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멘트]
급발진으로 추정되는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속 시원하게 사고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건은 대부분 운전자 과실로 결론이 납니다. 하지만 이 결론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자동차 천만시대, 누구나 급발진의 피해자가, 또는 가해자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리포트]
지난 2010년 3월 26일, 김모 씨는 출고한 지 5개월 된 기아 오피러스 차량에 지인 두 명을 태우고 경기도 포천에 있는 절에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평소 자주 다니던 길에서 김씨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속력을 낸 차량을 주체하지 못한 채 사고를 냅니다.

CCTV에 포착된 화면으로 추정한 속도는 최소 시속 220km 이상, 현장이 S자 1차선 국도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운전자 과실로 보기에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일단 이 길에서 비슷한 사고가 있었을까, 인근 주민들은 전례가 없다고 증언합니다.

이병훈/ 인근 주민

당시 차량은 자동차공업소 입구에 위치한 옹벽을 들이 받고도 멈추지 않은 채 약 42미터를 날아 풀숲으로 떨어졌습니다.
피해자 가족들은 급발진이 아니고서는 이 현상이 설명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윤두현/ 오피러스 사고 피해자 남편

올해 3월 2일, 출고한 지 얼마 안 된 기아 스포티지R을 몰던 이조엽 씨도 비슷한 일을 당할 뻔 했습니다.

집 인근 골목에서 운전을 하던 이씨는 우회전과 함께 갑자기 차량이 급발진하면서 가게를 들이받게 됩니다.

동승했던 임신 9개월 아내와 이씨는 경미한 부상으로 끝났지만, 충돌 후에도 무섭게 회전하는 바퀴를 봤던 당시를 회상하면 몸서리를 치게 됩니다.

이조엽/ 기아 스포티지R 사고 피해자

두 사건 모두 급발진으로 의심되지만 사고 이후의 전개 과정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오피러스 급발진 의심 사고에선 동승했던 일행 한 명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김씨는 현재 의정부지방법원에 형사 고발돼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운전자 본인도 이 사고로 중상을 입었고 머리를 다쳐 기억을 잃었지만 현행법상 피의자 신분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급발진으로 추정되는 사고에서 예기치 않은 제2의 피해자가 발생하면 운전자는 순식간에 가해자가 됩니다.

사건 당시 경찰 담당자(녹취)

상황은 김씨에게 유리하지만은 않습니다.

지난 2008년 최초로 무죄 판결을 받은 이후 지금까지 급발진 추정 상해 사건에서 무죄 판결이 난 것은 단 두 건.

이처럼 과실이 없었다는 것을 입증하기 어려운 이유는 기술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차량 결함이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하는 데 있습니다.

강신업 변호사/ 급발진 재판 최초 승소 변호사

현재 김씨의 형사소송 판결은 유보돼 있습니다.

김씨 가족이 기아자동차 측에 제기한 민사소송 결과를 보고 판결을 내리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김씨는 2011년 8월 기아자동차를 상대로 차량 결함에 의한 사고라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습니다.

특히 이번 민사소송에는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사고 전 5초간의 기록이 담긴 사고기록장치, EDR의 증거 채택 여붑니다.

김재용 변호사/ 원고 대리인

이에 피고인 기아자동차 측은 해당 차량에는 EDR이 없기 때문에 증거 자체가 없다고 반박합니다.

그와 함께 급발진은 절대 발생할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합니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녹취)

하지만 EDR 문제가 거론된 이후 의문스러운 점이 발견됩니다.

원고의 요청으로 현대기아차 측이 정부에 보낸 서류에 따르면 분명히 사고기록을 첨부파일로 제출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다만 대외비 처리를 부탁한 점을 미루어 사고기록은 있다는 얘기로 풀이됩니다.

게다가 기아자동차의 영문 정비 매뉴얼을 보면 장착된 EDR 장비 사례로 오피러스 사진을 들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해당 오피러스 차량에만 EDR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설명합니다.

박병일/ 국내 자동차 1호 명장

결국 이 사건을 비롯한 많은 급발진 피해자들에게 EDR 공개는 급발진 여부를 밝혀 주는 단서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입니다.

하지만 EDR을 통해 급발진 여부를 증명하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습니다.

급발진 자체가 있다는 가정 하에 원인을 밝히는 것도 중요합니다.

언제 급발진이 일어나 누가 피해를 입게 될지, 자동차 천만대 시대의 우리나라 국민들 누구 하나 장담할 수 없는 현실 때문입니다.

제조사의 무결점 주장이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토해양부 급발진 합동조사반의 조사처럼 기계적 결함은 없다는 결론에 공감이 가지 않는 이윱니다.

강신업 변호사

최근 국회에서는 EDR 공개 의무화 법안을 발의하는 등 급발진 사고로 인한 또 다른 피해자를 막기 위한 방안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후 처리 문제와 함께 급발진 현상 자체를 막을 수 있는 기술적인 방안에 대한 검증과 논의도 보다 활발하게 전개돼야 할 시점입니다.

환경TV 신준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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