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비즈니스는 이제 별개의 주제가 아니라 하나다. (본사 DB)/그린포스트코리아
환경과 비즈니스는 이제 별개의 주제가 아니라 하나다. (본사 DB)/그린포스트코리아

요즘 ESG가 화두다. 기업들은 앞다퉈 ‘환경경영’을 내세우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찾겠다고 말한다. ESG가 단순히 윤리적 규범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이 사실 새로운 이슈는 아니다. 기자는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지난 2009년에도 그런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본 적 있다.

당시 기자는 그린포스트코리아가 아닌 다른 매거진 제작사 소속으로 독일과 스웨덴에 다녀왔다. 취재 후 한국에 돌아와 쓴 가사 제목은 ‘자전거로 그린 선진국을 가다’. 본지 입사 후 관련 내용을 기사에 소개한 바 있다.

◇ 자연 파괴하지 않고 환경 보호하겠다던 목소리

제목에서 드러나듯 환경 관련 취재였다. 태양광으로 전기를 만들어 사용하고 마을 도로에 자동차 운행을 금지한 독일 프라이부르그 보봉 생태마을에 다녀왔다. 북유럽 최대 공업도시로 과거 환경 파괴를 겪었으나 이후 탄소 배출 줄이고 쓰레기 재활용 등을 늘려 도시 이미지를 바꾼 스웨덴 예테보리도 다녀왔다. 당시 기자는 탄소배출 줄이는데 동참한다는 취지로 현지에서 공유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서울에는 ‘따릉이’가 아직 없던 시절이다.

지금은 신재생에너지나 탄소중립, 기후위기 같은 단어가 익숙하지만 그때는 조금 달랐다. 환경 문제가 중요하고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이야 그 시절에도 당연히 있었다. 실제로 그때도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단어가 재계와 산업계의 화두였다. 하지만 ‘친환경’에 대한 관심이 지금과 똑같지는 않았다, ESG라는 단어도 널리 알려지기 전이다.

당시 취재 떠나기 전 사전 자료조사를 하면서 마을 전체가 자동차 통행을 막고 태양광으로 전기를 쓰는 ‘솔라시티’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 기자에게는 매우 신선한 자극이었다.

당시 10년 동안 보봉 솔라시티에 살고 있던 주민 바스탄트씨는 기자가 집을 방문하자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환경을 보호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을 아이들 역시 느끼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 “환경 고려는 기업 윤리가 아니라 당연한 일”

그런데 당시 기자는 생태마을이 아니라 현지 기업을 방문한 후 더 많이 놀랐다. 생태 문제에 관심 많은 환경운동가나 집에서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사람들, 환경에 나쁜 영향 주지 않으려 애쓰고 생태계 문제에 깊은 관심 갖는 사람들 사례는 한국에서도 이미 취재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을 방문하고 나서는 새로운 자극을 받았다.

당시 기자는 밀레와 일렉트로룩스 본사를 방문했다. 유럽 대표 주방가전 기업과 생활가전 기업이었다. 출국 전 사전 조사를 통해 확인해본 바 당시 밀레는 산업폐기물 배출량을 줄이고 제품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75%를 난방용 에너지로 재활용하는 등 적극적인 ‘그린 비즈니스’ 정책을 시행 중이었다. 일렉트로룩스는 친환경 소재와 재활용 재료를 활용해 만드는 녹색 제품(Green Product) 개발에 열중하고 있었다. 물론 요즘 많은 기업들이 관심 가지고 실천도 하는 일들이다. 하지만 그때는 13년 전이다.

당시 일렉트로룩스 본사 환경감독관 브루토씨는 기자에게 “기후변화 등에 대처하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적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발적으로 실천하고 힘을 보탠다는 측면에서는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결국 기업과 국가”라고 말했다.

그는 “가전제품 겉면에 전력 소모량을 의무적으로 표시하는 것처럼 얼마나 친환경적으로 생산됐는지 소비자들이 알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 관계자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매출이나 홍보전략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친환경과 기후위기를 얘기하는 것이 신선했고 ‘환경감독관’이라는 임직원이 있는 것도 인상 깊었다.

이튿날 밀레 본사를 방문해 환경 사무관 베게트씨를 만났다. 당시 기자는 환경 분야에 투입하는 예산과 투자비 규모가 어느 정도냐고 질문했다. 그러자 그는 “환경 정책과 제품 개발을 별개의 건으로 분리해서 보는 것은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예산을 책정하는데 ‘환경 분야에 얼마’라는 식으로 딱 잘라 구분하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이 사무관은 밀레가 15년 전부터 그룹 본사에 환경 전문 담당 직원을 채용했다고 말하면서 “환경을 고려하는 것은 기업의 윤리가 아니라 매우 당연한 일”이라고도 말했다.

◇ 환경과 비즈니스를 하나의 얘기로 다루자는 목소리

그로부터 13년이 지났다. 지난 2020년 2월, 기자가 저 사례를 그린포스트코리아에 다시 소개하고도 또 2년이 지났다. 서울을 비롯한 국내 여러 도시에도 독일과 스웨덴처럼 공유자전거가 생겼고 각 국 정부와 주요 기업들은 앞다퉈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에너지를 모두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도 쏟아졌다. 주요 기업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ESG를 실천하겠다고 말하며 ESG 세가지 기둥 중 가장 앞에 나오는 게 바로 ‘환경’이다.

그러면 13년 전 해당 기업 환경 담당관들이 얘기한 가치가 지금 우리나라에서 잘 실천되고 있을까? 기업과 국가가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정말로 충분히 노력하고 있는지, 환경 정책이 기업 활동과 별개로 이뤄지는 ‘플러스 알파’식 숙제가 아니라 지구의 기업인으로서 당연히 하는 일이라고 여기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009년 당시 유럽 출장 주제는 ‘그린 비즈니스’였다. 환경을 보호하는 일반인 얘기보다는 환경 이슈를 다루고 산업적인 시선으로 연결하는 기업, 그런 흐름을 이끄는 정부 정책 얘기가 주된 화두로 담자는 목표도 있었다. 그린과 비즈니스라는 단어의 조합이 낯설었지만 알고보면 낯선 조합이 아니라는 마음을 취재 하면서 느꼈다.

이제는 대한민국에서도 그린과 비즈니스가 하나의 키워드가 되어야 한다. 2년 전인 지난 2020년, 환경부는 당시 장관 명의 신년사에서 "그동안 경제 성장의 부산물로서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해왔다면, 앞으로는 환경을 기본에 두고 성장을 도모하도록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제는 기후변화가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다. 널뛰는 날씨가 인류의 건강은 물론이고 생존까지 위협한다. 흔들리는 지속가능 시스템이 경제에 영향을 미쳐 ‘기후불황’이 닥친다는 경고도 들린다. 환경과 비즈니스는 이제 별개의 주제가 아니라 하나다.

ESG도 기업들이 ‘실천하면 좋은 착한 일’이 아니다. 반드시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숙제다. 환경보호라는 윤리적인 문제 때문만이 아니다. 그리고 환경을 보호하는 게 꼭 윤리적인 측면만의 문제인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10여년 전 또는 그 이전부터 실천하던 인류의 숙제다.

이제는 기후변화가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다. 널뛰는 날씨가 인류의 건강을 넘어 생존까지 위협하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지속가능 시스템이 실물 경제에 폭넓은 영향을 미쳐 ‘기후불황’이 닥칠 수 있다는 경고도 들린다.

같은 맥락에서, 지금은 지구온난화가 아니라 ‘지구가열화’에 대비해야 하는 시대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해 10월 ‘2021 기후 상태 보고서’를 통해 당시 기준 전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약 1.09도 높아졌다고 밝혔다. WMO는 “극단적인 기후 현상이 이제 새로운 표준”이라고 경고했다. 한파와 무더위, 산불과 큰 바람 등이 세계 곳곳을 덮친다. 뜨거워지는 지구 온도를 더 늦기 전에 억제해야 한다. 그런데 도대체 얼마나 억제해야 할까?

그린포스트코리아는 연중기획 <기후불황 막아라! 인류의 도전 0.99℃> 보도를 시작한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최대한 억제해 기후위기에서 벗어나고 기후불황을 막자는 취지다. 인류의 목표였던 1.5℃ 또는 이미 넘어섰다는 경고가 나오는 1℃보다 더 억제하려는 마음으로 환경 문제를 다루자는 취지다. 우리 아이들의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장 나의 생존과 경제활동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연중기획을 통해 기후위기가 얼마나 심각하고 평균기온 상승 억제가 왜 중요한지, 달라지는 날씨와 실물경제 사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고 어째서 기후불황이 닥치는지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와 기업 그리고 정부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짚어본다. 연재는  연말까지 진행한다. [편집자 주]

[연재계획]

PART 1 인류의 새 숙제 0.99℃

 달라진 날씨의 위협과 지구 운명 바꿀 온도

 기후위기 경고하는 세계의 리더와 학자들

 널뛰는 날씨에 달라진 작물 지도

 더워지는 지구가 장바구니 물가 바꿨다

 다시 꺼내보는 교토와 파리에서의 약속

PART 2 기후불황 파도가 세계를 흔든다

 기후불황의 서막 60조 달러(북극얼음)가 녹는다

 산불은 나무가 아니라 돈을 태운다

 환경 파괴·팬데믹·글로벌 경제의 나비효과

 굶주리는 세계...식량위기가 지구를 흔든다

 기후위기 경각심...당신은 얼마나 느끼나요?

 영국과 독일에서 배운다...환경으로 경제 잡기

 美 연준 기후위기 대응 전략 보니

 기후위기 대응이 대한민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환경·경제·기후 3대 위기 “대전환 절실”

 기후위기와 인플레이션의 관계

PART 3 호모플라스티쿠스 생존전략

 키워드로 정리한 0.99℃와 2050 탄소중립

 0.99프로젝트 1_하루에 한끼씩 버리겠습니까?

 0.99프로젝트 2_플라스틱 더미에 묻힌 인류

 0.99프로젝트 3_어디서 와서 무엇이 되어 어디로 가는가

 0.99프로젝트 4_버려진 제품에 흔들리는 미래

 0.99프로젝트 5_쓰레기의 88%를 줄여볼까?

 재활용의 기술...무엇을 버리고 어떤걸 재활용하나?

PART 4 탄소중립 실천 나선 기업들

 기후와 경제 두 마리 토끼 잡는 ESG

 ESG 점수 높으면 재무성과 더 좋을까? 

 플라스틱 줄이기 나서는 식음료 기업

 유해화학물질 저감 나선 화학업계

 녹색금융 확대 나선 금융계

 13년 전 유럽에서 본 친환경·ESG

 “석탄발전 줄여라” 자동차 기업들의 미래 약속

PART 5 에너지에서 찾는 0.99℃ 성공열쇠

 인류세 넘는 지구...에너지 사용 줄일 수 있을까?

 0.99 성공 열쇠, 에너지전환 플랜 짚어보니

 전기사용의 2가지 키워드. 효율과 전환

 신·재생에너지 둘러싼 논란과 진실

 탄소세 이슈로 읽는 환경경제

 인류 모두의 숙제...0.99℃를 위하여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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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10주년 #E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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