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있는 교실'-돼지 P짱과 32명의 아이들이 함께 한 생명수업 900일

붓다는 "공정심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살피는 마음에서 온다"고 했다. 그러나 '다원주의'를 표방하는 현대사회는 하나의 중심이 사라지고 다양한 관점이 팽팽하게 맞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쉽게 가치판단하기 어렵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 했던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세상의 옳고 그름을 살피기 위해 격주 화요일과 목요일 번갈아 '화목한 책읽기' 코너를 운영한다. [편집자주]   

 

쿠로다 야스후미 지음 | 김경인 옮김 | 달팽이출판 | 2011년 04월 27일 출간
쿠로다 야스후미 지음 | 김경인 옮김 | 달팽이출판 | 263쪽

 

이 책의 한 단락: P짱을 트럭에 태우는 일은 생각지 않은 난항을 겪었다. 가능하면 난폭한 방법은 피하려고 했지만, 결국 우리는 다음 수단을 쓸 수밖에 없었다. 밧줄을 P짱의 코에 동여맨 다음, 어른 세 명이 트럭 위에 올라서서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그 밧줄의 뒤쪽을 트럭 밖으로 빼내어 아이들도 추임새와 함께 잡아당겼다. 하지만 P짱은 앞발로 앙버티고 서서 비명을 지르며 온힘을 다해 저항했다. 그 슬픈 비명소리에 더는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우는 아이도 있었다.

[그린포스트코리아 박소희 기자] 배변을 못 가린다며 제 자식을 화장실에 가두는가 하면, 병에 걸린 새끼돼지들을 망치로 내리쳐 죽이는 일이 발생한다. 생명의 소중함을 안다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지행합일(知行合一), 아는 것을 행한다는 말이다. 바꿔 말하면 행하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사람은 쉽게 안 변한다. 제가 아는 바만 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동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앎의 영역을 넓혀야 한다. 교육의 영역이다. 머릿속의 지식으론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생명의 가치를 행함으로 교육할 수 있을까. 

◇ 생명의 가치를 체화하는 900일간의 생명 수업

일본 오사카 최북단에 위치한 노세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이다. 이곳 초등학교에 쿠로다 야스후미가 부임하게 된다. 4학년 2반 담임이 된 쿠로다는 학급 친구들과 무모한 도전을 해보기로 한다. 

“돼지를 잘 길러서 다 크면 잡아먹자.”

새내기 교사 쿠로다는 돼지 키우는 것을 사실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그는 교사를 준비할 때부터 막연히 동물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며 동시에 얼마나 즐거운지 몸소 배울 기회를 마련해주고 싶었다. 사육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생명의 소중함을 자연스럽게 체화하길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금붕어, 새, 햄스터, 토끼 등 작은 동물보다 덩치가 크고 존재감이 있는 동물을 키우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눈 앞의 서른두 명의 아이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채, 900일간의 생명수업이 시작된다. 

돼지가 있던 교실은 'P짱은 내 친구'라는 제목으로 영화도 만들어졌다. 쿠로다 야스후미 역을 맡은 츠마부키 사토시
'돼지가 있던 교실'은 'P짱은 내 친구'라는 제목으로 영화도 만들어졌다. 담임이었던 쿠로다 야스후미 역을 맡은 배우 츠마부키 사토시가 4학년 2반 친구들이 키울 돼지를 학급회의에서 소개하고 있다. (영화의 한 장면)

◇ 돼지가 ‘P짱’으로 불리는 순간 특별한 존재가 됐다

‘돼지가 있는 교실’은 담임이었던 코로다가 서른두명의 아이들과 함께 3년간 돼지 ‘P짱’을 키우며 겪은 실천기록이다.

돼지를 기르게 된 4학년 2반 친구들은 돼지가 지낼 우리를 지어준다. 잘 길러 잡아먹자는 전제하에 기르게 되지만 ‘돼지 키우기’에 맛 들인 아이들은 급기야 이름까지 붙여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의 시처럼 돼지가 ‘P짱’이 되는 순간 ‘P짱’은 아이들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다.  

아이들은 먹이, 목욕, 우리 청소도 당번을 정해 스스로 해결해가지만 P짱의 몸집이 불어나면서 그 모든 일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특히 먹이 구하는 일이 만만찮다. 난관에 봉착한 아이들은 급식 후 남은 음식을 공수하거나, 제 먹을 것을 아껴 가져다준다. 영락없이 P짱의 부모들이다. 

‘돼지는 잡식성이라서 기본적으로는 인간과 똑같이 무엇이든 잘 먹는데, 아이 중에도 편식하는 이가 있듯이 P짱에게도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대표적으로 좋아하는 음식은 토마토. 그리고 싫어하는 것은 양배추다. 양배추를 보면 코로 밀쳐내고 밑에 있는 다른 음식을 먹는다. 아이들은 꼭 부모라도 되는 양 “P짱, 편식하면 안 돼!”라고 한마디 한다. 그렇게 말하는 너는 어떻고?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절로 난다. 하지만 이런 P짱과의 자연스러운 교류가 ‘음식’이라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생활양식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책 46쪽) 

◇ “P짱을 어떻게 먹어요”

돼지 키우기는 졸업을 앞두고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돼지 P짱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잡아먹기로 하고 시작했지만, 아이들 마음은 달랐다. 그들에게 P짱은 먹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평생을 함께 하고픈 친구였다. 

담임이었던 저자는 P짱의 마지막을 토론을 통해 결정하자고 제안한다. 토론은 “잡아먹자”는 쪽과 "3학년 1반 친구들이 다시 키우게 하자" 쪽으로 나뉘어서 진행됐다. P짱의 생사를 놓고 벌이는 아이들의 열띤 공방. 

“고기로 만들기 위해 팔자는 게 아니야. 어쨌든 누군가가 죽여주면 그걸로 됐다는 거지. 고기로 만들기 위해서 식육센터에 팔자는 얘기가 아니라고”라며 고신이 말하자, “그렇다면 죽이기만 하는 거라면 P짱이 너무 불쌍해. 그냥 인간이 제멋대로 죽이는 거면”이라며 노부사토가 반론했다.(책 201쪽)

토론 중 아이들은 감정이 격해져 눈물을 쏟고 목소리가 커지기도 했다. 나중에는 부모들까지 논쟁에 참여하지만,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P짱의 생사를 인간 중심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이미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고,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체화한 것이다. 

‘교실을 좌우로 나누고 ‘식육센터’파와 ‘3학년 1반’파가 양쪽으로 갈라져 앉았다. 학생이 서른두 명인 6학년 2반은 약속이라도 한듯 16대16으로 똑같이 나뉘었다. 예상치도 못했던 상황의 한가운데 서 있던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3년 동안 똑같이 사랑하고 똑같이 가르쳐온 서른두 명의 아이들이다. 그들과 똑같이 P짱을 생각하며 여기까지 왔다. 그 서른두 명의 학생이 정반대되는 의견을 놓고 똑같이 반반씩 갈라져 있는 상황이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동시에 교실 안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책 200쪽)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식탁 위에 올라온 돼지고기에 돼지라는 한 생명의 죽음이 있었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다. 더욱이 게임이나 대중매체에서 보여주는 생명경시 장면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우리가 다른 생명을 먹고산다는 엄연한 사실을 어떻게 알려줄 수 있을까. 아이들에겐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선생님에겐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책이다. (쿠로다 야스후미 지음·김경인 옮김·달팽이출판·263쪽)

◆신간소개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는 난다의 읽어본다 시리즈의 2018년 신작이다. 올해 필진으로 합류하게된 서효인 시인과 박혜진 문학평론가는 민음사에서 한국문학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82년생 김지영'을 이 땅에 선보이기도 한 이 둘은 평소에도 막힘없이 책수다를 떨었다. 이 책은 그 수다가 어떻게 기획이 되는지 보여준다. 책을 권하고 책을 읽고 책을 말하고 나아가 새로운 책을 탄생시킬 수 있는 힘을 언제나 책의 초심에서 찾는 이들. 둘의 독서일기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그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아주 조금은 찾을 수 있다. (난나·1만5000원)

 

'에너지 비하인드' 에너지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다. 에너지를 가진 나라는 흥하고 가지지 못한 나라는 쇠한다. 강대국들은 안정적인 에너지원의 확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각국이 처한 상황은 모두 다르기에 국가들이 추구하는 에너지 확보에의 길은 부존자원의 특성, 지정학적 조건, 국가 에너지 소비의 방식, 국가가 보유한 기술적 능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책은 인류 역사 속에서 에너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또 더 많은 양의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어떻게 투쟁했는지 알아보고, 세계의 여러 국가가 선택한 에너지의 공급 방식과 그들이 당면한 과제, 그리고 에너지의 미래를 설명한다.(MID·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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