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이다. 이제는 거의 모든 것이 스마트폰으로 통한다. 나를 세상과 이어주는 이 비싼 물건을 구매하는 데에 주저함이 있을 순 없다. 새로운 제품이 출시되고 쏟아지는 광고를 보고 있노라면 어느덧 내 손 안에 최신상품이 들려져 있곤 한다. 약정 기간(2~3년)이 있어 그나마 구매욕을 억누를 수 있다.

스마트폰을 교체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다. 가장 일반적으로 고장이 나고 수명을 다해 교체하기도 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예전에 사용하던 구식 ‘휴대폰’을 점차 신식 ‘스마트폰’으로 바꿔 오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제품의 성능 차이보다는 선호하는 기업에서 출시한 ‘신상’ 광고를 보고 유행을 따라 구매하기도 한다.

스마트폰 교체 주기가 이전에 비해 다소 길어졌다고는 하지만 평균 휴대폰 교체 주기가 33개월이라고 하니 약 3년마다 스마트폰 1개씩 폐기되는 셈이다. 방구석 전자제품 폐기 상자 안에 쌓여 있는 휴대폰이 몇 개인지 세보면 제시된 통계가 거의 들어맞는다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스마트폰을 포함해 사용하지 않고 집에 방치해 놓고 있는 전자제품이 1인당 매년 4~5kg에 이른다고 한다.

전 세계로 시야를 넓혀보면, 2019년에만 전 세계적으로 전자제품 폐기물이 5,360만톤 발생했고, 이 중 17.4%만이 재활용됐다고 한다. 전체 폐기물 가운데 한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1.5% 수준이지만 한 해 동안 1인당 발생량은 15.8kg으로 세계 평균의 두 배가 넘는다. 2021년에는 전기전자제품 폐기물이 5,740만톤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고, 한 해 버려지는 폐기물의 양이 만리장성(약 5,300만톤)을 쌓고도 남는다는 계산도 나온다. 또한 현재 추세라면 2030년엔 폐기물이 7,500만톤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통계를 접하면 먼저 재활용을 생각하게 된다. 휴대폰 100만대에 금 24㎏, 구리 1만 6,000㎏, 은 350㎏, 팔라듐 14㎏이 포함돼 있다고 하니 재활용의 중요성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2019년 한 해에만 최소 570억 달러(약 68조원) 가치에 해당하는 금속 자원이 버려지거나 소각된 것으로 추정한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재활용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유럽환경국(EEB)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의 모든 스마트폰의 수명을 1년 연장하면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매년 210만톤 감소시킬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스마트폰과 노트북, 세탁기, 진공청소기 등의 수명을 5년 연장하면 2030년까지 매년 거의 1,000만톤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1년 동안 자동차 500만대를 도로에서 없애는 효과와 같다고 한다.

이에 따라 탄소중립을 위한 ‘수리할 권리(right to repair)’가 미국과 EU을 중심으로 주목받고 있다. EU는 2020년 3월에 수리할 권리를 보장하는 법을 토대로 한 계획을 시행했고, 미국은 지난해 7월 수리할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이 담긴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주요 내용으로 일정 기간 부품 단종을 금지하고, 사설 수리센터를 통한 수리를 허가하여 소비자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한편, 자원 절약을 통해 탄소 중립 정책에도 기여하자는 취지다. 

국내에서는 수리할 권리에 대한 관심과 정책 논의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쓰레기 발생량을 줄여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지난 대선 과정에서 소소하지만 확실한 공약으로 소비자 수리권 확대가 제시되면서 수리할 권리에 관심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국회에서 ‘수리할 권리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소비자에게 구입한 제품에 대한 수리할 권리를 부여하고, 사업자에게는 소비자 개인 능력으로 수리할 수 있게 제품을 설계하도록 하고 수리 장비·부품에 대한 쉬운 접근을 보장하도록 했다. 정부에게는 환경부를 주무 부처로 해 관리·감독할 책임을 부여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도 대선 후보들에게 ‘생활밀착형 5대 소비자 정책’을 제안하면서 ‘오래 사용할 권리·수리받을 권리 보장’을 강조한 바 있다. 협의회는 “기업에서 새로운 상품의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상품을 제작할 때 일부러 상품의 개발을 진부화하거나, 노후화되도록 하는 계획적 진부화(planned obsolescence) 현상으로 소비자가 스마트폰 등 제품을 오래 사용할 수 없게 되거나 수리를 받을 수 없어 이를 폐기물로 처리하는 과정은 환경오염을 발생시키고 소비자의 비용을 증가시킨다”고 지적했다.

‘계획적 진부화’는 오랜 역사를 지닌다. 프랑스 탈성장론의 대표적 사상가로 평가받는 경제학자 세르주 라투슈는 ‘낭비 사회를 넘어서-계획적 진부화라는 광기에 관한 보고서’ 책에서 전구 제조업체 카르텔의 담합을 계획적 진부화의 역사상 가장 기념비적 사건으로 평가한다. 

1881년 에디슨이 만든 최초의 전구는 수명이 1500시간에 달했고, 1920년대 생산된 전구의 평균 수명은 2500시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긴 제품 수명은 제너럴 일렉트릭사 같은 대기업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1924년 12월 전구 수명을 결정하는 회의가 열렸고 전구의 수명을 1000시간 이하로 제한하자는 목표가 정해졌다고 한다. 제품 수명이 기업의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례로는 올이 나가지 않는 스타킹과 말이 손상되지 않은 면도날의 개발과 퇴출 등이 있고, 최근 사례로는 애플의 아이팟을 들 수 있다. 2003년 12월 애플을 상대로 한 집단 소송이 제기됐다. 내용은 제조단계에서 이미 수명이 18개월로 제한된 아이팟의 배터리는 수리가 불가능한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1923년 제너럴 모터스사는 포드사와 경쟁하기 위해 쉐보레 모델을 출시하면서 기술적 우위보다는 겉모습에 치중했다. 그리고 광고를 통해 소비자를 자극함으로써 2~3년에 한 번씩 다른 모델로 차를 바꾸도록 설득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세르주 라투슈는 이를 진부화의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평가한다. 현재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고 있는 광고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탄소중립과 ESG경영이 최대 화두인 현재 시점에서 ‘수리할 권리’는 어쩌면 소소해 보이지만 확실한 탄소중립 전략일지도 모른다. 

smkwo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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