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포스트코리아 주현웅 기자] 폭염이 마침내 기세가 꺾일 태세라지만 우려의 목소리는 줄지 않고 있다. 지구온난화 등 이상기후 문제가 국제사회의 골칫거리가 된 이상 폭염은 언제라도 다시 찾아올 수 있어서다.

다시 찾아올 폭염이 우려되는 이유 중 하나는 ‘돈’ 때문이다. 폭염은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 급격한 산업화에 따른 성장 신화가 진즉에 끝났고, 이제는 GDP 연 3% 성장도 될까 말까 하는 상황에서 앞으로는 난데없는 폭염이 경제를 망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잇따른다.

이상기후가 문제로 지적된다.(미국 메인대 기후변화연구소 자료)2018.8.17/그린포스트코리아
이상기후가 문제로 지적된다.(미국 메인대 기후변화연구소 자료)2018.8.17/그린포스트코리아

◇ “폭염은 절대적으로도, 상대적으로도 경제에 악영향”

지난 16일 국립기상과학원은 ‘한반도 100년의 기후변화’ 자료를 발표하며 올해 한반도를 덮친 폭염의 원인을 지구온난화로 지목했다.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연평균 기온은 1912년부터 지난해까지 106년 동안 10년당 0.18도 폭으로 상승했다. 비록 올해는 조사 대상기간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기록의 추이를 보면 이번 폭염은 지구온난화 때문이란 분석이다.

이대로라면 올해보다 더한 폭염을 맞게 될 수도 있다. 자연히 경제 상황도 악화될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1991~2017년 중 폭염일이 평균(4.3일)보다 길었던 해에는 신선식품 물가 상승률만 8%에 달했다. 실제로 올해 국내 사정만 보더라도 무더위에 농가 생산량이 줄어 채솟값이 15% 이상 상승했다.

물론 폭염의 덕을 본 업종들이 있다. 에어컨을 쉴새 없이 가동하는 백화점이 ‘폭염특수’를 누린 한편 전반적으로 사람들의 외출이 줄어 배달업종도 덩달아 매출이 상승했다. 에어컨 등 가전제품은 물론 쿨토시와 쿨스카프 등 이른바 ‘쿨링아이템’ 매출도 전년 대비 38% 급등했다. 이밖에 온라인 쇼핑몰과 냉동제품도 일제히 성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업종 간 희비에도 불구하고 폭염이 장기화하면 경제 사정은 대체로 악화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례적인 무더위가 이례적인 성장을 잠시 이끌 수는 있겠지만, 경제 성장을 직접 견인하는 노동력과 생산성은 동시에 감소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물가마저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2016년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폭염과 추석 물가’를 보면 폭염이 장기화한 1990년, 1994년, 1996년, 2004년, 2013년 물가상승률은 연평균 대비 0.6%포인트 높았다. 농축수산물(3.8%포인트)이 특히 심했고, 공업제품(0.2%포인트), 석유류(2.1%포인트), 내구재(0.2%포인트) 등도 높았다. 연구원은 “폭염시 여름철 물가는 절대적으로도, 상대적으로도 높았다”고 부연했다.

해외 연구결과도 비슷하다. 지난달 '유엔대학교-글로벌보건국제연구소'에 따르면 기후변화에 따른 폭염으로 인해 2030년대가 되면 전 세계는 매년 2조 달러(약 2220조원)의 GDP 감소가 발생할 전망이다. 카스텐 자흐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UNFCCC COP)에서 독일 협상단 대표는 "환경보호 정책이 없으면 경제 성장도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는 미국 UCLA대학 연구진의 연구결과를 인용하며 기온이 1도 올라갈 때마다 노동생산력이 2%씩 감소한다고 보도했다. 이에 미국도 올해 폭염으로 인해 1500만명의 야외 근로자들의 생산력이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영국도 실내 근로자들도 생산성이 떨어져 23억유로(약 3조원) 규모의 손실이 초래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체계적인 기후변화 정책 마련이 요구된다.(픽사베이 제공)2018.8.17/그린포스트코리아
체계적인 기후변화 정책 마련이 요구된다.(픽사베이 제공)2018.8.17/그린포스트코리아

◇ “비용 들더라도 기후변화 정책 만들어야…”

이런 가운데 카스텐 자흐 대표는 지난달 29일 세계경제연구원 특별강연에서 한국을 언급했다. 그는 "산업화가 급격히 이뤄진 한국은 기후변화 정책이 없으면 경제 성장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전과 같은 경제 급성장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앞으로는 환경보호 정책이 성장의 열쇠가 될 것이란 의미다.

카스텐 자흐 대표는 이어 "기후변화 정책을 수립하려면 그만큼의 비용이 따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손해보다는 경제적 이득이 더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산업별로 (탄소배출 등)어느 정도의 목표치를 달성할 것인지 정하고, 환경부는 이런 결과를 바탕에 두고 경제부처와 협력을 이뤄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후변화 정책 마련은 이미 세계적 흐름이다. 유럽연합은 2009년 기후변화 적응 백서를 발간했고, 같은 해 독일과 스페인 등 유럽의 일부 국가들도 기후변화 적응 계획을 자체적으로 수립했다. 물론 우리나라도 2011년 ‘국가 기후변화 적응대책’을 마련했으나, 보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대책 수립이 요구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온실가스 배출 세계 7위 국가다. 온실가스 배출은 2013년 기상청이 발간한 ‘한반도 기후변화 보고서’에서 폭염의 원인으로 지목된 바 있다. 이 같은 현실에서 독일의 저먼워치, 유럽 기후행동네트워크가 지난해 발표한 ‘기후변화대응지수 2018’를 보면 한국은 60개국 중에서 58위에 머물렀다. 사실상 ‘꼴찌’인 셈이다.

카스텐 자흐 대표의 조언을 흘려들어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기후변화 폭염 대응을 위한 중장기적 적응대책 수립 연구’를 통해 “국가 단위에서의 ‘중장기적 적응대책’ 수립 및 관리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속적이고 실효성을 갖춘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한편, 올해 국내의 기록적 폭염으로 발생한 온열질환자는 지난 14일 기준 4148명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의 4배 수준이다. 사망자 수는 48명으로 작년 6배였다. 태풍 '솔릭'이 더위를 씻어줄지 관심이 모아지는 가운데 기상청은 "태풍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 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지켜봐야 알 수 있다"고 전했다.

chesco12@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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