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상 이유로 대금 깎아…하도급업체에게 구조조정 압박도
하도급업체 최대 416일 동안 계약 내용‧대금도 몰라
직원들 동원해 조직적으로 숨겨

 
현대중공업 조선소 전경(현대중공업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현대중공업 조선소 전경(현대중공업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김동수 기자] 하도급업체에게 지급해야할 대금을 일명 ‘단가 후려치기’ 한 현대중공업이 200여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현대중공업은 경영 상황을 이유로 대금을 일률적으로 깎고 심지어 제조원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하도급 대금을 결정했다. 심지어 컴퓨터를 빼돌리는 등 중요자료를 조직적으로 숨겨 조사를 방해한 행위도 적발돼 억대 과태료도 함께 물게 됐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하도급 업체에 선박‧해양플랜트‧엔진 제조를 위탁하면서 하도급 대금을 부당하게 결정한 현대중공업에 과징금 208억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18일 밝혔다. 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은 시정명령을 내리고 법인을 검찰에 고발했다. 또 한국조선해양에 조사 방해 혐의를 물어 과태료(법인 1억원, 임직원 2500만원)을 부과했다.

현대중공업에 내려진 과징금은 지난해 12월 공정위가 대우조선해양에 부과한 과징금 108억원의 두 배에 가까운 수준으로 하도급법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공정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2015년 12월 선박 엔진 관련 부품을 납품하는 하도급업체를 대상으로 간담회를 열어 2016년 상반기에 일률적으로 단가 10%를 깎아 줄 것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단가 인하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강제적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압박했고 이듬해 상반기 48개 하도급 업체를 대상으로 총 51억원을 깎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은 2014~2018년까지 207개 사내하도급업체에게 4만 8529건의 선박 및 해양플랜트 제조 작업을 위탁하면서 작업 내용 및 하도급대금 등 주요 사항을 기재한 계약서를 작업이 시작된 후(최대 416일)에 발급했다. 하도급업체는 구체적인 작업 내용과 대금을 모르는 상태에서 작업을 시작해야 했다. 사후에 현대중공업이 일방적으로 정한 대금을 받을 뿐이었다.

현대중공업은 하도급법 위반 혐의와 관련된 공정위 현장조사가 진행되기 직전인 지난해 8월, 자료를 은닉해 조사를 방해한 혐의도 받고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직원들은 컴퓨터 101대와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273개를 교체하고 중요 자료는 사내망의 공유폴더와 외부 저장장치에 숨겼다.

현대중공업 직원들이 사내 메신저를 통해 나눈 대화록을 공정위가 확보해 이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 대화록에는 ‘공정위 조사가 나오니 빠르게 PC를 바꿔야 한다’, ‘다음 주쯤이면 조사가 나올지도 모르는데 교체가 제대로 되지 않아 윗분들이 쪼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공정위는 현대중공업 직원들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컴퓨터 등 관련 부품 외부로 빼돌리는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도 확보했다. 공정위는 조사 방해와 관련해서는 회사에 1억원, 소속 직원(2명)에게 2500만원의 과태료를 각각 부과하기로 했다.

위법 행위를 벌인 현대중공업은 공정위 조사 과정인 지난 6월 한국조선해양으로 이름을 바꿔 지주회사가 됐고 구 법인과 같은 이름인 현대중공업을 새로 설립해 기존 사업을 이어받도록 했다. 공정거래법 근거 규정에 따라 과징금은 신설회사인 현대중공업에 부과하고 나머지 제재는 존속회사인 한국조선해양에 부과했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윤수현 공정위 기업거래정책국장은 "폭언, 폭행 등 물리적 조사방해가 있다면 고발도 가능하지만 이번에 그런 일은 없었다"며 "하도급법에 근거해 과태료만 부과했다"고 말했다.

kds0327@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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