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비전 2030 발표 1주년...“비메모리 시장 적극 공략”
2분기 이후 행보 눈길, ‘산업의 쌀’ 앞세워 ‘포스트 코로나’ 이끌까?

코로나19 여파로 재계와 산업계 전반에 위기감이 감돕니다. 세계 곳곳의 공장과 상점이 문을 닫고 소비자들의 생활 습관이 변하면서 기업들은 줄줄이 타격을 입었습니다.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은 또 한 번의 시련입니다. 대한민국은 이 위기에서 슬기롭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절망할 필요 없습니다. 난세에는 영웅이 등장합니다. 코로나 최일선에서 밤낮으로 바이러스와 싸운 의료진의 노력이 빛을 본 것처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경제위기에 굽히지 않고 정면으로 맞설 또 다른 영웅들이 있습니다.

동방의 작은 나라, 내수 시장 규모가 크지 않은 국가지만 우리에게는 세계 시장을 이끌 여러 기술과 앞선 제품이 있습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던 선배,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선배가 지금은 없지만, 그들 못잖은 후배 기업인들이 앞선 세대가 일군 땅에서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떨어진 ‘기운’을 확실하게 ‘업’시켜 줄 경제 주역들, 국내 대표 기업과 CEO의 ‘포스트 코로나 전략’을 연재합니다. 첫 번째 순서는 코스피 대장주 삼성전자입니다. [편집자 주]

동학개미운동은 결국 삼성전자를 향한 일반 국민의 기대감 또는 믿음이 얼마나 단단한지 보여주는 일화다. 이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삼성전자와 이재용 부회장의 숙제다. (삼성전자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동학개미운동은 결국 삼성전자를 향한 일반 국민의 기대감 또는 믿음이 얼마나 단단한지 보여주는 일화다. 이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삼성전자와 이재용 부회장의 숙제다. (삼성전자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한지 오늘로 딱 1년째다. 최근 삼성전자는 주식시장에서 국내 개인투자자들의 ‘몰표’를 받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하락장에서도 ‘대장주’답게 버텨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를 무기 삼아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최근 3개월 동안 삼성전자 주주 100만 명이 늘었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국내 증시가 출렁이자 개인투자자들이 코스피 대장주 삼성전자로 몰린 까닭이다. 외국인이 팔아 치운 물량을 개인들이 힘겹게 받아내는 모습을 두고 일각에서는 ‘동학개미운동’이라고 말했다.

물론, 동학농민운동과는 궤가 다르다. 투자자들은 애국심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사지 않았다. 나라가 어려우니 삼성이 힘을 내서 국난 극복에 앞장서 달라는 마음으로 매수 주문을 넣은 것도 아니다.

개미들은 ‘하락장을 견뎌내면 V자 반등을 이룰 것’이라는 기대감에 지갑을 열었다.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당시에도 삼성전자 주가는 크게 하락한 후 그보다 더 상승했다’는 경험을 믿고 투자에 나섰다. 쉽게 말하면, ‘돈을 벌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했다는 의미다.

바꿔 말하면, 동학개미운동은 결국 삼성전자를 향한 일반 국민의 기대감 또는 믿음이 얼마나 단단한지 보여주는 일화다. 실제로 최근 삼성전자 주식을 샀다는 개인투자자 안모씨(40)는 “나라가 망하지 않는 이상 지금은 어렵지만 그래도 삼성전자라면 다시 오르겠지 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삼성이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최근의 경제위기 속에 소비자들이 삼성전자에게 가지고 있는 기대감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삼성전자와 이재용 부회장의 숙제다.

◇ 반도체 비전 2030 발표 1주년...“비메모리 시장 적극 공략”

4월 24일은 삼성전자에게 의미가 있는 날이다. 이날은 ‘반도체 비전 2030’ 발표 1주년이다. 반도체 비전 2030은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해 오늘 내놓은 삼성전자의 핵심 성장 비전이다. 오는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분야에 133조 원을 투자하고 1만 5000명을 채용해 기존 메모리반도체처럼 비메모리 반도체에서도 1위에 오른다”는 것이 골자다.

발표 당시 재계에서는 지난 2009년 이건희 회장이 창립 40주년을 맞아 내놨던 '비전 2020‘과 비교하며 “삼성전자 새로운 50년의 비전”이라고 평가했다. 

반도체는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메모리반도체와, 전기적 정보를 연산하거나 처리하는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 반도체)로 나뉜다. 삼성전자는 과거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큰 성과를 거둬왔다. 그러나 메모리 반도체는 가격 변동이 심하고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규모가 약 30% 정도에 불과하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 문제를 극복해 비메모리 반도체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겠다는 것이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전자의 미래 비전이다. 비메모리 시장은 PC 등 CPU와 스마트폰용 어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이미지 센서 시장으로 나뉜다. 인텔과 소니 등 글로벌 기업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이들의 계획은 잘 실행되고 있을까. 삼성전자의 반도체 행보를 짚어보기에 앞서, 기억의 추를 지난해 6월로 잠시 돌려보자. 예전 얘기를 먼저 꺼내는 이유는 최근의 반도체 행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년부터의 과정을 돌아봐야 해서다.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현장. (삼성전자 제공) 2019.04.24/그린포스트코리아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분야에 133조 원을 투자하고 1만 5000명을 채용해 기존 메모리반도체처럼 비메모리 반도체에서 1위에 오른다는 계획을 세웠다.  사진은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현장 모습 (삼성전자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이재용 부회장이 카메라 앞에 적극적으로 나선 까닭?

지난해 6월 1일, 이재용 부회장이 주요 계열사 사장단을 주말에 긴급 소집해 4시간의 마라톤 회의를 주관해 화제가 됐다. 당시 이 부회장은 “급변하는 환경에서도 삼성이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 “지난 50년 동안 지속적인 혁신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 등을 강조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이 사실을 언론에 적극적으로 알렸다.

당시 삼성전자와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풀어야 숙제들이 몇 가지 있었다. 미국과 중국의 통상전쟁과 이에 따른 화웨이 사태,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시장 둔화 등의 이슈가 산적해 있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관련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는 가운데, 국정농단 사태 관련 대법원 판결을 앞두는 등, 기업과 부회장을 둘러싼 여러 이슈가 얽혀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 그보다 더 과거의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의 행보를 언론에 알리는데 소극적이었다. 지난해 초순까지만 해도 삼성전자는 ‘일상적인 경영 일정을 일일이 언론에 공개할 필요 없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그러나 지난해 반도체 비전 선포 후 5~6월 전후로 이 부회장의 일정이 언론에 자주 공개되기 시작했다. 부회장이 직접 현장을 방문한 사진, 현장에서 임직원들과 나눈 대화가 일부 기자들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을 둘러싼 검찰 수사와 대법원 판결 등을 앞두고 전략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경제위기 속에서 이 부회장의 리더십이 그룹 활동에 도움이 된다는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것’ 이라는 시선이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적극적인 외부 행보가 단순한 ‘이미지메이킹’은 아니었다고 본다. 경영상 변수가 산적한 시점이었고, 과거 그룹 전반의 전략을 담당했던 미래전략실은 이미 해체된 상태에서 총수의 경영 행보가 사업적으로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

◇ 수출 규제 변수에 업황 둔화...쉽지 않았던 지난 1년

실제로 삼성전자는 반도체 비전 선포 이후 몇 차례 위기와 마주했다. 앞서 언급한 화웨이 사태 등에 이어 지난 여름에는 일본발 수출규제 이슈가 변수로 떠올랐다. 일본 정부가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길을 막으면서 삼성전자는 공급망에 차질이 생길 위기를 맞았다.

당시 이 부회장은 곧바로 일본으로 떠나 현지 업계 관계자들을 직접 만났고 계열사 경영진과 잇따라 만나며 대응 방안을 모색했다. 이를 통해 공급망 다변화와 국산화 등 영향을 최소화 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왔다. 이후 반도체 업황 둔화에 이어 코로나19 사태에 이르기까지, 최근 반도체 시장에 이어진 위기도 이들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었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메모리 분야 투자를 전년 대비 줄이고 비메모리 분야에는 22조원을 투자했다. 비메모리 분야에서의 설비 증설 등으로 투자가 늘었고 올해 역시 지난해와 유사한 흐름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들어서는 3나노미터 초미세공정 기술을 개발하고 2월에는 경기 화성사업장에 극자외선(EUV) 전용인 V1 라인을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이를 통해 지난 3월에는 업계 최초로 EUV 공정을 적용한 D램 양산 체제도 갖췄다. 삼성전자는 최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와 이미지센서 사업을 강화하고 전문인력 보강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은 역시 적극적인 현장 행보를 이어갔다. 2020년 첫 공식 일정은 화성사업장 반도체 연구소였고, 2월에도 다시 화성사업장을 방문해 극자외선 전용 생산라인을 둘러봤다. 3월에는 삼성종합기술원을 방문해 차세대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연구개발 현황을 점검했다. 올해 들어 6차례 현장 행보 중 3차례가 반도체 연구개발·생산과 관련됐다.

삼성전자는 한국 시스템 반도체 산업생태계 강화 차원에서 국내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업체도 지원하고 있다. 파운드리 설계 IP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국내 중소, 중견 팹리스 업체를 위한 상생펀드에도 500억원을 출자했다.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다. 특히 전자 산업에서는 반도체가 쓰이지 않는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삼성전자는 반도체를 무기로 '포스트 코로나' 파도를 넘을 수 있을까? (삼성전자 뉴스룸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다. 특히 전자 산업에서는 반도체가 쓰이지 않는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삼성전자는 반도체를 무기로 '포스트 코로나' 파도를 넘을 수 있을까? 일단 1분기는 한 숨을 돌렸다. (삼성전자 뉴스룸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코로나19 위기 속 반도체 부문 선전, 1분기 실적 양호

최근의 성과는 어땠을까. 삼성전자는 지난 4월 7일 올해 1분기 잠정실적이 매출 55조원에 영업이익 6.4조원 규모라고 밝혔다. 전기 대비 매출은 8.15%, 영업이익은 10.61% 감소했고,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4.98%, 영업이익은 2.73% 증가한 수치다.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 비율인 영업이익률은 11.6%로 2016년 3분기(10.9%) 이후 가장 낮았다. 다만 이 실적은 최근 코로나19 영향으로 증권가에서 실적 전망치를 낮춘 것에 비해서는 양호한 것으로 분석됐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잠정실적 발표 이전 1개월간 증권사들이 제시한 전망치 평균(컨센서스)은 매출 54조 7천억원에 영업이익 6조 256억원 규모였다.

삼성전자는 이날 부문별 상세실적은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반도체 부문에서 선전하고 스마트폰 부문에서도 선방했을 것으로 증권가에서는 전망했다. 반도체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생산에 별다른 차질이 없었고 비대면 업종이 상대적인 호황을 누리면서 서버향 수요가 늘어난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오는 29일 1분기 확정 실적과 부문별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다.

메리츠종금증권 김선우 연구원은 당시 실적발표에 대해 “영업이익의 경우 최근 낮아진 시장 기대치를 상회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코로나19 관련 전방수요 둔화가 세트사업 부문에만 제한적으로 작용했을 뿐, 반도체 부문의 구조적 개선세가 예상을 능가하며 호실적을 이끌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 2분기 이후가 숙제...‘산업의 쌀’ 앞세워 ‘코로나 파도’ 넘을까?

확정 실적에 따라 정확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으나, 1분기에는 ‘선방’했다는 평가가 우세한 상황.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영향이 3월 이후 본격적으로 반영될 것이라는 근거로 2분기 실적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반도체 관련 서버 수요는 여전하지만 글로벌 공장 셧다운과 미국 유럽 등의 유통망 중단 등이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유진투자증권 이승우 연구원은 “하반기까지 반도체 가격 강세를 낙관하기는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 “언택트 확산에 따른 서버 수요의 장기 성장 기대감은 크지만, 초유의 불안정한 매크로 상황을 감안할 때 일반 엔터프라이즈 레벨의 하반기 서버 투자 확대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이 연구원은 “2020년 실적에 대해 시장 평균보다 보수적 전망을 제시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다만 “압도적 기술력과 막대한 보유 현금을 감안할 때, 위기는 삼성전자에게 있어 초격차 확대의 기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긍정적인 전망도 함께 내놓았다.

IBK투자증권 김운호 연구원은 “반도체는 서버 중심 수요가 시장을 견인 중이며 모바일이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반도체 DRAM은 예상보다 높았고 낸드 ASP는 기대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망했다.

업계에서는 반도체를 ‘산업의 쌀’이라고 부른다.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폭넓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지난해 여름 처음 수출 규제에 돌입했던 품목들도 삼성이 대규모 투자를 공언하며 시장 확보에 나선 시스템반도체를 노렸다. 반도체 시장의 미래를 노린 셈이다. 바꿔 말하면, 지난 여름 발발한 한일 경제전쟁과 앞으로 이어질 ‘포스트 코로나’ 경제 위기를 효과적으로 극복할 삼성전자의 무기는 반도체다.

삼성전자 2020년 임원 인사에서는 파운드리 사업부에서 두 명의 부사장 승진자가 나왔다. 점유율 1위 업체인 대만 TSMC를 따라잡기 위해 제조와 공정 부문에서 인적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는 조치로 풀이된다. 파운드리 사업부는 비메모리 반도체의 축 중 하나다. 삼성전자는 반도체를 앞세워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업계 최초로 D램에 EUV(극자외선노광장치) 공정을 적용해 양산 체제를 갖췄다. 사진은 삼성전자 DS부문 V1라인
삼성전자는 업계 최초로 D램에 EUV(극자외선노광장치) 공정을 적용해 양산 체제를 갖추는 등 적극적인 투자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삼성전자 DS부문 V1라인 (본사 DB)/그린포스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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