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틀렸다
[기자수첩]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틀렸다
  • 이한 기자
  • 승인 2021.01.14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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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시대에 필요한 기업의 환경혁신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도둑고양이’라는 말이 있다. 포털사이트 사전을 검색해보니 ‘사람이 기르거나 돌보지 않는 고양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그런데, 사람이 기르지 않는 고양이를 왜 ‘도둑’이라고 불렀을까. 고양이가 뭘 훔치기라도 했을까?

도둑이라는 어감은 왠지 부정적으로 들린다. 그래서일까. 이런 표현에 대한 지적이 과거에도 있었다. 정호승 시인은 자신의 시에서 “고양이가 집을 나갔다. 도둑고양이가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나는 도둑질을 가르친 적이 없다. (중략) 그들에겐 자연스러운 먹이 취득행위일 뿐”이라고 썼다. 뭘 훔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특성인 야성과 독립성에 충실한 고양이의 모습을 설명한 작품이다.

요즘은 그런 고양이들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길에서 산다는 의미로 ‘길고양이’라고 부르자는 목소리다. 실제로 서대문구 길고양이 동행본부(서동행)는 포털사이트에서 도둑고양이라는 설명 단어를 길고양이로 바꾸는 활동을 벌였다. 이와 더불어 국내 여러 출판사에 직접 연락해 stray(길을 잃은), alley(골목), feral(돌아다니며 사는) wild(야생의) 등 그동안 도둑고양이로 ‘오역’된 영문 표현들을 바로잡아달라고 요청했다.

서동행에 따르면 능률, YBM, 옥스퍼드, 슈프림, 동아, 그리고 교학사에서 해당 단어를 흔쾌히 수정했단다. 도둑고양이가 아니라 야생에 사는 고양이, 길을 잃었거나 골목을 돌아다니며 사는 고양이라는 의미다. 어떤가. 훨씬 더 정확한 의미로 느껴지지 않는가?

말하자면, 도둑고양이는 그때는 맞는(?) 단어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바꿔 말하면 그때는 (옳은 게 아니라) 잘 몰랐다고 얘기하는 게 좋겠다. 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고 동물을 보는 인류의 시선이 달라진 덕에 단어가 변했다.

이와 비슷한 예가 있다. ‘벙어리장갑’이다. 수년 전부터 이 장갑을 ‘손모아장갑’이라고 부르자는 목소리가 있었다. 벙어리가 언어 장애인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라는 이유에서다. 지난 2016년에는 가수 솔비가 장애인 인식 개선 활동을 진행하면서 음원 ‘손모아장갑’을 발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도둑고양이 대신 길고양이, 벙어리장갑 말고 손모아장갑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떤 이슈나 사물에 대한 사람들의 달라진 인식을 느낀다. ‘내가 사는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는구나’ 싶은 마음도 든다. 늦었지만, 시간이 필요했던 일이다.

◇ 흐른 시간만큼, 앞으로 더 변해야 하는 것

기자는 X세대다. 중학교 시절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 들으며 회오리춤을 췄다. 고등학교때는 삐삐가 없으면 외출을 못했다. 대학교 1학년때는 시티폰으로 전화를 걸어봤다. 휴대전화를 엄지로 열고 약지로 닫아본 적도 있다. 아이폰과 카톡은 서른을 훌쩍 넘기고 나서야 써봤다. 과거의 기자는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새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젊은 세대였고 시간이 흘러 지금은 기성세대가 됐다.

그 기간 동안 많은 게 달라졌다. 사람들은 이제 ‘도둑고양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기사 읽겠다고 굳이 데스크탑 PC를 켜지 않으며 젊은 세대들은 (심지어 기자도) TV조차 잘 안 본다. 7번과 9번이 KBS, 11번이 MBC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 기자는 최근 ‘윤스테이’에 푹 빠졌는데 그 채널을 보려면 리모컨에서 숫자를 뭘 눌러야 하는지는 모른다.

달라지는 것이 많은 세상이다. 그렇다면 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얼마나 변했을까. 지난 1년 동안 관련 내용을 취재해 본 경험에 따르면, 환경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과거보다 확실히 늘었다.

사람들은 ‘버리는 것’에 대해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쓰는 물건이 어디에 담겼는지도 관심을 둔다. 예전에는 그 물건을 내가 먹거나 몸에 발라도 안전한지 신경 쓰는 사람이 많았으나 요즘은 다 쓰고 버려도 그 물건이 지구에 영향을 안 미칠 수는 없는지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동료 기자들도 환경 관련 기삿거리를 찾겠다고 난리고, 최근 만나본 출판사의 단행본 편집자들도 “요즘은 환경이 유행이잖아요”라고 말한다.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다. 내가 일하는 분야가 사람들의 관심이 많다는 건 컨텐츠를 생산하는 사람으로서 유리하고 즐거운 일이어서다. 그런데, ‘이게 다 무슨 의미인가’ 싶을 때가 있다. 내가 사고 쓰고 버리는 물건들을 곰곰이 생각할 때 특히 그렇다.

버리기 편한, 그러니까 깨끗이 한번 헹궈 버리기만 해도 재활용이 잘 되는 제품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지난주에는 심한 장염에 걸려 3일 동안 죽만 먹었는데, 포장시켜 먹은 죽은 그릇과 뚜껑 소재가 서로 달랐다. 환경부에서는 플라스틱을 재질별로 모아서 버리랬는데, 음료수 PET병은 라벨도 잘 안 떼어지고 입구 부분은 다른 소재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제대로 버리려면 날카로운 칼이 필요했다.

주요 대기업들이 앞다퉈 탄소중립과 ESG를 말하는 시대다. 재활용 방법을 알려주는 기사가 포털사이트 ‘많이 본 뉴스’ 상위권에 단골 등장하는 시대다. 낙동강이 페놀에 오염됐다며 사람들이 충격에 빠지던 시절이 이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도둑고양이라는 말을 길고양이로 바꿔 부르는 시대, 기업에 투자할 때 매출과 이익 말고 그 기업이 얼마나 환경적인지도 함께 고려하자는 시대다.

하지만, 기업들이 만드는 제품은 여전히 소비자의 눈높이에 다다르지 못하고 있다. 물론 과거보다는 많이 나아졌다. 포장재를 줄이려는 노력, 재활용이 잘 되는 소재를 사용하려는 노력들이 분명히 이어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소비자들의 달라진 눈높이와 인식을 앞서가지는 못하고 있다.

기업이 제품을 잘 만들면, 소비자는 그걸 편하게 쓰기만 하면 된다. 품질을 좋게 만들고 적당한 가격을 유지하면서 환경적인 영향까지 고려하는 건 매우 어려운 숙제지만, 그걸 해내는 게 바로 기업에게 필요한 ‘혁신’이고 ‘도전’이다.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하는 새로운 혁신 말이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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