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측정’ 규정 개선 필요...측정업체 관리 정부가 해야
환경부 "지나친 개입 시장자율 해쳐...사회적 합의 먼저"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이던 지난 1월 23일 서울 남산타워가 보이지 않는다. (서창완 기자) 2019.1.23/그린포스트코리아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이던 지난 1월 23일 서울 남산타워가 보이지 않는다. (서창완 기자) 2019.1.23/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박소희 기자] 여수국가산업단지(이하 여수산단) 내 공장들이 대기오염물질 측정값을 조작하다 환경부에 적발되자 사업장이 측정업체를 선정하는 이른바 ‘셀프 측정’ 규정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배출업체와의 유착·공모 관계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측정업체 선정과 관리를 규제 당국에서 해야한다는 주장이지만 환경부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사업장은 규모에 따라(매주 1회 ~ 반기 1회 등) 사업장의 대기오염물질 배출농도를 자체적으로 측정하거나, 자격을 갖춘 측정대행업체에 의뢰해 측정하도록 하고 있다.

업체 스스로가 측정하도록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수백만개의 사업장 배출 굴뚝을 64종이나 되는 항목별로 점검하려면 현재 행정당국 인원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공무원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수도 없는 문제다.

이에 업체가 오염물질을 직접 관리하고, 관리를 잘 하고 있는지 규제 당국이 점검을 하는데 결국 문제가 터졌다. 

이번에 배출량을 조작하다 적발된 측정대행업체는 4곳, 사업장은 235곳이다. 사업장과 측정대행업체가 주고받은 대화 내용을 보면, 대행업체가 “메일로 보내주신 날짜와 농도로 만들어드리면 되냐” 묻고 그대로 성적서를 작성했다. 한 배출업체 과장은 “탄화수소 성적서 발행은 50언더로 다 맞춰주세요”라고 대행업체에 주문하기도 했다.

단속 결과 총 1만3096건 중 8843건은 실제 측정 자체를 하지 않았고, 4253건은 실제 측정값보다 미세먼지 생성물질을 33.6% 수준으로 낮게 조작했다. 심지어 특정대기유해물질 배출 기준치를 173배 이상 초과했는데도 이상이 없다고 조작하거나, 측정값을 법적 기준의 30% 미만으로 조작해 대기기본배출 부과금을 면제받기도 했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여수산단에서 버젓이 벌어진 일이다. 

여수산단 사태를 두고 정치권을 중심으로 ‘셀프 측정’ 규정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현정 정의당 지속가능한 생태에너지본부장은 <그린포스트코리아>와의 통화에서 "사업장이 측정대행업체를 선정할 수 있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어떠한 형태로든 반복될 것"이라며 "규제기관이 직접 업체를 선정해 계약을 맺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환경단체 역시 측정대행업체와 배출사업장과의 유착고리를 끊어내는 것이 이번 사태의 핵심 대책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공익적 측면을 내세운 강력한 환경규제는 자칫 시장의 자유를 침해하기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오염물질에 대해 사업자가 자가측정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기에 업체 선정에 대해 규제 당국이 개입하는 건 사실상 힘들다"면서 "다만 계약 사실을 지자체에 보고하도록 하는 규정이 최근 마련됐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배출업체와 측정업체에 대한 관리 업무가 지자체로 넘어간 이후 불법행위가 증가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이현정 본부장은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방분권으로 핑계 대는 건 적절하지 않다”면서 "지자체의 관리부실 영향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문제의 본질은 제한된 지자체의 관리 권한에 있다"고 주장했다. 

여수산단 사업장에 대한 지도·관리 권한은 광주시와 전남도가 가지고 있다. 행정당국은 ‘환경오염물질배출시설 등에 관한 통합지도·점검규정’에 따라 점검 목적과 사항을 사업장 출입 전 밝혀야 한다. 불시 점검을 하더라도 사업장이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정문에서 막을 수 있으며 실제로 시간을 벌기 위해 그런 일이 벌이지곤 한다. 

전남도 한 관계자는 이도 사소한 사안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기오염 배출량 조작은 30년도 넘은 고질적 문제지만, 해결 방안은 요원하다. 턱없이 부족한 인원으로 꼼꼼한 사업장 관리는 어림없다. 보이는 것도 적발 못하는 형국인데 규제 사각지대 발굴은 어불성설이다"라고 말했다. '터질 게 터졌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그는 이어 "산단 감독부서는 하루 절반 민원인을 상대하다 끝난다. 민원 상담은 업무량에 포함되지 앖아 조직개편시 증원에서 밀리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현실"이라면서 "특히 사업장은 새로운 설비가 계속 추가하는데, 감독부서는 업무 외 업무를 처리하는라 시설에 대한 전문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수도권을 제외한 대형사업장은 현재 배출량 총량 제한도 없는 실정이다.

‘사업장 대기오염물질 총량관리제’가 인천, 경기 등 수도권 지역에 한해 시행되고 있어 여수산단은 오염물질 배출량 제한이 없다. 반면 수도권 지역 대형사업장은 정부에서 정해준 할당량 이내로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해야 한다.

여수산단은 배출량 조작이 가능한 허술한 제도를 틈타 총량 제한도 받지 않은 채 대기오염물질을 뿜어낸 것이다. 그로 인한 대기오염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됐다. 

다행히 배출총량제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대기관리권역의 대기환경개선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이 지난 2일 통과돼 내년 상반기부터 시행된다.  

환경부는 여수산단에서 벌어진 오염물질 배출량 조작을 ‘빙산의 일각’으로 보고 현재 전국 사업장을 대상으로 감사원 감사에 들어갔다. 

환경부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감사를 진행하고 있어 구체적인 대책은 5월 중 발표할 방침"라면서도 "다만 지자체 관리업부 인원 및 전문성 부족 문제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 종합대책에 반영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ya9ball@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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