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택 편집인
이용택 편집인

문재인 정부시절 정은경 당시 질병관리청장은 ‘K방역의 영웅’으로 통했다. 여성으로서 초대 질병관리청장이 된 그는 당시 코로나19 방역정책 체계와 한계 등을 솔직하고 쉽게 설명해 국민들로부터 큰 신뢰를 얻었다.

퇴임 후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반대한 ‘백신인권행동’으로부터 고소를 당하기도 했지만 당시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에서는 그와 질병관리청을 지원하는 해시태그가 줄을 이었다. 대다수 국민은 그를 코로나19 방역을 책임지는 '코로나 사령관', 이른바 ‘코로나 차르(tsar·옛 러시아 황제)’로 인식했다.

그가 그런 평가를 받은 데는 두 가지 요인이 핵심 역할을 했다고 본다. 우선 헌신적인 모습에서 국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됐다. 코로나19 유행 초기 대구·경북 지역에서 확진자 수가 폭증했을 당시 머리 감는 시간도 아끼겠다며 숏컷을 감행하고, 점점 늘어가는 흰머리와 닳고 닳은 구두의 모습 등은 국민으로부터 많은 믿음과 지지를 이끌어냈다. 지금 그가 무엇을 하는 지 잘 알지 못하지만 그의 흰 머리와 초췌한 모습은 여전히 기억에 생생하다.

그가 코로나 차르로 인식될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은 문재인 전 대통령으로부터 무한신뢰를 받았기 때문 아닐까 싶다. 그가 초대 질병관리청장으로 임명될 때 문 전 대통령은 직접 임명장을 전달하기 위해 충북 청주시를 방문하기도 했다. 이런 구조는 지금 정권으로도 이어져 백경란 질병관리청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굳이 이미 떠난 전 정권 사람을 장황하게 거론한 것은 기후위기와 관련해서도 이런 체계를 갖춰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8월에 덮친 이번 물폭탄은 우리나라 장마시즌이 6월 말~7월 초라는 통념을 깼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8월에 덮친 이번 물폭탄은 우리나라 장마시즌이 6월 말~7월 초라는 통념을 깼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8월에 덮친 이번 물폭탄은 우리나라 장마시즌이 6월 말~7월 초라는 통념을 깼다. 더구나 하루 동안 쏟아진 비의 양이 1907년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115년 만의 최대였다고 한다. 서울 강남역 인근 도로가 바다로 변하면서 차량 수천대가 그대로 물에 잠겼고 10여명의 사상자까지 발생했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들은 지난 2012년 가수 싸이의 히트곡인 '강남 스타일'에 등장하는 부촌 강남구에서의 피해상황과 영화 ‘기생충’으로 잘 알려진 한국만의 독특한 반지하 주거에서 나온 사망자 소식을 잇따라 보도했다. 

문제는 이 같은 기상이변이 앞으로 더 잦아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10일 열린 '폭우 피해 상황 점검회의'에서 “이번 폭우는 기상관측 이래 115년 만에 최대 폭우로, 분명히 기상이변"이라며 "그러나 더이상 이런 기상이변은 이변이라 할 수 없다. 언제든지 최대, 최고치를 기록할 수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문제를 파악하고 진단했으면 이에 맞는 대책이 만들어져야 한다. 지금 겪고 있는 물폭탄 피해보다 더 큰 위기가 곧 닥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시급히 체계적인 대응체제를 갖출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기후 차르’를 임명하는 게 급선무다. 대통령, 국무총리, 환경부, 행정안전부, 기상청 등 기존 책임자와 관련부서도 있지만 맡고 있는 분야가 많아 나라 전체의 기후위기나 기상이변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힘들다. 질병관리청장이 K방역의 책임자로 인식되고 있는 것처럼 기후위기 대응에도 이런 책임과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 기후위기에 관한한 국가전체를 다루어야 하는 만큼 권한이 막강해야 함은 물론이다. 

지난 대선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기후에너지부’신설을 주창했던 것도 같은 인식에서 비롯됐을 것이라 믿는다. 이 정권에서 이 같은 부서를 신설하지는 않더라도 차르, 즉 책임자 임명은 시급하다. 

미국 역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기후위기 대응 외교 및 국제협력에 전권을 부여한 기후특사를 임명하고 백악관내 국내기후정책부를 신설했다. 이를 단지 대선당시 경쟁후보들의 주장이나 반대당, 즉 좌파 정부의 행태라고 치부해 무시할 일이 아니다. 물론 현 정부에도 이런 조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실내 기후환경비서관이 있고, 관계부처에도 비슷한 업무를 맡는 조직이 있겠지만 이들이 무슨 일을 하고 어떤 권한과 역할이 있는 지 제대로 아는 국민은 거의 없다. 

지금은 '기후변화(climate change)'가 아닌 '기후위기 (climate crisis)'의 시대다. 결코 좌파, 우파의 문제가 아니고 정쟁의 대상도 아니다. 성큼 성큼 더 큰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미래세대의 위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위기다. 이번에 수도권을 강타한 물폭탄이 이를 말해준다. 이 위기는 한순간에 코로나19보다 더 큰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최악을 염두에 두고 대응하라”는 윤 대통령의 주문이 제대로 실행되려면 좌우 관계없이 좋은 정책이라면 받아들여 현재의 재난관리 체계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조정해야 한다. 그 실천방안으로 우선 추진되어야 할 것은 코로나19 방역대책을 생각하면 정은경 전 청장이 떠오르는 것처럼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해서도 믿고 따를 수 있는 책임자 선정이다.      

ytlee@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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