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 업계 들었다 놨다 하는 美 반도체법
우려했던 중국 투자는 허용, 대신 과도한 정보 요구

국내 반도체 산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국의 반도체법(사진=클립아트)/그린포스트코리아
국내 반도체 산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국의 반도체법(사진=클립아트)/그린포스트코리아

반도체 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수요 감소로 인해 위기를 겪고 있는 국내 반도체 산업에 미국이 ‘반도체법(CHIPS ACT)’을 통해 국내 기업에 압박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상무부는 국내 기업에 중국 투자에 대한 가드레일(안전장치)은 완화했지만, 반도체 보조금 신청시 기업이 제출해야 자료에 기밀 수준의 정보를 요구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반도체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 불황 겪는 국내 반도체 산업에 엎친 데 덮친 美 반도체법

지난 28일 한국무역협회(이하 무협)의 ‘최근 수출 부진 요인 진단과 대응방향 브리핑’에 따르면, 올해 국내 수출액을 가장 많이 저하시킨 품목은 반도체였다. 무협의 분석에 따르면 반도체의 1~2월 수출 감소 기여율은 70.3%로 전체 수출 품목 중 가장 높았다.

특히 반도체 수출액이 전체 수출액에 처리하는 비중은 2016년 이후 처음으로 15% 밑으로 하락했다. 지난 20일까지 올해 누적 수출액에서 반도체가 차지한 비중은 12.8%에 그쳤다. 이는 지난해부터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주력 제품인 메모리 반도체에 대해 전세계의 수요 감소 및 가격 하락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 무협은 “반도체 수출단가가 지난해 4월부터 지속 떨어지고 있고, 물량도 지난 1월 19.3%로 급감하며 하락세로 전환됐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반도체 산업에는 또 다른 문제가 대두됐다. 바로 미국의 반도체법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8월 핵심·신흥 기술에 공공 및 민간 부문 투자 촉진을 위해 총 2800억달러(약 365조6800억원)를 지원하는 ‘반도체법’에 서명했다. 해당 법은 미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법으로, 자국의 반도체 연구·개발·제조에 대해 보조금과 세제혜택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문제는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을 경우 미국의 안보에 위협을 주는 국가에 반도체 투자를 제한하는 ‘가드레일’ 조항이 포함됐다는 점이다. ‘반도체 굴기’ 정책을 펼치고 있는 중국을 겨냥한 조항으로 풀이된다.

이에 중국에서 공장을 가동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반도체 생산공장 신설과 첨단 패키징 및 연구개발 시설 등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을 경우, 중국 공장에 더 이상 투자가 어려워 질 수 있다는 계산이어서다. 이는 양 사 뿐만 아니라 국내 반도체 산업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전망이다.

◇ 과도한 정보 공개 요구하는 반도체법, 다시 눈치싸움 시작

다행히 미국 정부는 국내 기업에 가드레일을 완화하는 방법을 택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가 공개한 반도체법 세부 규정안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에게 향후 10년 동안 중국 공장의 웨이퍼 투입량(생산 능력)을 5% 이내까지 확장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웨이퍼 투입량만 규제할 뿐 일부 설비투자 등도 가능할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이러한 세부규정 발표에 업계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다고 안도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상무부의 또 다른 발표에 안도는 우려로 바뀌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27일(현지시간) 반도체 보조금 신청시 기업이 제출해야 자료를 예시로 공개했다. 해당 예시에 따르면 미국의 반도체 보조금을 신청하는 기업은 예상되는 이익과 비용, 이를 산출하는 방식 등을 엑셀 파일로 제출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산출을 위해서는 반도체 공장의 웨이퍼 종류별 생산 능력 및 가동률은 물론 예상 웨이퍼 수율(전체 생산품 중 합격품 비율), 필요 재료 구매 비용, 인건비 등의 정보를 제공해야한다는 것이다.

특히 질소, 수소, 황산 등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소재별 비용을 비롯해 직원 유형별 고용인원, 특정 시설의 실제 수율 등은 영업기밀로 분류할 수 있다. 사실상 반도체 생산과 관련된 모든 데이터를 공개하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불과 일주일 전 미국 상무부의 발표에 안도했던 업계는 이번 조치에 다시 우려를 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에서 제시한 요소 중 업계의 기밀사항이 너무 많은 것이 사실”이라며 “반도체법은 세부지침이 발표될 때마다 정부, 기업, 이해당사자간 의견 수렴이 예상되는 만큼 미국이 협상에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까다로운 조건을 내건 것 같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국내 반도체 산업에 유리한 조건으로 이끌 수 있도록 대응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hdlim@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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