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광주의 한 집에서 불이나 15세 소녀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소녀의 가족은 난방비를 부담할 여력이 안 돼 상대적으로 요금이 싼 전기장판으로 겨우내 추위를 견뎠어요. 하지만 내지 못한 전기요금이 80만 원가량 누적되어 결국 전기가 끊겼습니다. 한밤중 어두운 화장실을 밝히려고 켜 둔 촛불이 옮겨붙어 불이 난 거였지요. 이 사고는 에너지빈곤층과 에너지 복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계기가 되었어요. 17년이 지난 지금은 사정이 나아졌을까요? 에너지가 인간답게 살기 위한 기본권의 하나로 여겨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그 기본권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 ‘오늘부터 시작하는 탄소중립’(권승문·김세영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中, 146~147쪽.

2018년 여름, 관측 이래 최고의 폭염이 찾아왔다. 당시 실내에서 발병한 온열질환자는 1,202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집에서 발생한 경우가 624명으로 절반을 넘었다. 겨울에는 혹한이 문제였다. 2018년 12월부터 2021년 2월까지 발생한 한랭질환자 1,140명 중 172명도 집에서 발생했다. 폭염과 혹한이 닥쳐와도 집에 냉난방시설이 없거나, 있더라도 경제적 부담으로 필요한 때조차 충분히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22년 여름에는 기록적인 폭우가 집을 덮쳤다. 역대급 폭우에 반지하 주택이 침수됐고 사람이 죽었다. 기후재난이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가혹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이번 폭우는 기후위기가 얼마나 심각해졌는지, 그리고 기후재난은 불평등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했다. 

집은 온갖 재난 속에서도 마지막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하지만 재난에 취약한 계층이 열악한 주거 형태에 사는 경우가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의 지하·반지하 주택은 32만 7,320가구에 이른다. 이 가운데 96%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서울시 내 지하(반지하) 주택은 20만 849가구에 달한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020년 3월에 발표한 보고서 ‘(반)지하 주거 현황과 시사점’에 따르면, (반)지하 주택에는 기초생활수급가구 29.4%, 소득하위가구 15.5%, 장애인이 있는 가구 15.5%, 고령자가 있는 가구 9.1% 등 주거취약계층이 주로 거주하고 있다.

정부는 반지하 주택을 전수조사하고 순차적으로 없애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반지하 주택을 단기간에 없앨 수 없을뿐더러 반지하 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이주할 안전한 공간도, 안전한 곳으로 이주할 수 있는 지원책도 부족하다. 빈곤사회연대는 지난 10일 성명을 통해 “반지하는 나날이 비싸지는 도시에서 서민들에게 그나마 열린 거주공간이지만, 고시원, 옥탑방과 비닐하우스가 그렇듯 최저주거기준에도 미달하는 주거지는 화재, 혹한, 혹서와 반복되는 재난 앞에 위태로웠다”며 “두려운 것은, 이런 사고를 빌미로 대책없이 반지하마저 사라지면 서민들이 살 곳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현실이다”라고 비판했다.

앞으로도 기후변화에 따른 재난은 더 자주 더 강하게 올 것이다. 그리고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 소득이 많을수록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면서 더 안전한 삶을 유지한다. 이러한 기후부정의를 해소할 수 있도록 기후위기에 취약한 에너지빈곤층과 주거빈곤층에 대한 지원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은 모두가 안전하게 지낼 주거 및 생활공간을 확대함으로써 기후위기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고 생존권을 지키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는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그리고 이 단어가 ‘중요한’ 문제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단어의 뜻을 알고 중요한 문제인지는 알지만, 한편으로는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어렵다는 건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이 내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다는 의미일 겁니다.

그린포스트코리아 권승문 기자가 지은 책 ‘오늘부터 시작하는 탄소중립’은 기후위기와 탄소중립 문제가 우리들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고 우리의 일상과 얼마나 가까운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후위기 시대, 함께 만들고 살아갈 ‘좋은 삶’이 무엇인지를 질문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오늘부터 시작하는 탄소중립’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매주 일요일, 책에서 나오는 주요한 내용을 발췌하고 핵심 단어를 선정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로 풀어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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