을 씌웠다, 몸매는 처음부터 분석의 대상이었다고 친절히 설명할 텐가.

물론 레이양 전에도 전문판정단 가운데 일부가 출연자들의 키나 자세, 노래를 부를 때의 버릇 등으로 복면 속 정체를 추측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도 대놓고 몸매전문가를 기용하는 것과는 다르다. 음악의 빠(김형석)와 엄마(유영석)가 발성과 창법을 통해 직업 가수인지 뮤지컬배우인지, 배우나 방송인지를 가늠하고 성대전문가(김현철)이 성대 분석을 통해 연령대나 결절 여부를 가려내는 게 정체 찾기에 훨씬 도움이 된다. 기능적 역할의 판정단만 필요하다는 건 아니다. 김구라는 예능으로서의 미덕을 배가시키면서도 제법 정체를 잘 맞추고 이윤석과 신봉선은 개그맨으로서, 김창렬과 산들은 가수로서 제몫을 해내기에 프로그램의 재미가 커진다.

레이양은 첫 출연부터 낯가림 없이 방송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다른 전문판정단 멤버들과 스스럼없이 잘 어울리고 있다. 레이양의 방송 자질이나 능력을 문제 삼는 게 아니다. 과연 몸매전문가의 투입이 ‘복면가왕’의 취지에 어울리는 선택인지 궁금한 것이고, 큰 인기 속에 초심을 잃고 변모 중인 것인지 알고 싶은 것이고, 레이양을 투입한 제작진의 의도가 명확히 무엇인지 묻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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