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 '리펭그루' 대표 인터뷰

우리 사회는 몇 차례 환경의 역습을 당했다. 가습기 살균제, 여성용품, 화장품, 물티슈 등 일상 용품에서 유해물질이 발견됐다. 다중이용시설, 회사 사무실, 심지어 아이들의 교실에서도 반(反) 환경 물질들이 검출된다. 여기에 바깥으로 나가면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등 곳곳에서 반환경적인 것들과 마주한다.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친환경을 추구하는 이유다. 이에 <그린포스트코리아>는 친환경 기업과 친환경 현장에서 직접 뛰고 있는 이들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함께 공유해본다. [편집자주]

[그린포스트코리아 박소희 기자] 강원도 영월의 작은 찌개집에 들어서자 맛있는 냄새로 그득하다. 메뉴 고민도 잠시, 순두부찌개와 함께 앞치마도 같이 달라고 주문하는 이가 있다. 흰색 셔츠에 찌개가 튀면 영 성가신 탓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부직포로 만든 일회용 앞치마가 나온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거절한다. “사장님, 저 앞치마는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그린디자인 제품을 제작해 생태교육을 진행하는 이지영 리펭구르 대표는 공존 가능한 지구환경을 위해 일회용품을 최대한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일회용품을 거절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는 “찌개집 사장님도 나쁜 의도로 앞치마를 건네는 게 아닌데, 제가 일회용품이라고 거절하는 순간 상대가 멋쩍어진다. 그래서 죄송한 순간이 많다. 환경을 생각하면 옳은데, 그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잔소리꾼이 돼야 한다”며 앞치마를 거절하며 머뭇거린 이유를 설명했다.

그린디자이너 이지영 리펭그루 대표(주현웅 기자)2018.7.15/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디자이너 이지영 리펭그루 대표(주현웅 기자)2018.7.15/그린포스트코리아

이 대표가 처음부터 환경에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국민대 디자인 대학원에 입학해 우연히 윤호섭 교수를 만났는데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환경에 기반한 작품을 제작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알게 됐고, 기후변화로 녹고 있는 북극과 남극이 보였다. 환경이 자꾸 눈에 밟히기 시작한 것이다.

'빙하가 녹으면 그곳에 사는 펭귄들은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은 '지구가 망가지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으로 확장됐다. 빙하가 녹으면 동토층에 대량으로 묻혀 있던 이산화탄소가 대기에 뿌려진다. 북극의 위기는 곧 지구의 위기고, 펭귄의 위기는 곧 인간의 위기다. 

알고 나니 못 본체가 안 됐다. 잘 하는 디자인으로 사람들에게 환경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환경문제는 '알수록 지루하고, 알수록 답답하며, 알수록 끔찍'했다.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문제는 남녀노소 상관없이 모두에게 중요했지만 많은 이들이 무관심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재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리펭구르는 다음 세대가 살아갈 더 나은 지구환경을 위해 기후변화 문제를 보다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고자 '펭귄'을 소재로 제품을 제작하고 그 교구를 통해 참여형 생태교육을 진행한다. '멸종 위기종인 펭귄이 눈 위에서 다시 떼구르르 놀았으며 좋겠다'는 뜻의 리펭그루는 디자인의 콘셉트부터 재료 선정, 제작, 폐기까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리펭그루에서 진행하는 '펭귄 구출 대작전' 워크숍에 참여하고 있는 아이들.
'펭귄 구출 대작전' 워크숍에 참여하고 있는 아이들.  리펭그루 제품은 디자인 컨셉부터 재료선정, 제작, 폐기까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리펭그루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리펭그루에서 제작한 펭귄블록은 작아진 빙하 위로 최대한 많은 펭귄을 구출하는 놀이용 블록이다. '펭귄구출 대작전'이란 놀이에 참여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지구온난화와 그로 인해 서식지를 잃어가는 펭귄에 대해 이야기한다. 펭귄블록이 좁은 빙하 위에 더는 쌓이지 못하고 무너지면 아이들은 “불쌍하다”고 말한다. 다른 존재가 처해 있는 상황에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 이 대표는 함께하는 어린 친구들에게 묻는다.

"서식지를 잃어가는 펭귄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이 대표도 배움을 통해 환경에 대한 감수성이 만들어졌듯, 공감 경험을 통해 아이들이 환경문제를 인식하게 되면 당장은 아니라도 미래 행동의 열쇠가 될 것이라 믿고 있다. 그가 제품 디자인에만 머물지 않고 제작과 교육을 연계하고 있는 이유다.

에코빌리지에 전시된 펭귄들. (박소희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강원도 영월의 청소년 생태체험광장 에코빌리지에 전시돼 있는 펭귄들. (박소희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디자이너인 이지영 대표는 작품 전시도 꾸준히 하고 있다. '엔트로피 미학' (2011, 통의동 여관, 그룹전)을 비롯 KCDF 갤러리 그룹전 '숨 2012', 펭귄은 눈을 좋아해(2016, 팔레 드 서울, 개인전) 등 그는 작품활동을 통해 생활폐기물로 시름하는 일상의 사물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파괴적인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 환경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펭귄을 소재로한 리펭그루 제품들은 인간이 '처해' 있는 위험과 인간이 '쌓고' 있는 위험을 동시에 담고 있다. 블록의 '쌓는' 행위는 '바벨탑'처럼 인간의 끝없는 욕심에 대한 비유기도 하다. 

이 대표는 현재 강원도 영월군에 소재한 에코빌리지에서 '펭귄! 어디가?'를 주제로 오픈 기념전시도 열고 있다. 전시는 오는 8월 31일까지 진행되며 연계워크숍은 오는 28일부터 다음달 18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와 4시 두 번씩 진행한다. 

탄소배출을 억제하고 자연 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공법으로 건립된 에코빌리지는 청소년들의 환경보전 의식과 가치관 함양을 목적으로 설립된 곳이다. 이 대표는 "이곳은 경관도 아름답지만, 탄소를 비우고 자연을 채운다는 에코빌리지의 철학이 자신의 가치와도 어울려 전시를 하게 됐다"고 말한다.  

전세계 알려진 펭귄 종류는 17종 혹은 18종으로 쇠푸른펭귄과 흰날개펭귄이 식별되는지 아닌지에 따라 달라진다. 펭귄들은 불법어획이나 지구온난화로 서식지를 잃어 매년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 특히 남극 하면 떠오르는 황제펭귄의 경우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면 2100년 멸종 위기종이 될 수 있다고 한다.(리펭그루 제작 포스터)/그린포스트코리아
전세계 알려진 펭귄 종류는 17종 혹은 18종으로 쇠푸른펭귄과 흰날개펭귄이 식별되는지 아닌지에 따라 달라진다. 펭귄들은 불법어획이나 지구온난화로 서식지를 잃어 매년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 특히 남극 하면 떠오르는 황제펭귄의 경우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면 2100년 멸종 위기종이 될 수 있다고 한다.(리펭그루 제작 포스터)/그린포스트코리아

 

세계야생동물기금협회(WWF)는 지구 기온이 2도 이상 높아질 경우 남극의 펭귄 주요서식지가 절반에서 4분의 3가량 훼손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바르셀로나 세계보존회의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기온이 2도 이상 높아지면 황제펭귄 번식처의 50%, 아델리펭귄 서식지의 75%가 없어질 수 있다. UN 기후변화패널 소속 과학자들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대한 줄이더라도 100년 안에 지구 기온이 2도 이상 높아질 것이며 줄이지 않는다면 기온 상승 속도가 2배 이상 빨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후변화로 남극의 빙하가 녹아 사라진다면 그곳에 사는 펭귄들은 어떻게 될까. 이지영 대표는 리펭구르의 희망과 함께 윌리엄 코퍼스웨이트의 말을 끝으로 전했다. 

"나무의 영혼이 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나무의 영혼이 꽃피울 수 있도록 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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