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진 '러블리페이퍼' 대표 인터뷰

 

(러블리페이퍼제공)2018.8.24/그린포스트코리아
러블리 페이퍼 단체사진. 기우진 러블리페이퍼 대표가 가운데 서있다.(러블리페이퍼제공)2018.8.24/그린포스트코리아

 

우리 사회는 몇 차례 환경의 역습을 당했다. 가습기 살균제, 여성용품, 화장품, 물티슈 등 일상 용품에서 유해물질이 발견됐다. 다중이용시설, 회사 사무실, 심지어 아이들의 교실에서도 반(反) 환경 물질들이 검출된다. 여기에 바깥으로 나가면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등 곳곳에서 반환경적인 것들과 마주한다.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친환경을 추구하는 이유다. 이에 <그린포스트코리아>는 친환경 기업과 친환경 현장에서 직접 뛰고 있는 이들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함께 공유해본다. [편집자주]

[그린포스트코리아 권오경 기자] 눅눅한 공기가 가시지 않은 어느 저녁 골목길, 70kg는 거뜬히 나가는 리어카에 100kg정도의 폐지까지 가득 실은 노부부가 걸어간다. 노부부는 무더위에 하루종일 거리를 돌아다니며 아무렇게나 버려진 빈 택배 상자를 주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다음날 이들은 소상(고물상)을 찾아가 폐지를 팔고 3000원을 건네 받는다. 1kg의 폐지를 30원에 팔고 있는 셈이다.

“폐지회수율을 높이는 데 일조하는 노동의 대가가 고작 3000원이라니.”

기우진 러블리페이퍼 대표는 폐지줍는 노인들을 저평가하는 사회 구조를 지적했다. 그는 “대상(제지업체)이 사들이는 종이 가격을 단합하면 결국 그 영향은 중상, 소상을 거쳐 폐지를 줍는 노인들에게까지 미친다”고 말했다.

‘러블리페이퍼’는 이 같은 부조리한 사회구조와 인식에 변화를 주고자 탄생한 기업이다. 이 곳에서는 폐지 1kg에 30원이 아닌 1000원에 사들인다. 이는 시세보다 30배 이상 비싼 가격이다.

(러블리페이퍼제공)2018.8.24/그린포스트코리아
(러블리페이퍼제공)2018.8.24/그린포스트코리아

◇ “폐지줍는 노인들은 환경운동가”

기우진 대표가 ‘러블리페이퍼’를 통해 개선하고자 하는 것은 환경문제와 더불어 노인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과 처우다.

기 대표는 “폐지줍는 노인들은 환경운동가”라고 강조한다. 국내 택배산업 유통이 발달하면서 골판지 상자 사용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어르신들이 회수하는 폐지는 주로 택배 박스이기 때문에 이들의 노동이 폐지회수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실제 국내 한 해 종이 소비량은 2017년 기준 약 991만t이다. 나무로 환산하면 약 2억4000만 그루다. 택배산업 유통이 발달하면서 A4 사용량은 줄어도 골판지 사용량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기 대표는 “OECD에서 국가평가를 할 때 큰 비중을 두는 기준 중 하나는 바로 재활용률인데 우리나라 종이 재활용률은 현재 90%를 웃돌고 있다. 여타적인 어르신들의 노력이 거시적으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이들이 갖는 사회적 가치를 재조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블리페이퍼제공)2018.8.24/그린포스트코리아
(러블리페이퍼제공)2018.8.24/그린포스트코리아

기 대표는 이어 “하지만 이들이 줍는 폐지가 환경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서 “전국에서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가는 노인 수나 이들의 경제상황, 생계환경 등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기 대표는 “이들이 갖는 사회적 가치를 재조명해야 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노동이 회수율에 어느 정도 기여했으며, 그 덕에 경제 조림을 얼마나 줄일 수 있었는지, 나무가 배출하는 산소량과 이산화탄소 감소량은 어떻게 변화했는지 등에 대해 보다 객관적인 방식으로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폐지가 환경을 고려한 예술품으로 ‘환골탈태’

러블리페이퍼는 어르신들이 주운 폐지를 시세보다 30배 비싼 가격으로 사들여 캔버스를 만든다. 현재는 노부부 한 쌍에게서 매달 16만원 어치의 폐지를 사들이고 있다. 

(러블리페이퍼제공)2018.8.24/그린포스트코리아
(러블리페이퍼제공)2018.8.24/그린포스트코리아

이렇게 주워온 폐지는 사무실로 들여와 천을 덧대는 수공업을 거쳐 캔버스로, 또 예술가들의 손을 거쳐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한다.

왜 하필 캔버스였냐는 물음에 기 대표는 “인터넷에 폐지 재활용을 검색했을 때 캔버스를 만드는 만화작가를 보게 됐고, 당시 폐지줍는 노인들의 생계를 돕는 '굿페이퍼' 봉사활동 단체에서 활동하던 대학생들과 무작정 시도하게 됐다”고 답했다.

기 대표의 시행착오는 이제 매월 70명의 작가들이 예술작품을 실현하는 장으로 발전했다. 캔버스로 재탄생한 폐지 위에 작가들은 매 분기 6개 작품, 매 해 24개의 작품을 만들어 보내주고 있다. 작품을 판매하고 남은 수익금은 다시 빈곤 노인을 돕는 데 쓰인다. 

기 대표에 따르면 현재 단국대 공예과 학생들과 건국대 미술 동아리원들, 경기예고 미술반 친구들이 재능기부를 하고 있으며 미술 거점 고등학교인 인천 예일고의 경우는 협약을 맺어 재능기부를 받고 있다.

기 대표는 “캔버스 뒷틀에 사용되는 나무는 대부분이 삼나무다. 우리나라 연간 캔버스 소비량을 나무로 환산하면 총 280만 그루가 잘려나간 셈이다. 이 나무를 땅에 심었을 때 면적은 580헥타르정도 된다. 하나의 축구장이 0.7헥타르인 점을 고려하면 그 규모는 어마어마하다”고 말했다.

기 대표에 따르면 2016년 러블리 페이퍼가 탄생한 이래로 여태까지 만들어진 캔버스는 총 4287개 정도이다.

그는 “폐지를 자르고, 겹치고, 천을 덧대는 모든 과정을 수공업을 통해 하다보니 속도는 더디지만 이 수치를 나무로 환산하면 그래도 총 25그루를 살려낸 셈”이라면서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 차차 삼나무로 만들어진 캔버스를 대체해 나간다면 환경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roma2017@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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