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사, 계엄 단계별 시행 계획 정황 문건 공개

 
 
국군기무사령부.(자료사진)
국군기무사령부.(자료사진)

[그린포스트코리아 박소희 기자]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위한 광화문 촛불집회에 나간다는 딸 박모(27)씨를 엄마 최모(60)씨가 만류한다. “가지 마! 계엄령 떨어질지도 모른대.” 박씨는 엄마의 만류를 시대착오적이라며 우스개로 넘겼다. “엄마, 시대가 어느 때인데 계엄령이야. 이제 그런 일은 ‘못’ 일어나.”

지나치다고 치부했던 최씨의 걱정이 전혀 근거 없는 게 아니라는 증거가 발견됐다. 기무사가 촛불집회 당시 비상계엄령 선포를 검토한 정황이 기무사 문건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물론 해당 문건은 헌법재판소가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기각하면 학생·농민·근로자·시민단체가 가세해 화염병 투척, 경찰서 방화, 무기탈취를 감행, 국내 치안 불안이 야기될 것이라는 가정하에 작성됐다

기무사는 이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군병력을 증원해 위수령→ 경비계엄 →비상계엄 등을 단계적으로 시행해 시위를 진압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뿐만 아니라 문건에는 무력시위 시 발포가 가능하다는 내용까지 담겨 있다.

만약 기무사의 가정대로 상황이 벌어졌다면 최씨의 딸은 과연 어떻게 됐을까. 자칫하면 광화문에 군대가 진입해 촛불을 든 시민을 진압하는 장면이 펼쳐졌을지 모른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7년 3월 국군기무사령부가 작성한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이하 ‘전시계엄수행방안’)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6일 공개했다.

이철희 의원은 “해당 문건의 가장 큰 문제는 군이 국민을 대하는 인식이다.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닌 진압해야 할 대상으로 국민을 상정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8쪽 분량의 ‘전시계엄수행방안’은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을 앞둔 시점에서 기무사령관이 국방장관에 보고한 문건으로 파악된다. 계염령은 검토한 이 문건의 내용은 △상황별 대응 △발령권자 △증원부대의 지정과 배치 △계엄사의 편성과 업무까지 망라하는 군 차원의 대비라는 점에서 지금까지 확인된 위수령 관련 문건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문건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시계엄수행방안’은 △현상진단 △비상조치유형 △위수령발령 △계엄선포 △향후조치 등 총 5개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현상진단’에서는 촛불집회를 바라보는 기무사의 불온하고 과장된 상황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촛불정국을 사상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범국민적 저항이 아니라, “촛불·태극기 집회 등 진보(종북)-보수 세력간 대립”으로 이해했다. 또한 “촛불집회(18차 연인원 1540만여명 참가)가 ‘기각되면 혁명’을 주장”한다며 사실을 왜곡해 평가했다. 

여기에 북한의 도발위협을 더해, 헌재 선고 이후 국가안보 위기가 초래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군의 개입 필요성을 끌어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무사가 계획한 비상조치 단계(권오경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기무사가 계획한 비상조치 단계(권오경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비상조치유형’에서는 기무사의 단계별 비상조치 시행방안이 잘 정리 돼 있다. 위수령과 계엄의 차이를 비교한 후, “국민들의 계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고려, 초기에는 위수령을 발령하여 대응하고 상황악화 시 계엄(경비→비상계엄) 시행 검토”라는 방안을 제시했다. 

단계별 계획을 지시한 근거로는 보수진영에서 주장하는 계엄은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 때문에 여의치 않음을 들었다. 

또한 현재 육군총장에게는 병력출동 권한이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합참의장·장관의 별도 승인”이란 해법을 내놓았고, 야당 성향 지자체 장이 병력출동을 요청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경찰 협조하 군 중요시설의 외곽 경계선을 확장시켜 통제”한다는 우회로를 담았다.

이밖에 국민 권리 침해 등 위수령의 위헌 소지에 대해서는 “군의 직접적인 책임 무(無)”라고 평가절하 했으며, 또 국회에서 위수령 무효법안이 가결되더라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시 일정기간(2개월 이상) 위수령 유지 가능”하다고 제시하는 등 법치주의와 삼권분립 등 민주적 규범을 깡그리 무시하는 태도를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번 문건이 비상조치의 법적 요건이나 절차를 기술하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단계별 발령권자, 증원부대의 지정과 배치, 계엄사의 편성과 업무 등을 망라하는 사실상의 실행계획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서울지역 위수령 발령시 조치’에서는 “수방사령관을 위수사령관으로 임명, 시위대 대응을 준비”하고, “대규모 시위대가 청와대 진입 시도시 위수령을 발령 검토”한다는 구체적인 시나리오까지 제시했다. 여기에는 기계화 5개 사단과 특전 3개 여단 등 증원가능부대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놓았다.

‘계엄 선포’ 부분도 다르지 않다. 사회 혼란 수준에 따라 ‘경비계엄’에서 ‘비상계엄’으로 확대한다는 큰 방향을 제시 한 후, 계엄사령부의 편성, 계엄임무수행군의 편성과 운용방안 등을 아주 세세하게 담고 있다. 과격시위 예상지역인 “광화문은 3개 여단, 여의도는 1개 여단이 담당”한다는 구체적인 부대 운용 방안까지 담겨 있다.

“군에 의한 사회질서 조기 안정화 필요성이 대두"되는 ‘비상계엄’의 경우, 군의 의한 ‘정부부처 지휘·감독’, ‘계엄사범 색출’, ‘언론통제’ 등 사실상 군정(軍政)을 실시해 사법,행정,언론에 재갈을 물리려고 한 계획까지 나온다.

이철희 의원은 “촛불집회 때 군이 위수령·계엄령을 준비했다는 의혹이 결국 사실로 밝혀졌다”며 “단순히 해당 문건의 작성경위를 밝히는 수준을 넘어, 치안확보를 빌미로 군을 움직이려 했던 위험천만한 시도가 없었는지, 또 기무사 외에 가담한 군 조직이나, 국방장관의 윗선은 없는지 등 철저한 진상규명과 가담자 전원의 발본색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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