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포스트코리아 주현웅 기자]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에 대한 전망이 이제는 ‘어느 곳’인지를 묻기보다, ‘용인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모습이다. 지난 14일 한 언론매체가 “해당 부지로 경기 용인시가 최정 선정됐다”고 잘못 보도한 것을 계기로 그 외 지자체들이 ‘수도권 절대반대’를 외치며 대동단결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조성사업은 2028년까지 120조원이 투입되는 거대한 프로젝트다. 330만㎡에 달하는 부지에 반도체 생산라인은 물론 부품과 소재 및 장비업체까지 대거 입주한다. 1만명 이상의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력이 기대된다.

‘SK하이닉스 천안 유치’를 위해 천안시의회 이종담 의원과 홍순광 농협 시지부장이 얼음물을 뒤집어 썼다.(천안시의회 제공)2019.2.20/그린포스트코리아
‘SK하이닉스 천안 유치’를 위해 천안시의회 이종담 의원과 홍순광 농협 시지부장이 얼음물을 뒤집어 썼다.(천안시의회 제공)2019.2.20/그린포스트코리아

◇ “수도권은 절대 안 된다”

늦어도 올해 1분기 안에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가 결정될 예정이다. 현재 경기 용인과 이천, 경북 구미와 충북 청주, 충남 천안시가 ‘격렬히’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5파전인 셈인데 실상은 ‘수도권 대 비수도권’ 구도로 나뉘어져 있다.

이 가운데 천안시는 지난 18일부터 시의회 의원 등이 돌아가면서 얼음물까지 뒤집어쓰고 있다. ‘SK하이닉스 반도체 특화클러스터 최적의 입지는 천안시’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아이스버킷챌린지를 하는 것이다.

천안시의회는 그러면서도 ‘수도권만큼은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정부는 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혀왔다”며 “수도권 반도체 특화클러스터 조성은 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런 목소리는 다른 지역에서도 나온다. 경북도의회는 'SK 하이닉스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구미 유치 결의안'을 채택, 구미시 유치 당위성을 설명하는 한편 “반도체 클러스터를 수도권에 조성하려는 것은 국정과제인 국토 균형 발전을 포기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청주시의회도 “수도권에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된다면 이는 지방의 박탈감을 고조시키고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갈등을 국가적인 문제로 확산될 것”이라고 짚으며 정부에 청주시 투자를 촉구하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경기도가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 최적지라고 말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경기도가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 최적지라고 말했다.

◇ 용인 유력설? 경기도 “수도권 역차별 안 돼”

수도권이 이들 지역의 ‘공공의 적’이 된 건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를 둘러싼 소문이 무성한 탓이다. 특히 지난 14일 한 언론매체가 “SK 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로 용인시가 최종선정됐다”고 잘못 보도하면서, 다른 지역의 위기감과 설움이 갈수록 폭발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 용인시가 유력하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비수도권 지역은 ‘수도권공장총량제’ 를 이유로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의 경기도 조성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하지만, 정부가 수도권정비위원회를 열어 특별물량을 준비한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돌고 있다.

소문이 확산된 데에는 정부의 소극적인 반론도 크게 한몫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용인 확정’은 오보라고 밝혔지만, “아직 확정된 바 없다”는 내용 외에는 아무런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경기도는 어느 때보다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와 관련한 입장을 처음 밝혔다. 그는 SK하이닉스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입지는 경기도가 최적지라고 했다.

이 지사는 “SK하이닉스 반도체클러스터 입지는 실사구시적 입장에서 정치논리가 아닌 경제논리로 판단돼야 한다”며 “경기도는 기존 반도체의 장점을 결합한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의 ‘중심기지’ 건설을 위해 이전부터 철저히 준비해 왔다”고 밝혔다.

이 지사는 이어 “국가균형발전이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알고 있고 공감도 하지만, 그런 이유로 수도권이 역차별을 받아선 안 된다”며 “경기도는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시 인재육성 등 지방정부 차원의 지원책까지 시행하겠다”고 피력했다.

SK하이닉스 이천공장 전경(SK하이닉스 제공)2019.2.20/그린포스트코리아
SK하이닉스 이천공장 전경(SK하이닉스 제공)2019.2.20/그린포스트코리아

◇ 소문이 현실된다면…갈등 불보듯

문제는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가 실제로 수도권에 조성될 경우다. 이는 심각한 지역갈등을 낳을 수도 있다. 실제로 지역균형발전이 이번 정부의 국정 과제 중 하나라는 점을 고려하면 해당 부지가 수도권 외 지역으로 정해져야 한다는 목소리는 시민사회에서도 나온다.

시민단체 ‘지방분권전국연대’는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가 수도권에 조성될 시 강력 대응할 방침이다. 단체는 “수도권에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을 허용하면 지역 간 상생은 고사하고 심각한 지역갈등과 국론분열을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가 수도권에 조성되면 이번 정부가 추진해온 일부 정책이 함께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예가 정부가 발표한 ‘국가균형발전 5개년 계획’과 예비타당성 면제 사업이다.

단체는 “수도권규제완화는 사실상 수도권규제정책이 무력화되고 수도권과밀집중을 더욱 가속화시킨다”면서 “그럴 경우 문재인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및 수도권정책에 정면으로 반하는 결과를 낳게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아직 신중한 모습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결정된 사항이 없다”고 짧게 전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지가 이달말 내지 내달 중순께 확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은 지난 15일 제29차 반도체산업협회 정기총회에서 “반도체 경쟁력과 생태계 강화. 이 두 가지를 고려해 가장 적합한 곳을 선정해야 할 것이지만, 이는 어차피 SK하이닉스가 정하는 게 아니고, 말할 입장도 아니다"고 말한 바 있다.

chesco12@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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